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치매 치료제 논란..'약'일까 '독'일까

차지현 2022. 7. 28.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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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 논문 '조작' 의혹..핵심 가설 '흔들'
"아밀로이드베타 부정은 과도한 해석" 주장도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최근 제약바이오 업계를 뜨겁게 달군 이슈가 있습니다. 알츠하이머 발병 원리를 밝힌 것으로 알려진 논문이 조작 의혹에 휩싸인 건데요. 이로 인해 '아밀로이드베타가 알츠하이머의 핵심 발병 원인'이란 가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아밀로이드베타를 표적으로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개발 중인 국내외 업체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고요.

지난 21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는 지난 2006년 네이처에 개재된 미국 미네소타 대학의 논문이 조작됐을 수 있다는 과학계 의견을 냈습니다. 해당 논문은 'Aβ*56'(아밀로이드베타 스타 56) 단백질을 쥐에 주입했더니 인지 장애를 보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이는 Aβ*56가 알츠하이머의 핵심 발병 원인이라는 이론의 근거가 돼 왔습니다. 사이언스 측은 해당 논문이 알츠하이머 진행 과정에서 단백질의 역할을 부풀리기 위해 데이터와 이미지를 조작했다고 보도한 겁니다.

알츠하이머는 아직 발병 원인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난치병입니다. 단백질 찌꺼기인 아밀로이드베타가 신경세포 바깥에 쌓이면 주위 세포의 순환이 어려워져 알츠하이머가 발병한다는 게 가장 유력한 가설입니다. Aβ*56는 아밀로이드베타의 하위 유형입니다. 수많은 국내외 제약바이오 업체가 이를 근거로 아밀로이드베타를 표적하는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개발해왔죠. 논란이 된 이번 논문의 인용 건수는 약 2300건에 달합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지난 16년간 쌓아온 관련 알츠하이머 연구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셈입니다.

사실 아밀로이드베타만으로 알츠하이머 치료가 어렵다는 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알츠하이머 치료제 '애드유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 역시 유효성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애드유헬름이 알츠하이머 환자의 아밀로이드베타를 효과적으로 제거했음에도 증상이 개선된 환자는 22%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업계에선 FDA의 허가로 알츠하이머 발병 원인을 규명하는 게 오히려 어려워졌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결국 애드유헬름은 미국 보험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아밀로이드베타 표적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개발하는 업체의 성과도 좋지 않습니다. 미국 일라이릴리는 지난 2016년 '솔라네주맙'의 임상3상에 실패하면서 개발을 중단했습니다. 스위스 로슈도 지난달 '크레네주맙'이 상염색체 우성 알츠하이머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3상에서 1차 평가지수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알츠하이머 연구를 담당해온 한 신경과 교수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환자 중 아밀로이드베타 침착이 없는 환자도 있고, 아밀로이드베타가 쌓여도 알츠하이머 증상을 보이지 않는 환자도 많다고 합니다.

현재 개발 중인 아밀로이드베타 표적 알츠하이머 치료제로는 일라이릴리의 '도나네맙', 로슈의 '간테네루맙', 일본 에자이·미국 바이오젠의 '레카네맙' 등이 있습니다. 모두 올 하반기 임상3상 결과 발표를 앞뒀는데요. 이들 치료제의 임상 결과가 이번 논문 조작 의혹의 진실 공방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반대로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아밀로이드베타를 표적으로 한 치료제 개발 업체는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논란 이후 젬백스, 아리바이오 등 국내 업체는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아밀로이드베타 외에도 다양한 기전을 표적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젬백스 측은 알츠하이머 치료제 후보물질 'GV1001'이 여러 기전에 작용하는 약물로, 아밀로이드베타 가설의 의미가 퇴색된다고 해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다만 이번 의혹으로 아밀로이드베타 가설을 완전히 부정하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아밀로이드베타 가설은 1991년 이후 여러 논문을 통해 증명돼 왔는데요. 박재경 하나증권 연구원은 "해당 논문은 아밀로이드베타 가설 중 용해성 올리고머(Aβ*56)가 신경독성을 가진다는 가설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서도 "이 가설과 관련해 4000건 이상의 논문이 게재됐고 다수의 독립적 연구가 진행돼 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아밀로이드베타의 종류엔 이번에 문제가 된 Aβ*56 외에도 다양하게 존재하고요.

일각에선 알츠하이머 치료제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릴 것으로도 보고 있습니다. 미국국립보건원(NIH) 임상시험정보사이트 '클리니컬트라이얼즈'에 따르면 올해 초 기준 143개 후보물질을 대상으로 총 172건의 알츠하이머 치료제 관련 임상시험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31개 후보물질이 임상3상에 진입했고요. 이 중 아밀로이드베타를 표적하는 후보물질은 6개였습니다. 아밀로이드베타가 아닌 다른 부분을 표적하는 나머지 치료제는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알츠하이머의 발병 원인을 찾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알츠하이머 환자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전 세계 알츠하이머 환자는 약 5000만명으로 추산됩니다. 특히 고령화로 알츠하이머 환자가 늘어나면서 사회적 비용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반면 알츠하이머 시장은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는 '난공불락'의 영역으로 꼽힙니다. 논란이 이어지는 만큼 아직 갈 길이 먼 상황이고요. 하지만 논란이 많다는 것은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이 더욱 활발해지길 기대해봅니다.

차지현 (chaji@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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