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피렌체, 베네치아, 런던, 그리고 에어푸르트

조성관 작가 2022. 7. 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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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아르노강에 걸쳐 있는 주상복합 베키오 다리 / 사진출처=위키피디아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내가 쓴 책 '천재시리즈' 독자들로부터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10권을 가만히 보니 이탈리아 도시가 보이지 않는다. '피렌체가 사랑한 천재들'을 쓰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왜 이탈리아 도시는 다루지 않았느냐?"

나는 이렇게 답변을 한다.

"천재시리즈는 가장 멀리 잡아도 250년 전 인물을 다룬다. 대부분은 19세기에서 태어나 20세기를 산 인물들이다. 그래야만 인물의 정체성과 관련된 공간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피렌체가 배출한 인물들은 대부분 16세기, 400~500년 전 인물들이다. 취재하고 글을 쓰는 데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르네상스를 꽃피운 피렌체. 여러 분야의 걸출한 인재를 배출한 도시. 영어로는 플로렌스. 피렌체는 파리와 함께 세계인의 로망이다.

어떤 도시가 얼마나 매력적인가는 결국 그 도시를 다룬 책들의 숫자와 정비례한다.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피렌체는 파리, 뉴욕, 런던 다음으로 단행본이 많이 나온 도시일 것이다.

피렌체를 '사랑과 낭만의 도시'로 세계인에게 각인시킨 것은 2001년 일본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가 아닐까. 잠깐 일본이 나오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 끝부분, 두오모 성당 전망대에서 남녀주인공 준세이와 아오이가 극적으로 만나는 장면만큼 가슴 설레는 그림이 있을까. 마치 사진작가 로베르 두아노의 사진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가 파리를 사랑과 낭만의 도시로 세계에 알린 것처럼.

이 영화에서 피렌체를 가로지르는 아르노강이 여러 번 나온다. 마지막 부분. 준세이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리 위를 질주한다. 밀라노행 기차를 타려는 아오이를 만나려 피렌체역으로 가는 장면이다.

자연스럽게 피렌체의 또 다른 명물인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가 카메라에 잡힌다. 이탈리아로 허니문을 가는 부부들의 필수 코스. 세계의 신혼부부들은 이 다리를 배경으로 '허니문 샷'을 남긴다.

그랜드 운하 위에 놓인 리알토 다리와 곤돌라 /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베키오 다리는 '냉정과 열정 사이' 훨씬 이전부터 스토리텔링을 간직해왔다. 단테가 첫사랑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난 곳이 베키오 다리라는 사실은 유명하다. 베키오 다리는 로마제국 시절인 14세기에 건설된,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아치형 석교(石橋)다.

'다리 위의 상가들'로 인해 피렌체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초의 직업은 요리사였다. 다빈치가 요리사로 취직한 곳이 바로 베키오 다리 옆에 있는 식당이었다.

피렌체와 함께 낭만적인 이탈리아 여행지가 베네치아다. 마르코 폴로의 고향이면서 세계 10대 축제의 하나인 베네치아 카니발의 도시. 미술 애호가들에게는 베네치아 비엔날레로 기억되는 운하와 곤돌라의 도시.

산 마르코 광장, 카페 플로리안과 함께 베네치아 명물 중의 하나가 리알토 다리다. 그랜드 운하가 만들어지자마자 가장 먼저 놓인 다리. 아치형 다리 위에 상가가 있다. 베네치아 구도심에서 운하를 도는 곤돌라를 타면 리알토 다리 아래를 지난다.

장면을 영국 런던으로 옮겨보자. 오랜 세월 템스강을 연결하는 다리는 런던브리지 하나뿐이었다. 1750년 국회의사당을 연결하는 웨스트민스터 교가 생길 때까지.

숨 막히는 오염된 공기를 뜻하는 '스모그'(smog)는, 알려진 대로 런던에서 유래했다. 스모크(smoke)+포그(fog)의 합성어다. 스모그는 런던의 공기가 최악이던 19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신조어다.

런던은 공기 오염만 심각한 게 아니었다. 템스강의 오염도 끔찍했다. 생활 하수뿐 아니라 공장의 오폐수가 거침없이 강으로 흘러 들어갔다.

악취가 심해 강변을 걸을 수 없을 정도였다. 강은 똥물이나 다름없었다. 급기야 1858년 강변의 국회의사당이 휴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 유명한 '템스강 악취사건'이다.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있던 1682년의 런던교 드로잉 / 사진출처=위키피디아

템스강 오염에 일조한 게 '다리 위의 집들'이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유럽 주요 도시들의 다리 위에는 주상복합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일 때다.

런던교 다리를 건너는 사람이 많다 보니 다리 위 상가들은 장사가 잘되었다. 1층에서 영업을 하고 2층과 3층에서 살림을 했다. 그렇다면 대소변은 어떻게 처리했을까. 강으로 자유 낙하!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템스강에 가장 먼저 놓인 다리는 런던교다. 1209년부터 1831년까지 런던 시민들이 이용했던 런던교는 전형적인 주상복합 다리였다.

사진기술이 발명되기 전이라 옛 런던브리지는 사진으로 남지는 않았지만 여러 화가들이 드로잉과 유화로 남겼다.

강 위에 걸쳐 있던 다리 위의 집들은 똑같은 운명에 처해졌다. 교통수단으로 자동차가 마차를 대신하면서 다리 위의 집들은 사람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었다. 여기에 주상복합 건물의 하중이 교량의 안전을 위협하고 강을 오염시킨다는 이유에서다.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를 제외하고 다리 위의 집들을 그대로 둔 곳은 독일 에어푸르트(Erfurt)다.

에어푸르트는 독일 중동부 튀링엔 주의 주도로 인구 20만의 도시다. 에어푸르트에서 기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도시가 바이마르(Weimar)다. 에어푸르트는 세계사와 독일 현대사에서 장중하게 등장한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1483~1546)다. 그는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고향을 떠나 에어푸르트로 와서 법률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던 열아홉 살 청년은 우연한 사건을 겪으며 인생의 방향을 바꿔 사제의 길을 걷기로 한다.

1505년 그는 에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들어간다. 여기서 혁명적인 생각들이 심어진다. 1507년 사제로 서품을 받게 되면서 마르틴 루터가 탄생한다. 에어푸르트는 오늘날 개신교가 탄생하게 된 종교개혁가의 씨앗이 뿌려진 곳이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세계의 종교 담당 기자들이 에어푸르트를 방문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를 비롯해 청년 마틴 루터의 흔적을 따라 현지를 답사했다.

지금도 에어푸르트는 루터교도들의 성지순례 장소로 유명하다. 시내 곳곳에서 수도사를 에워싸고 설명을 듣는 일단의 사람들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은 열아홉 살 청년의 순수한 열정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크라머 다리 입구에서 본 상가들. 조성관 작가 제공

두 번째 주인공은 두 사람이다. 그날은 1808년 10월2일. 신성로마제국을 해체하고 사실상 독일 연방 대부분을 점령한 나폴레옹은 에어푸르트에 원정(遠征) 사령부를 설치했다.

에어푸르트의 나폴레옹은 이웃 도시인 바이마르에 사는 괴테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도 진중(陣中) 도서관을 설치해 병사들에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같은 작품들을 읽게 한 이가 나폴레옹 아니었던가.

황제는 이 책을 일곱 번이나 읽어 중요 구절을 줄줄 외울 정도였다. 나폴레옹은 정중히 괴테에게 만나고 싶다는 전갈을 보낸다. 그렇게, 전쟁의 천재와 문학의 천재가 역사적인 만남이 이뤄진다. 그곳이 에어푸르트다. 황제는 괴테가 방에 들어오자 말했다.

"당신이 바로 그분이시군요."(Vous êtes un homme)

동서냉전 시대인 1970년 3월. 에어푸르트는 세계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서독과 동독의 정상이 분단 후 처음으로 이곳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했다. 당시 에어푸르트는 동독에 속해 있었다. 서독의 수상은 빌리 브란트, 동독의 수상은 빌리 슈토프. 이름이 같은 두 빌리(Willy)가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에어푸르트 역사를 빠져나오면 버스 정류장이 있는 광장이 나타난다. 그 광장 이름이 '빌리 브란트 광장'이다.

에어푸르트는, 냉정히 말하면 관광지와는 거리가 멀다. 특별한 랜드마크도 없다. 에어푸르트는 '안단테' 여행자에게 환영받는 묵직한 인문 여행지다. 마르틴 루터, 나폴레옹, 괴테.

이런 에어푸르트지만 흥미로운 공간이 한 곳 있다. 다리 위의 집이다. 크라머 브뤼케(Krämer brü̈cke). 크라머 다리다. 에어푸르트를 설명하는 안내 책자 맨 앞에 등장하는 이미지다.

에어푸르트 중심가를 관류하는 강이 게라(Gera)강이다. 말이 강이지, 도심을 지날 때는 폭이 줄어들어 개울이라고 해야 더 적합하다.

이 개울 같은 강 위에 놓인 아치형 돌다리가 크라머 브뤼케다. 다리 양옆으로 상가들이 빼곡하다. 1325년에 세워진 돌다리 위를 지금도 사람들이 건너다닌다. 이 다리 위에 32가구가 있다. 이들은 도자기 공방, 초콜릿 가게 등을 운영한다.

크라머 다리의 아치형 교각 아래로 게라강이 흐르고 있다. 조성관 작가 제공

이곳은 마르틴 루터 성지순례를 마친 사람들이 천천히 머리를 식히는 공간이다. 4층짜리 집들은 17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지어진 주상복합 건물이다.

한국사(史)로 환치하면, 고려 말기에 축조된 다리 위에 조선 시대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고, 그곳에서 21세기 에어푸르트 시민들이 현재의 삶을 이어가는 중이다.

상가 아래, 게라 강은 소년소녀들의 놀이터다. 종이배를 접어와서 시냇물에 종이배들을 띄운다. 종이배들이 남실남실 어디론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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