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자들의 목소리 될 것".. 美의회 '위안부 결의안' 채택 기여
■ 그립습니다 - 고 레인 에번스 미국 연방 하원 의원(1951∼2014)
오는 30일로 미국 의회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121 통과 15주년’을 맞는다. 뜨겁던 그 여름, 막바지 통과를 위해 미 의회 사무실을 발이 부르트게 뛰어다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오늘, 서초동 국립외교원 사료실 로비에 외롭게 서 있는 고 레인 에번스 의원의 흉상을 찾아가 꽃 한 송이 놓으며 고마움과 사랑의 마음을 안겼다. 2019년 7월 30일 그의 흉상 제막식. 지인들이 모여 조촐하게 그의 업적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관련된 이슈로 한·일 관계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정부 관계자들의 의견을 고려해 외부 언론을 일절 초대하지 않고 조용히, 조심스럽게 치렀다.
흉상 기념 준비 작업 중 하나로 워싱턴에서 에번스 의원을 각별히 사랑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그리고 많은 미 연방의원 동료가 에번스 의원 추모 기념위원회에 이름을 올려줬다. 어느덧 3년의 세월이 흐르고, 올해는 ‘일본군 위안부 121 통과 15주년’ 기념도 할 겸, 흉상 장소에서 그를 사랑했던 민간인들 주관으로 행사를 치르려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변함없이 한·일 관계에 예민하다는 이유로 행사 준비를 접어야 했다.
미 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시작은 1999년 11월 에번스 의원이 미 의회 의사록에 최초로 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록으로 역사의 첫발을 내딛게 됐다. 이 기록에는 ‘우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소리를 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사람들은 적의 말보다 친구의 침묵을 기억할 것’이라는 마틴 루서 킹의 말도 인용했다.
에번스 의원은 정계를 은퇴하기까지 5번이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미 의회에 내놨다. 특히 2006년 2월에 발의한 제759호 결의안은 당시 미 의회 국제관계위원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하는 쾌거를 얻은 바 있다. 이 결의안은 파킨슨병으로 당시 곧 은퇴할 에번스 의원에 대한 동료 의원들의 사랑의 선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부 공화당 지도자들의 철저한 저지로 이 결의안은 결국 본회의 마지막 레임덕 투표에 부쳐지지 못했다.
전문 분과위원회에서 통과되면 본회의에서 의장의 권한으로 간단한 음성 투표 절차를 거쳐 쉽게 통과되는 게 상례였는데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심으면 거둘 때가 있듯, 오랜 노력 끝에 2007년 마이크 혼다 하원 의원이 횃불을 이어 받아 청문회를 거치고 미국 내 풀뿌리운동과 정계의 지원으로 역사적인 승리를 이루게 됐다.
이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이 서너 분 생존해 계신다. 이번 여름 오랜만에 워싱턴을 떠나 한국을 방문했다. 도착하자마자 이용수 어머님과 며칠을 함께 보냈다. 언제나 밝고 열정적인 분. 한때 나보다 원기가 더 왕성했는데, 이제는 대구에서 서울에 도착한 날 묵고 계신 용산의 호텔 방을 들어가 보니 어머님은 침대에 누워 KTX 타고 오는 것도 힘들다고 하신다. 대구에 함께 내려간 후 어머님 댁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요양사가 휴무니 오늘 아침은 굶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데, 웬걸. 어머님이 직접 쑥 인절미와 과일 주스, 커피를 만들어주면서 나는 부엌에 얼씬도 못 하게 하셨다. 역시 철저하고 강인하신 모습을 보며 오래 건강하게 사셔서 원을 풀어야 할 텐데, 하고 맘이 찡했다. 며칠 뒤 저녁 식사 후 길가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내 팔짱을 끼더니 “부기, 부기, 기타 부기…” 하고 신기를 부리셨다. 모쪼록 오랜 세월 한목소리로 투쟁해 온 위안부 문제가 모든 할머님의 염원대로 해결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미국 의회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15주년을 맞으며, 이제는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이뤄지기를, 새로운 역사의 획이 그어지기를! 부디, 위안부 문제가 ‘사과하라, 배상하라’만 외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정의롭게, 은혜롭게 기억되기를 바란다.
서옥자 제2대 워싱턴정신대대책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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