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일 파업으로 알린 하청노동자의 현실, 이제 남은 과제는..
"하청노동자 현실과 손배, 노조 할 권리 알렸다"
8월 원·하청 TF 가동..'노란봉투법' 입법 노력도
“표면적으로는 하청노동자의 임금을 원상회복하고 노조를 인정하라는 요구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차별을 철폐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라는 요구였습니다.
(하청노동자의 현실을)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됐으니 이제는 온 국민이 함께 나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하청지회장, 28일 기자회견에서
지난 22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이 마무리되고 한 주가 지났다. 노동계는 이번 파업이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와 차별을 공론화하는 성과가 있었다고 평했다. 4.5% 인상에 그친 임금 문제와 민·형사상 손해배상 등은 원·하청 노사가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풀어가기로 했다. 더 나아가 노동계는 이번 파업을 계기로 드러난 하청노동자의 처우와 손배소로 인한 파업권 침해 문제, 하청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개선해나갈 계획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28일 서울 중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우조선 하청노조의 파업을 자체 평가하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노조는 “처음 ‘국민 여러분 미안합니다,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로 시작된 51일간의 파업이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로 끝났다”며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투쟁에 보내주신 관심과 응원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노조는 하청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에 전국민적 관심이 생긴 것을 파업의 첫째 성과로 꼽았다. 노조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생지옥 같은 삶에 대해 전 사회적으로 실상을 낱낱이 알렸다”며 “세계 1위 기간산업인 조선산업의 불합리한 노동현실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최초로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발휘해 교섭을 이끌어낸 점도 주요한 성과라고 했다.
노동자들은 이번 파업이 드러낸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이 조선소를 넘어 한국사회 전반의 문제라고 봤다. 파업을 이끈 김 지회장은 “대우조선 안에서 터진 문제이지만 이 사회 전체의 문제다. 옥쇄투쟁은 마무리됐지만 우리가 투쟁을 통해 얘기하고자 한 문제들은 아직도 현장에 그리고 이사회에 그대로 존재하고 방치돼 있다”며 “공론화를 거쳐서 우리 사회가 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노조 측 교섭 대표였던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다단계 하청구조는 조선업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속 노동이 있는 모든 곳에 있다”며 “전 사회적으로 다단계 하청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제도개선과 노사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노조활동을 위축시키는 ‘손해배상’ 문제를 고발한 점도 주요 성과로 꼽았다. 노조는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무력화시키는 사측의 손배가압류를 금지하는 ‘노란봉투법’을 국제 노동기준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앞서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은 노란봉투법 입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형사상 책임여부를 두고는 “정당한 파업이었기에 경찰과 검찰, 법원에서 소상히 다툴 것”이라고 했다. 하청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를 두고는 노조법을 개정해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의 책임을 법제화하겠다고 했다.
노조는 또 이번 파업에서 원청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전횡이 심각했다며 ‘산업은행법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홍 부위원장은 “산업은행은 공적자금을 관리하고 사용하는 국책은행인데, 지금까지 행태를 보면 공적자금을 투입한 기업에 대해 시장논리나 금융논리로 무리하게 총괄 지휘하며 구조조정까지 담당했다”며 “국책은행 고유의 기능만 갖게 하도록 법을 들여다보고 개정해가겠다”고 했다.
파업 과정에서 온전히 해결되지 않은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저임금 문제, 앞으로 남은 손해배상 문제 등은 TF팀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노조는 당초 삭감된 30%의 임금 원상회복을 요구했지만 사측의 손해배상과 정부의 공권력 투입 등 압력으로 4.5% 인상에 합의했다. 노조는 하청업체와는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의견을 좁혔으나 아직 원청인 대우조선해양과는 합의하지 못한 상태다.
노사 양측은 원·하청 노사와 전문위원 등이 참여하는 TF팀을 구성, 대우조선해양 휴가가 끝나는 8월 첫주부터 논의에 들어가기로 했다. TF팀은 또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내부 하청노동자들의 실태조사에도 나설 계획이다.
시민사회도 정부가 나서서 손해배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비정규직이제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은 “살려고 철저한 파업을 했는데 다시 형사처벌과 손해배상으로 죽이려고 하고 있다”며 오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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