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말만 지키렵니까, 워매 징허구만, 고장말 다 이자뿔라
드라마 등장한 제주말 자막
"외국어 같아" "고유함 노출"
빠르게 소멸하는 사투리 환기
"표준어 갖지 못한 가치 숨어"
지자체 고장말 살리기 나서
“혼저혼저 오라게(빨리 와야지). 무사(왜) 맨날 늦엄시니(만날 늦니)?”
최근 인기리에 끝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늦게 나타난 영옥(한지민)이가 “삼춘 탑서” 하자 혜자(박지아) ‘삼춘’이 이렇게 타박했다. 드라마는 이 장면에 ‘삼춘(삼촌): 남녀 구별 없이 어르신을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이란 자막을 내보냈다.
제주 방언 자막 처리 논란
제주 방언을 자막 처리한 것을 두고 “제주말도 한국어인데 마치 외국어처럼 느끼게 해 생경했다”는 시청자 반응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가들 평가는 다소 다르다. 권미소 제주학연구센터 전문연구원은 1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제주어는 ‘아래아’(ㆍ)가 존재할 정도로 특징적이다. 자막을 넣은 것은 제주어의 고유함을 노출해 시청자들이 지역어를 친근하게 느끼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들의 블루스>의 제주말 자막은 방언의 현실을 좀 더 세심하게 보여준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권 연구원은 “드라마에서 연령대별로도 극 중 인물들이 사용하는 언어(제주 방언)가 달랐다”고 짚었다. 등장인물이 나이에 따라 쓰는 ‘제주말’에 차이가 있었고, 나아가 젊은 등장인물일수록 제주말 쓰임이 적었다는 얘기다.
지역 방언 보존 정책
제주 방언뿐 아니라 각 지역 말은 별도 자막이 필요할 정도로 빠르게 소멸하고 있다. 표준어 교육과 미디어 영향 때문이다. 이기갑 목포대 명예교수는 “표준어는 필요하지만, 방언을 말살할 필요는 없다. 방언엔 표준어가 갖지 못한 여러 가치가 숨어 있다”고 말했다.
남북한 14개 도의 방언 지도를 담은 <팔도 말모이> 저자 위평량 박사는 “모든 문화는 언어를 통해 전해진다. 지역어를 잃는 것은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잃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방언 보존에 나서는 자치단체도 있다. 제주가 선도적이다. 제주도는 2007년 9월 ‘제주어 보전 및 육성 조례’를 제정했다. 제주 방언을 지키기 위한 예산 지원 등의 근거를 담은 조례다.
이 조례에 따라 설립된 제주학연구센터는 제주 방언 연구와 기록사업 등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제주어대사전> 편찬 작업이나 제주어박물관 건립 방안 연구가 그 예다. 김순자 제주학연구센터장은 “제주도는 고어가 많이 남아 있는 드문 지역이다. 제주어는 보전해야 할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강릉시도 방언 보존 노력이 눈에 띄는 자치단체다. 강릉시는 2020년 9월 ‘국어진흥 및 지역어 보존·육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에 국어 진흥과 지역어 보존·육성을 동등하게 명시한 점이 특징이다. 이는 대부분의 자치단체에서 국어진흥 조례에 ‘지역어 보존 노력’을 달랑 한 줄 걸쳐 놓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1994년 설립된 사단법인 강릉말 보존회는 ‘강릉사투리 경연대회’ 등 민간 차원의 강릉 방언 보존 운동을 꾸준하게 이어왔다.
방언 사전도 꾸준히 발간되고 있다. 경남방언연구보존회는 경남도 지원을 받아 2017년 <경남방언사전>을 냈다. 경남과 부산·울산의 방언 1만9천여개가 담겼다. 이 사전에 실린 꼬꾸람, 너불래기, 당세기 등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방언 280여개에는 사진까지 실어 이해도를 높였다.
방언은 문화콘텐츠의 보고
방언은 문화 콘텐츠의 보고이기도 하다. 이기갑 목포대 명예교수는 “문화콘텐츠 작업과 상업 광고에 방언을 활용하면 젊은층뿐 아니라 나이 든 세대에게도 신선함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전남도와 한국맥도날드가 손을 잡고 전라 방언을 활용해 제작한 ‘보성녹돈 버거’ 광고가 그 예다. 이 광고에서 김형남 할아버지는 “워매 징하게 맛있네! 입안에서 녹네 녹아!”라는 구수한 전라도 말씨로 녹돈 버거를 홍보한다.
광주에서 발행되는 매체 <전라도닷컴>은 2000년 3월 창간 때부터 전라도 사람들의 입말을 그대로 옮기고 있다. 매체에서 입말을 그대로 실은 것은 이 매체가 처음이었다. 이달로 243호까지 낸 <전라도닷컴>은 항꾼에(함께), 싸목싸목(천천히), 암시랑토(아무렇지도) 등 전라도의 삶과 정신이 깃든 수많은 말들을 길어 올렸다. 이 매체의 남신희 편집장은 “지역 말을 향한 관심과 애정은 지역의 고유한 색과 문화를 살리고, 건강한 공동체 의식을 북돋는 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광주송정역 앞 ‘역서사소’(여기서 사시오)는 ‘따뿍담아’, ‘나의개베’ 등 전라 방언을 새긴 가방과 달력, 연필, 엽서 등을 판매하는 문구 브랜드 겸 문구용품점이다. ‘따뿍’은 가득, ‘개베’는 가방을 일컫는 전라 방언이다. 볼펜에 적힌 ‘쎄빠지게(혀빠지게) 공부하자’는 말도 흥미롭다. 김진아 공동대표는 “젊은층들은 재미있어하고 부모 세대는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정대하 허호준 최상원 박수혁 기자 daeha@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윤 대통령, 세 번째 업무보고 돌발 연기…다음주는 휴가
- 경찰국 설치 ‘부적절’ 56%…윤 대통령 지지율 34% [NBS]
- ‘장제원 아들’ 장용준, 2심도 징역 1년…“아버지 피눈물 닦아드릴 것”
- 1천억 추징금 미납 전두환…연희동 집 한채도 추징 못한다
- 김정은 “윤석열과 군사깡패들 추태·객기, 상응한 대가 치를 것”
- 검찰, 여성가족부 압수수색…대선공약 개발 관여 의혹
- 인하대 대자보 2개 뜯겨나갔다…“성차별이라 부르지 못하고”
- 하태경, ‘내부 총질’ 공개에 “대통령 포용력 부족하단 인식 확산”
- ‘팽나무 박사’ 허태임 “우영우 인기 반갑지만…” 우려한 까닭은
- 대통령제 우습게 본 대통령의 예고된 비극 [박찬수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