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헌 vs 위헌, 팽팽한 사형제 존폐 논거
2018년 6월 A씨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였다. 어린 시절부터 형과 자신을 차별 대우했고, 잔소리가 심했다는 이유였다. A씨는 부모를 살해하기 석 달 전, 공공장소에서 성추행을 저지른 적이 있다. 당시 그의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을 잘 보살피겠으니 전과자가 되지 않도록 선처해달라’고 수사기관에 빌었다. A씨는 정신질환이 있다며, 환각과 망상 탓에 부모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건 정황과 의료진 소견을 살핀 뒤, 그가 감형받기 위해 ‘꾀병’을 부린다고 봤다.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다. A씨는 형법상 사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2019년 A씨는 사형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직접 제기했다. 7월14일 헌법재판소(헌재)의 사형제 공개 변론은 이렇게 열렸다.
25년간 대한민국은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1997년 23명의 형을 집행한 게 마지막이었다. 국제앰네스티는 한국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한다. 이는 역대 대통령들의 결정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형제도 자체에 부정적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치적 이유로 집행하지 않았다. 사형 집행에 각각 신중·찬성 입장이었지만, 국제인권단체·유럽연합(EU)과의 마찰을 우려했다고 알려져 있다. 유럽연합은 기본권 헌장에 사형제 폐지를 명시하고 있으며, 사형선고 가능성이 있는 국가에는 범죄자 인도를 하지 않는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불이익을 주기도 한다. 일례로 인도는 사형 집행을 중단하라는 유럽의회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아 2013년 유럽연합과의 FTA 협상이 결렬됐다.
여론은 존치론에 쏠린다. 2018년 8월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사형제 유지 의견은 69%, 폐지 의견은 22%였다. 사형제 찬성 여론을 떠받치는 것은 범죄자들의 행각이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사법부는 웬만한 죄질로는 사형을 선고하지 않는다. 존속살해를 범한 뒤 이번 헌법소원을 제기한 A씨도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유영철·강호순 등 연쇄살인범이나, 거기 준하는 극악한 범죄자들만 사형을 선고받는다. 현재 복역 중인 사형수는 59명이다. 유지 응답자들은 이들에게 걸맞은 처벌이 사형밖에 없다고 본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존치 응답자들은 “죗값을 치를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흉악범은 살려둘 이유가 없다” 따위 이유를 밝혔다. 반면 폐지 응답자들은 “인권과 생명 존중”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없다” 따위를 근거로 삼았다. 흉악범죄가 증가하면 존치 의견이 늘고, 시간이 지나면 떨어진다. 그러나 폐지 의견이 존치 의견을 앞지르는 여론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헌재는 이미 두 차례 사형제의 위헌 여부를 판단한 적이 있다. 1996년에는 7대 2, 2010년에는 5대 4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2010년 헌재는 우선 ‘사형제도가 헌법에 위반되는지 판별하는 것은 헌재 권한이지만, 법률의 존폐는 입법부 결정’이라고 전제했다. 얼핏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이유가 있다. 헌재의 합헌 논리를 풀면 이렇다. ‘헌법에 사형이 규정되어 있다면, 헌재는 사형 자체가 위헌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헌법 제110조 4항은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은 (…)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한다. 이 문구에 ‘사형’이 적혀 있기 때문에 ‘법률의 사형 규정은 위헌’이라고 결정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 밖에도 헌재는 사형이 범죄를 예방하고, 정의를 실현하며, 사회를 방어하는 효과가 있다고 봤다. 예외적 경우 생명권을 박탈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헌법소원 청구인의 변론은 12년 전 헌재 결정에 대한 반박으로 시작한다. 헌재가 6월2일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청구인 측은 ‘헌법에 있으니 위헌이 아니다’라는 논리를 부정했다. 헌재가 인용한 헌법 제110조는 전시 등 위급 상황에서 벌어진 범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게 ‘모든 범죄에 사형제를 허용할 수 있다’는 헌법적 근거는 아니라는 게 주장 요지다. 이 보도자료에는 청구인 외에 ‘이해관계인 법무부 장관의 의견 요지’도 적혀 있다. 형사소송법상 사형 명령 권한은 법무부 장관에게 있다. 한동훈 장관은 사형제 존치 입장으로, 청구인 주장과 맞섰다.
정말 사형제가 범죄를 예방할까
사형제를 뒷받침하는 양대 논거는 ‘억제’와 ‘응보’다. 2010년 헌재는 이 두 요소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사형은) 일반 국민에 대한 심리적 위하(위협)를 통하여 범죄의 발생을 예방하며 극악한 범죄에 대한 정당한 응보를 통하여 정의를 실현한다.”
정말 사형이 범죄를 예방할까? 불분명하다. 오랜 기간 학자들이 골몰해온 주제이지만, 여전히 뚜렷한 합의를 보지 못했다. 1930년대 미국 학계에서는 ‘사형을 집행해도 범죄 억제에 효과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통설이었다. 1970년대에는 ‘사형이 살인사건을 줄인다’는 연구가 힘을 얻었다. 최근에는 연구마다 결론이 엎치락뒤치락이다. 2010년 한 연구팀이 억제 효과가 빈약하다고 분석하면, 2년 뒤 다른 연구팀이 ‘(범죄 예방에) 유의미한 효과가 드러난다’고 반박하는 식이다.
헌법소원 청구인은 미리 제출한 서면에서 이 사실을 짚었다. “사형제는 다른 형벌에 비하여 효과적 범죄 억제력이 있다거나, 사형제의 존치가 극악 범죄의 예방에 기여한다는 막연하고 추상적 추론에 근거하고 있으나, 이에 관한 확실한 근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법무부 장관도 범죄 억제 효과를 단정하지 못한다. 다만 ‘효과가 없다는 증거도 없지 않으냐’는 입장이다.
존치론이 힘을 얻으려면 사형이 다른 형벌보다 범죄 억제력이 더 커야 한다. 오판으로 밝혀질 경우 피해(사망)를 보상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억제 효과를 통계로 증명하지 못하는 것은 존치론의 큰 약점이다. 그러나 이 증명은 애초에 너무 어렵다. ‘사형 집행을 늘리자 흉악범죄가 줄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증명되지 않는다. 짧지 않은 기간에 사회·경제적 조건이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같은 현상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확실한 사례’는 존재한다고 한들 확보가 어렵다. 예컨대 ‘사형제도가 없었다면 흉악범죄를 저질렀을 사람이 사형이 두려워 범행을 참았던 사례’다. 사실상 접하는 게 불가능하다.
‘예방’에 비해, ‘응보’는 사형제 존치론에 강력한 논거가 된다. 법무부 장관은 헌재에 이런 의견을 제출했다. “(사형제는) 객관적 정의 감정에 근거한 응보의 발로로서 정의에 합치된다. (…) 피해자들의 가족 및 일반 국민의 정의 관념 등을 고려하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형이 사형을 대체할 수는 없다.” 반면 청구인 측은 이렇게 반박한다. “사형제는 인간의 존엄성을 절대적 가치로 승인하는 근대적 의미에서 응보라고 할 수 없다.”
양측의 주장은 정반대이지만 응보에 대한 시각은 비슷하다. 그것은 복수이고, 살풀이다. 이들은 응보가 흉악범죄 피해자들을 대리해 범죄자의 목숨을 빼앗는 과정이라고 본다. 한쪽은 ‘정의’로운 의도에 주목하고, 다른 쪽은 ‘인간 존엄성’을 벗어난 수단이라고 본다. 2010년 헌재는 전자의 손을 들었다. 당시 헌재는 사형제가 지니는 응보 성격에 대해 “범죄자가 스스로 선택한 잔악무도한 범죄행위의 결과이기에 인간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라고 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의 ‘7월2일 판례’
범죄자의 생명과 무고한 피해자의 생명을 비교하는 일은 사형 존치론에 찬동하는 대중이 즐기는 논변이기도 하다. 1988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조지 허버트 부시(아버지 부시)와 맞붙은 민주당 후보 마이클 두카키스는 이 문제로 곤욕을 치렀고, 낙선했다. TV 토론에서 사회자는 사형 폐지론자인 두카키스에게 “당신의 아내가 강간당하고 살해돼도 그 사형에 반대하나”라고 물었다. 두카키스는 “사형제의 범죄 예방 효과가 없다. 사형제보다 더 좋은 대안이 있을 것이다”라고 답했고 이후 수세에 몰리게 됐다.
사형이 추구하는 응보가 ‘대리 복수’가 아니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여전히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 사법부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1972년 사형제도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사형은 수정헌법 제8조가 금지하는 ‘잔인하고 이례적인 처벌’에 속한다는 것이다. 불과 4년 뒤인 그레그 대 조지아 사건 판결에서 연방 대법원은 입장을 바꾼다. 적절한 기준을 세우면 ‘합헌적 사형’이 가능하다고 결정했다. 응보에 대한 낯선 시각도 이 판결에서 등장한다.
미국 법학계에서 ‘7월2일 판례’라고 불리는 이 판결문에서, 미국 연방 대법원은 정의로운 응보가 인간 존엄성을 파괴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잔인하고 이례적인 처벌’을 금지한 이유는 인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인데, “사형은 인간 존엄성의 핵심 정의에 잘 어울린다”라고 본 것이다. 이 판결은 사형의 응보(retribution) 주체로 범죄 피해자가 아닌 인간과 사회를 꼽는다. “사형은 특히 모욕적인 행위에 대한 사회의 도덕적 분노다. (…) 특정 범죄는 인류에 대한 극심한 모욕이기에 그에 적절한 대응이 사형뿐일 수 있다.” 미국 대법원은 사회와 구성원, 인간성(humanity)이 입은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이 응보라고 판단했다. 또한 사형이 “극단적 범죄에 어울리는 극단적 제재”라고 보았다.
현재 우리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6명 정도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유남석 소장을 비롯한 재판관 4명은 사형제 폐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6명 이상이 찬성해 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 역사적 결정이 된다. 단순한 위헌 여부뿐만 아니라 ‘사형이 무엇인지’ 정의하게 될 판결문 전반을 주목할 법하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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