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에 가려..무관심 속 인권유린 신음하는 아프간·미얀마

김선영 기자 2022. 7. 2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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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여성 수감자들이 지난 26일 칸다하르 중앙교도소에서 여성 교도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EPA 연합뉴스
미얀마 군부의 정치범 4인 처형에 분노한 태국 거주 미얀마인들이 지난 26일 방콕의 미얀마 대사관 밖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 26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거주하는 한 빈곤층 어린이가 땅을 헤집으며 고철 덩어리들을 찾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2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미얀마 군부 반대 집회에서 한 시위자가 ‘군부의 살해에 침묵하지 말라’는 문구가 담긴 전단지를 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 Global Focus - 탈레반·군부 득세에 ‘암흑기’ 놓인 두 나라

전 세계의 관심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쏠려 있는 동안 잊어진 나라들이 있다. 지난해 2월 군부 쿠데타 이후 군정의 엄혹한 통치하에 최근 민주화 인사 4명이 사형당한 미얀마와 지난해 8월 무장단체 탈레반이 재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이다. 이번 글로벌 포커스에서는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 국가적 ‘암흑기’에 놓인 미얀마와 아프간의 오늘을 다룬다.

■ 여성탄압·경제기능 상실 아프간

아프간 여성, 경제·교육활동 막혀… 하루 1명꼴 극단선택

주민 90% 식량부족 허덕… 마약판매가 主수입원 될 수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하며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이 사라지자 탈레반 강경파가 정권 실세로 득세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경제난으로 딸자식을 인신매매로 팔아넘기고, 여성들은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으면 거리에 나서질 못하고 있어요. 지금 정권엔 희망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중동 전문가인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는 지난 26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탈레반은 세계에 구호와 물자 지원 요청을 하려 유화책을 쓰는 척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박 교수는 “탈레반은 지난 5월부터 여성 부르카 착용을 의무화하고, 여성들이 이를 착용하지 않으면 보호자인 남성들을 처벌하며 여성을 투명인간 취급하고 있다”면서 여성 인권 문제를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실제로 유엔 인권위원회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아프간에서는 경제활동과 정상적인 교육활동이 불가능해진 여성들이 거의 하루에 한 명꼴로 목숨을 끊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에 기반한 탈레반은 여성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머리카락을 드러내면 남성을 유혹하는 행동이라고 판단해 이를 엄격하게 금지하면서 여성의 경제활동까지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재집권 직후에는 국제사회의 비판에 “여성 인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공염불이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전 세계가 혼란한 틈을 타 탈레반은 지난 3월 모든 여학교의 문을 닫았고, 보건 및 교육 이외의 대부분 분야에서 여성 채용까지 금지했다. 5월에는 장거리 여행에 남성 보호자가 동행해야만 하고,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려야 한다는 법령을 공표했다. 탈레반 1차 집권(1996∼2001년) 당시의 여성 억압 정책이 모두 되살아난 셈으로, 항의 시위를 주도했던 프로잔 사리 등 여성인권 운동가 4명은 지난해 11월 살해되기까지 했다.

유엔에서 아프간 여성 문제를 담당하는 앨리슨 데이비디언 대표는 25일 브리핑에서 “아프간은 여성의 고등학교 진학이 금지된 세계 유일국가로, 아프간 여성들은 자신들을 보이지 않는(invisible) 존재이자, 세계에서 잊어진(forgotten) 존재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인권 후퇴와 동시에 아프간의 사회·경제적 위기 역시 심각하다. 경제난 속에서 인구 절반이 극심한 기아에 직면해 있고 주민의 90%가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 세계은행(WB) 통계를 인용해 탈레반 집권 1년 만에 아프간 국내총생산(GDP)이 34%나 하락할 거라고 전망했다. 탈레반이 경제정책을 제대로 운용해본 경험이 없는 데다, 국제사회 제재까지 겹치면서 경제난이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제사회가 탈레반에 대한 광범위한 경제 제재에 나서면서 경제는 더욱 나락으로 빠졌다. 외국 기업 및 은행들은 아프간 현지 운영을 사실상 중단했고, 아프간 정부의 해외 자산은 동결됐다. 최근 미국이 동결한 아프간 정부의 해외 자금을 제3국에 예치해 탈레반이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방안이 논의됐으나 제3국 감독 조건을 탈레반이 거부하면서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탈레반이 통치자금 마련을 위해 지하경제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마약성 식물인 양귀비 재배 및 판매를 본격화하면서 국제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외 언론 및 전문가들은 “탈레반이 이대로 계속 경제 압박을 받게 되면 결국 마약 판매를 국가 주 수입원으로 삼게 될 가능성도 있으며, 중국과 손을 잡을 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문제는 탈레반의 폭압 정치와 경제 위기는 앞으로 계속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슈퍼파워’ 미국이 떠난 뒤 외부 지원이 끊긴 데다, 미·중 갈등 격화와 우크라이나 사태 속에서 국제무대에서 아프간은 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도 “국제사회의 감시·견제도 없고, 탈레반에 저항하는 반군 세력도 전무하기 때문에 탈레반 정권은 이대로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며 “파키스탄 내 소탕 작전으로 아프간으로 쫓겨온 강경파까지 감안하면 탈레반 정권은 갈수록 더 극단적 폭압 정치를 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민주화 인사 4명 처형한 미얀마

미얀마, 쿠데타 후 2123명 사망… 빈곤에 시위동력 잃어

“옆집 아저씨가 세간살이 훔치고, 택시기사는 강도 돌변”

“모두가 미얀마를 잊은 사이에 민주화 인사 4명이 군부에 의해 사형을 당했습니다. 이번 사형은 군부가 민주화 세력에 최후통첩을 날린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제 총선을 한 번 더 치러서 군부가 국회를 장악하거나 헌법 개정을 통해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할 겁니다.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민주화 세력도 힘이 많이 빠진 게 사실입니다.”

최영준 경희대 무역학과 교수 겸 한·미얀마연구회 부회장은 지난 26일 문화일보 전화통화에서 지난해 2월 쿠데타로 집권한 미얀마 군부가 46년 만에 정치범 사형을 집행한 것에 대해 “국제사회의 시선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쏠리자 미얀마 군부가 인권유린 행위를 강행했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미얀마 군정은 24일 민주진영의 표 제야 또(41) 전 의원과 시민활동가 초 민 유(53) 등 정치범 4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는데, 민주화 인사 처형은 1976년 이후 처음이어서 국제사회가 충격에 빠진 상태다. ‘국민 힙합 가수’인 또 전 의원은 군부 체제에 비판적인 랩을 하다 아웅산 수지 전 국가 고문이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의 의원으로 변신해 활동을 이어가다가 지난해 11월 체포됐다. 초 민 유는 1988년 군부의 쿠데타에 저항한 학생운동 출신들이 조직한 민주화 운동 단체인 ‘88세대 학생 그룹’의 지도자였다. 미얀마 인권단체인 미얀마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현재 미얀마에서는 117명의 민주화 운동 인사가 사형 판결을 받았다. 특히 26일 기준 2·1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시민 2123명이 사망했으며 1만4883명이 체포되거나 처벌된 것으로 파악된다.

민주화 운동 자체도 힘이 많이 빠진 상태다. 이번 사형 집행 이후 또다시 반군부 시위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지만, 극심한 경제난으로 인해 동력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취업난과 식량난이 심각한 상황으로, 운동가들 역시 당장 끼니를 거르다 보니 다들 지쳐있다. 미얀마 현지에 사는 T(가명)는 문화일보에 문자 메시지를 통해 “미얀마 군부가 법적으로 금융 결제 자체를 막고, 은행에 허가를 받아야 송금할 수 있도록 제재를 강화하면서 민생 경제가 파탄이 났다”며 “경제가 너무 어려우니 생계형 강도가 판을 치는데, 옆집 아저씨가 세간살이를 훔치고 택시를 타면 택시 기사가 강도로 돌변한 정도로 미얀마 내부가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경제 상황 악화의 주요 원인은 군부의 강압 통치지만, 역설적이게도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역시 군부뿐 아니라 일반 시민의 삶을 옥죄는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국내외적 불안으로 미얀마 통화인 ‘짯’의 가치가 추락하고 있다. 이는 수입물가를 자극해 민생경제에 독이 될 수 있다. 실제 현재 암시장에서 1달러는 2500짯에 거래되고 있는데, 이는 군부가 지난 4월 고정한 1850짯을 크게 웃돈다. 세계은행(WB)은 21일 ‘미얀마 경제 모니터 보고서’에서 미얀마의 2022년 국내총생산(GDP)이 2019년 대비 13% 떨어질 것으로 추정했다. 마리암 셔먼 WB 미얀마·캄보디아·라오스 지국장은 “가계소득 감소, 식량 부족, 빈곤 악화 등이 미얀마 국민의 회복력을 계속해서 시험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황은 이렇지만 특별한 해법이 보이지 않아 미얀마 국민의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특히 국제사회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이번 ‘기습’ 사형 집행을 단행한 군부가 앞으로도 강압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현지에서는 미국과 서방의 압력에도 군부가 국제 사회와 대화에 나서거나 물러날 가능성이 없으며, 군부가 총선을 거쳐 정권 정당성을 획득한 뒤 헌법 개정을 통해 세력 공고화에 나설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다만 군부가 민주화 운동 지도자인 수지 전 고문과 국가원수인 윈 민 대통령에 대해 사형 등 추가적 폭력 도발을 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은 위안거리다. 최 교수는 “수지 전 고문이나 윈 민 대통령을 죽일 명분을 찾기는 어렵고, 수지 전 고문이 사망할 경우 민주화 세력이 뭉치고 전 세계의 규탄을 받을 수 있기에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김선영 기자 sun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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