거울엔 가림막, 주방엔 메모보드..서초구 '치매안심하우스' 가보니

이성희 기자 2022. 7. 2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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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초로 2017년 문 열어
치매환자 있는 가정에 맞춤형 정보 제공
서울 서초구가 2017년 전국 최초로 마련한 ‘치매안심하우스’. 안심하우스 내 침실에는 앉고 일어서기 편한 높이로 손잡이가 있는 침대가 벽에 붙게 배치돼 있다. |서초구 제공
서초치매안심하우스에 마련돼 있는 화장실에는 변기와 세면대에 각각 안전바가 설치돼 있다. 거울 속 자신을 타인으로 인식하는 치매환자를 위해 가림막도 마련돼 있다. |서초구 제공

서울 서초구에 사는 황영순 할머니(76·가명)는 65세 되던 해, 병원을 직접 찾아가 치매검사를 받았다. 딱히 증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생각나서였다. 총기 넘치던 어머니가 도통 물건을 찾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던 때가 그 즈음이었다. 황 할머니는 “어머니가 집을 나가면 길을 잃어버리니 등에 연락처를 써 붙이기도 했다”며 “치매는 미친 병”이라고 했다.

지난 20일 서초구치매안심센터에서는 황 할머니를 포함한 70~80대 어르신 5명이 레몬식초를 만들고 있었다. 레몬식초는 체내 혈액을 맑게 만들고 피로 해소와 고혈압 개선, 면역력 강화 등에 효과가 있어 치매 예방에 좋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어르신들은 레몬을 베이킹소다 등으로 깨끗이 닦은 뒤 칼로 얇게 저미고 그릇에 담아 현미식초를 붓는 전 과정을 손수 했다. 이들은 치매는 아니지만, 기억력이나 기타 인지기능이 저하된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았다. 서초구 관계자는 “요리와 수공예, 필사, 메디댄스 등 일상생활에 적용 가능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라며 “아이들의 오감놀이처럼 촉감과 향, 시각적 자극 등을 통해 뇌 활동을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물건에는 그림과 이름표 붙여야
서초구에 사는 70~80대 어르신들이 지난 20일 치매안심센터 내 하우스에서 레몬식초를 만드는 체험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서초구 제공

레몬식초 만들기 등과 같은 체험 프로그램은 치매안심센터 내 안심하우스에서 진행된다. 안심하우스는 서초구가 치매환자의 안전과 인지기능 향상을 고려해 2017년 전국 최초로 문 연 곳이다. 81.55㎡(25평) 규모 공간을 가정집처럼 꾸며 치매환자가 있는 가정에서 참고할 만한 정보를 실제로 보고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안심하우스는 치매환자에게 위험한 물건은 미리 치우고 낙상사고 등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사전에 설치하는 것이 핵심이다. 치매환자의 인지기능과 행동 변화 등에 맞춰 모든 물건에 그림과 이름표를 붙이는 것 또한 기본이다. 이가람 서초구치매안심센터 작업치료사는 “치매 진단을 받은 분들에게 가정환경을 갑작스럽게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 최대한 지냈던 곳에서 조금 이용하기 편하게 공간을 바꿔주면 된다”고 말했다.

침실의 경우 침대는 일어서기 쉽게 기립보조기나 안전바가 설치된 것으로, 벽에 붙여서 배치한다. 이불은 바닥과 색채 대비가 있어야 하는데, 화려하고 복잡하거나 실물처럼 보이는 무늬는 피해야 한다. 이 작업치료사는 “치매 어르신 중에는 저장강박이 생겨 쓰레기 등을 모으기도 한다”며 “이때는 싸우지 말고 차라리 서랍장 등 공간을 드려 마음껏 모으시게 한 다음 보호자가 몰래 버리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치매가 진행되면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옷도 그날 입을 것만 꺼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치매안심센터 안심하우스에서 지난 20일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어르신들이 메디댄스를 배우고 있다. 메디댄스는 메디컬과 댄스의 합성어다. |서초구 제공

화장실은 바닥을 미끄럼방지 타일로 교체하거나 미끄럼 방지 스티커를 붙여놓아야 한다. 변기와 욕조, 세면대 옆에 안전바를 설치해야 하며, 치매환자가 밤에 화장실에 갈 경우를 대비해 침실 곳곳과 화장실 문 앞에 움직임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불이 켜지는 센서등을 설치하는 것이 좋다. 치매가 진행되면 자신의 모습을 인지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거울에 가림막을 설치하기도 한다.

간이뇌파검사 접목 인지검사도 전국 최초 실시

주방의 경우에는 화재경보기, 연기감지기, 가스차단기 등 안전장치 설치가 필수다. 칼이나 세정용품 등은 최대한 보이지 않는 곳에 넣어둬야 한다. 이 작업치료사는 “보호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항목은 오늘의 할 일 등을 적어놓는 메모보드”라며 “어르신들이 10번 물어볼 것이 5번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안심하우스가 치매환자를 보호하는 데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쓰레기 분리수거함에 재활용품 그림을 붙여 치매환자 스스로 구분해서 정리할 수 있도록 하고 화단도 조성돼 있다. 치매환자의 인지기능 유지에 도움을 주기 위한 장치들이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한 주민이 지난 20일 서초구치매안심센터에서 간이뇌파검사 접목 인지선별검사를 받고 있다. |서초구 제공

서초구는 최근 전국 최초로 간이뇌파검사 접목 인지선별검사도 실시하고 있다. 만 60세 이상 서초구민을 대상으로 하는 이 검사는 뇌파 파형과 뇌 부위별 활성화 정도, 스트레스·우울·불안 지수 등을 무료로 측정해주는 것이다.

전성수 서초구청장은 28일 “앞으로도 차별화된 치매 예방·관리 서비스를 제공해 치매환자와 가족들 삶의 질 향상과 건강한 노년을 위한 올바른 치매 예방 환경을 만드는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성희 기자 mong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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