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유선, '목숨'을 걸다[스경X인터뷰]

하경헌 기자 2022. 7. 2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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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이브’에서 한소라 역을 연기한 배우 유선. 사진 블레스이엔티



‘배우로서의 목숨’을 건다는 의미는 과연 어떤 것일까. 각각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인물에 완벽히 녹아드는 ‘메소드 연기’로 배역과 혼연일체가 되는 모습. 배역이 받는 시련을 배우 역시 통째로 받으며 신체적 고통을 감내하는 모습.

무엇보다 배역이 느끼는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피나게 단련하는 모습이 우선일 테다. 배우 유선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거의 7개월여 동안 배역을 피워내는 고통 속에 살았다. 고통에는 너나가 없었다. 유선의 가족도 그 여정에 함께했다.

유선은 지난주 막을 내린 tvN 드라마 ‘이브’에서 한소라 역을 소화했다. 극 중 한소라는 정·재계 실세 한판로(전국환)의 고명딸로 자신이 원하던 것은 다 가졌던 안하무인이었다. 그는 재벌가 LY의 후계자 강윤겸(박병은)과도 결혼했지만, 한소라의 집안에 복수하려는 이라엘(서예지)의 계략에 빠져 남편이 유혹을 당하자 겉잡을 수없이 무너진다.

“캐스팅된 이후에 여쭤봤어요. ‘제게 온 게 맞나요?’하고요. 감독님은 제가 1순위였다고 하시는 거예요. ‘솔약국집 아들들’을 잘 보시고 이후 ‘검은집’이나 ‘어린 의뢰인’ 등 제 주요작품을 잘 보셨다고 하셨어요. 저를 믿어주시니 그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죠.”

2001년 안방 데뷔 이후 어느덧 20년. 유선은 지난해 배우로서 알을 깨기 위한 고뇌에 한창이었다. 그때 기존의 이미지를 180도 뒤집을 수 있는 한소라 배역이 왔다. 들어오는 감정은 무조건 발산했고, 아무것이나 집어던지는 안하무인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것을 빼앗겼을 때 아버지를 찾고, 유아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숙함이 있었다.

“정체됨, 답답함이 있었어요. 이걸 어떻게 뚫고 갈지 알 수 없어 연극 ‘마우스피스’를 하기로 결정했죠. 그런데 ‘이브’가 온 거예요. 지난해 11월 드라마 대본 첫 연습이었는데 11월20일 즈음에 연극 첫 공연도 있었어요. 13년 만의 연극인데다, 2인극으로 100분을 끌어야 하는 작품. 게다가 김신록, 김여진 배우와 함께 캐스팅됐어요. 연극의 배역도, 드라마에서의 배역도 감정을 폭발시키는 인물이었죠.”

유선은 월요일부터 주 5일 연극연습을 하고 주말에는 드라마에 매달렸다. 가족의 배려로 딸아이를 시댁에 보내고 집 근처 연습실을 택해 고시생처럼 대본을 붙잡았다. 자다가도 부담감에 잠이 벌떡 깨는 시간이었다. 일어나자마자 대본을 잡지 않으면 불안한 나날. 몸무게는 순식간에 4㎏이 빠졌다.

“6회 정도에 라엘과 함께 학예회에서 탱고를 공연하는 장면이 있어요. 몸을 쓴지도 오래됐더라고요. 또 예지씨와 나이 차가 있으니 훨씬 많은 시간이 들겠다 싶었어요. 마음이 급해서 6회 방송이지만 촬영 전부터 연습실을 잡아 한 달 반을 연습했어요. 게다가 소라는 어떤 옷이든 잘 어울려야 해서 PT 등 몸 관리도 받았고요. 거기에 장면에 맞는 옷을 스타일리스트와 찾고, 입어보고, 수선하고, 다시 입어보고 하는 과정을 거쳤죠.”

극 중반 이후 윤겸이 라엘에게 떠나고 남겨질 때 오는 두려움과 회한은 심리적인 스트레스였다. 한 번 집에서 시연을 하면 휴지 한 통은 족히 쓰는 오열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현장에서 긴장을 유지하고 마지막 윤겸의 동반자살에 이끌려 가는 공포 그리고 마지막 정신을 놔버린 정신병원에서의 장면 등 잊히지 않는 장면이 많다.

“원래 촬영을 하면 촬영장의 감정을 집으로 가져오지 않거든요. 촬영 때도 가족들이 다 자고 나면 대본을 봤는데 이번에는 안 되겠더라고요. 남편은 밥하는 것 외에는 제가 집안일에 손도 못 대게 했고, 아이 역시 엄마가 일한다는 걸 알고는 옆에 오는 걸 참더라고요. 이 모든 배려 때문에 제가 소라 역할을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09년 ‘솔약국집 아들들’ 김복실 역으로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그 이후 다양한 역할을 했지만 유선이 가진 연기욕심은 이 모든 상황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늘 진짜 같길 원했고, 늘 한결같길 원했다. 방송이 거듭될수록 주머니 속 송곳처럼 도드라지는 그의 연기에 주변의 찬사가 이어졌다. 연락이 뜸하던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기 배우 황석정의 찬사에 밤중에 공원에서 산책을 하던 유선은 그만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다.

“용기를 많이 얻었어요. 연기하는 데 있어 어디까지 노력을 해야 새로운 연기를 할 수 있을까요. 제 한계는 어디까지 깰 수 있을까요. 그런 해답을 어렴풋이 풀고 앞으로의 시련을 뚫고 나가는 힘이 된 것 같아요. ‘정말 절실함을 갖고 노력하면 닿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죠.”

이번 작품을 통해 ‘코리언 조커’라는 별명을 얻은 유선. 당분간은 또 이런 악역은 맡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연기를 바라보고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는 그의 정직하고 솔직한 마음은 배우로서 큰 자양분이다. 그의 고통이 컸던 만큼 대중의 환희는 두 배로 컸으니 말이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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