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 않네, 그들의 사랑..달라졌네, 우리의 시선
기존 연애 예능 방식 따르지만 퀴어 커플이 주는 낯선 재미 인기
한국 사회 편견은 조금씩 변화..시청자 거부감 줄고 응원 이어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최근 1년간 방송가의 가장 ‘핫한’ 아이템이었다. <환승연애>, <나는 솔로>, <돌싱글즈>, <솔로지옥> 등 이른바 ‘연애 예능’들은 매 방송마다 큰 화제를 몰고 다녔다. 비연예인 출연진은 연예인급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런 연애 예능의 홍수 속에서도 성소수자의 자리는 없었다.
연애 예능이 이성애자들의 전유물이던 날들은 끝났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는 최근 국내 최초 ‘퀴어 예능’인 <메리 퀴어>와 <남의 연애>를 잇따라 선보였다.
<메리 퀴어>가 지난 8일 처음 선보였다. <메리 퀴어>는 동거 중인 퀴어 커플 세 쌍의 연애와 결혼 도전기를 다룬다. 게이 커플(보성·민준), 레즈비언 커플(가람·승은), FTM(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 트랜스젠더와 여성 바이섹슈얼 커플(지해-민주)이 출연한다. 방송인 홍석천과 신동엽, EXID 출신 하니가 진행을 맡았다.
방송 속 커플들은 함께 사는 집안에서 다정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요리를 하며 집들이를 준비하고, 화장대 앞에서 사이좋게 외출 준비도 한다. 하지만 집을 나서는 순간 세상의 편견과 차별에 맞닥뜨린다. 방송은 이들이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 때문에 겪는 역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보성과 민준 커플은 혼인신고를 위해 구청까지 가지만 ‘법적 부부’가 되지 못한 채 귀가한다. 지해와 민주 커플은 수영장에 놀러갔다가 탈의실 사용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당한다. 가람과 승은은 웨딩업체에 “레즈비언 커플도 가능하냐”고 매번 묻고, 가족에게 커밍아웃 하는 문제로 고민하기도 한다.
다소 무거운 분위기의 <메리 퀴어>와 달리 지난 15일 시작한 <남의 연애>는 시종 밝다. 남성 동성애자인 출연자들이 ‘남(男)의 집’에 함께 살며 짝을 찾는 7박8일을 그린다. <하트시그널>, <나는 솔로> 등 기존 연애 예능의 포맷을 그대로 가져왔다. 만남 첫날 직업·나이 등 개인정보를 서로 밝히지 않도록 하거나 방송 중반 ‘메기’(새 경쟁자)를 투입하는 공식도 충실히 따른다. 이 과정에서 출연자들이 성소수자로서 겪는 혼란이나 어려움은 일절 언급되지 않는다. 이들은 오직 사랑에만 집중한다. ‘사막여우랑 곰상이 섞인 얼굴이 좋다’고 말하고, 점찍은 상대와 데이트를 하고 싶어 전전긍긍한다
두 프로그램이 퀴어를 다루는 방식의 차이는 ‘퀴어물’(성소수자의 삶을 그리는 콘텐츠)과 ‘BL’(Boy’s Love·남성 동성애를 다룬 장르)의 차이와 유사하다. 퀴어물에서 주인공들의 성 정체성은 그들이 겪는 역경의 원인이 되지만, BL에선 전혀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메리 퀴어>와 <남의 연애>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결국 퀴어의 연애와 사랑이 이성애자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속상할 때 연인에게 위로를 받다가도 연인의 친구에게 묘한 질투를 느껴 투닥거리는 모습, 마음에 드는 상대와 애써 공통점을 찾는 모습들이 그것이다. <메리 퀴어> 속 커플의 일상을 지켜보다 MC 홍석천이 한 말은 퀴어 예능이 지닌 보편성을 드러낸다. “ ‘미우새’(SBS 예능 <미운 우리 새끼>) 보는 거랑 별반 다를 게 없네요.”
<메리퀴어>는 MC들의 따뜻한 시선 속에서 진행되지만, 일각에선 신동엽이 종종 내뱉는 농담이 성소수자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이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부 웨딩업체는 가람·승은 커플에게 자연스럽게 웨딩 플래너를 연결해준다. 민준·보성 커플은 법적 부부가 되지는 못하지만, 혼인신고 ‘접수’에는 성공한다(지난 4월부터 행정기관에서 동성커플의 혼인신고 접수가 가능해져 정부 전산기록에 남길 수 있게 됐다). 물론 이 같은 변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두 방송의 등장 그 자체다.
두 방송은 의미 외에도 즐길거리가 많은 콘텐츠다. 특히 <남의 연애>의 경우 기존 연애 예능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출연진이 성소수자라는 점에서 발생하는 낯선 재미가 있다. 온라인에서는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웨이브 관계자는 “<메리 퀴어>와 <남의 연애>는 공개 하루 만에 나란히 시청률 1, 2위에 올랐다”며 “<메리 퀴어>는 신규 유료 가입 견인 순위 5위로 시작해 상위권을 유지 중이고, <남의 연애>는 콘텐츠 오픈과 동시에 신규 유료 가입 견인 순위 1위에 올랐다”고 말했다.
최근 각종 방송에서 활약하는 성소수자 예능인도 하나둘 늘고 있다. 트랜스젠더 크리에이터인 풍자(본명 윤보미)는 지난 2월부터 방영돼 인기를 끌고 있는 웹예능 <바퀴 달린 입>에서 고정 멤버로 출연하고 있다. 구독자 71만명을 보유한 유튜버인 그는 지난 6월 종영한 SBS 예능 <검은양게임>에서도 활약했으며 최근 첫 방송된 채널 S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나대지마 심장아>에도 고정 패널로 합류했다. 홍석천의 말은 방송가의 이 같은 변화가 ‘느리지만 분명하게’ 이어질 것이란 걸 짐작하게 한다. “ ‘(세상이) 바뀔까?’ 제가 커밍아웃 하던 22년 전에 한 말이에요. 22년이 지났는데 이제 (혼인신고) 접수는 받아주네요. 이런 프로그램도 생기고요.”(홍석천, <메리 퀴어> 2회)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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