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자유 위해 목숨 바친 '그리운 이름'들.. 영원히 각인되다

박영준 2022. 7. 28.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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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추모의 벽'에서 하나되다
미군·카투사 전사 4만3808명
알파벳 순으로 대리석 새겨
양국 관계자 등 3000명 참석
尹 "혈맹 강고함 상징 조형물"
바이든 "참전용사 계속 기억"
6·25전쟁 전사자인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 출신의 도널드 던도어 미국 육군 상병과 강원 강릉 주문진 출신의 한상순씨는 모두 22세 때인 1953년 7월 경기 연천군의 폭찹힐 전투에서 며칠 간격을 두고 눈을 감았다.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 내 추모의 벽 한 부분에 꽃다발이 놓여 있다. AP연합뉴스
“저는 아버지를 한 번도 실제로 보지 못했어요. 제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는 전쟁에서 실종됐어요. 아버지는 (어머니 배 속에) 아기가 생겼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것이 전부였어요. 아들인지 딸인지도 몰랐죠.”

던도어 상병의 딸 데니스 바처(69)씨가 미국 워싱턴 한국전참전기념공원 추모의 벽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을 안타까운 듯 내려다보며 말했다.

던도어 상병은 1953년 3월 결혼식을 올리고 몇 주 뒤 6·25전쟁에 참전했다. 미국 육군 제7사단 17연대로 배치받아 7월6일 폭찹힐 전투에서 실종됐고, 이듬해 사망자로 처리됐다. 22세 때다. 데니스씨는 아버지 실종 후인 11월에 태어났다. 데니스씨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은 힘든 일”이라며 “할머니와 가족들은 항상 아버지를 그리워했다”고 말했다.

참전용사기념공원 내 추모의 벽 준공식을 하루 앞둔 26일(현지시간) 전사자 유가족 800여명이 추모의 벽을 방문해 가슴에 묻은 그리운 이름을 확인하는 행사를 가졌다. 유족들은 검은색 석판에 새겨진 하얀색 이름 위에 백장미를 올리고 쓰다듬거나, 연필을 문질러 탁본을 뜨면서 고인을 기억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한자리에 새겨진 6·25전쟁 전사자들 미국 워싱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 내 추모의 벽 준공식을 하루 앞둔 26일(현지시간) 전사자 이름이 새겨진 석판 위에 전사한 미군의 사진과 추모를 뜻하는 흰색 장미가 놓여있다. 6·25전쟁 당시 목숨을 잃은 미군과 한국인 카투사(KATUSA: 주한미군 배속 한국군) 4만3808명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의 벽은 27일 준공식에 앞서 이날 유가족에게 먼저 공개됐다. 추모의 벽은 한국 정부의 사업비 287억원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워싱턴=로이터연합뉴스
데니스씨는 팔뚝에 새긴 아버지 얼굴의 문신을 보여줬다. 아버지를 기리는 자신만의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자라면서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지난해 12월에 돌아가셨다. 살아 계셨으면 이곳에 함께 왔을 것”이라며 “아버지의 이름이 이곳에 새겨진 것은 저에게 아주 큰 의미다.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한국 국적 카투사(KATUSA: 주한미군 배속 한국군) 전사자 고 한상순씨의 아들 신희(72)씨도 이날 추모의 벽을 찾아 아버지 이름을 확인했다. 아버지는 1952년 5월 제주 모슬포 제일훈련소에서 군사교육 후 던도어 상병과 마찬가지로 7사단 17연대에 배치돼 폭찹힐 고지 전투에서 1953년 7월10일 전사했다. 그도 22세 때다.
현장 찾은 한·미 유족들 6·25전쟁 카투사 전사자 고 한상순씨의 아들 한신희씨가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 추모의 벽 공개 행사에서 생전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신희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제가 3세 때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면서 “아버지가 그리울 때는 사진을 보고 그리움을 달랬다”고 했다. 신희씨가 태어난 지 1년 반 만에 입대한 아버지는 이듬해 1월 잠시 휴가를 나와 아들을 안고 사진을 찍었다. 신희씨는 이날 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한국에서 워싱턴까지 날아왔다.

신희씨는 이날 추모의 벽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을 연필로 탁본했다. 그러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너무 기뻐하실 것”이라며 “혼을 풀어드린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하다”고 감격해 했다.

한번 안아보지도 못한 딸과 이제 막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아들을 남긴 던도어 상병과 한상순씨는 69년이 지나 워싱턴 추모의 벽에 나란히 이름이 새겨졌다.
6·25전쟁 전사자 도널드 던도어 미국 육군 상병의 딸 데니스 바처씨가 추모의 벽에 새겨진 아버지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27일 오전 추모의 벽 준공식에는 한·미 정부 관계자 등 3000여명이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각각 기념사를 통해 추모의 벽 준공을 기렸다. 윤 대통령은 박민식 보훈처장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한·미 혈맹의 강고함을 나타내는 조형물로 건립됐다”며 “참전용사는 대한민국을 지켜낸 자유의 수호자이자 진정한 영웅이다. 여러분 희생 위에 세워진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추모의 벽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미군과 함께 외국군 전사자 이름이 새겨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지난해 5월 착공돼 15개월 만에 준공된 추모의 벽은 미군 전사자 3만6634명, 카투사 전사자 7174명, 모두 4만3808명의 이름이 대리석 100장에 각인됐다. 1995년 한국전 참전용사기념공원이 설립됐지만 전사자 이름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 추모의 벽 건립 사업이 추진됐다. 2016년 10월 미국 상원에서 추모의 벽 건립 법안이 통과됐지만, 예산 확보 문제로 사업이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국가보훈처와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KWVMF), 재향군인회, 삼성과 현대 등 국내 기업, 국민의 성금으로 예산을 마련했다.

추모의 벽에는 미군과 카투사 전사자의 이름이 알파벳 순으로 함께 실렸다. 주한 미군사령관을 지낸 존 틸럴리 KWVMF 이사장은 올해 세계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미군 전사자의 이름과 한국 국적의 카투사 전사자의 이름이 알파벳 순으로 함께 새겨지는 의미에 대해 “완전히 통합되는 것이다. 그들(미군과 카투사)이 함께 생각했던 방식이기 때문이다. (한·미연합사령부의 모토인) ‘같이 갑시다(Go Together)’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국전쟁 전정협정 체결 69주년인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열린 '추모의 벽' 준공식 참석자들이 추모의 벽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틸럴리 이사장은 앞서 26일 유가족 추모 행사에서 “오늘 처음으로 여러분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공개한다”면서 “여러분은 큰 희생을 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여러분과 함께 늙어 갈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유가족에게 감사를 표했다. 조태용 주미 한국대사는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리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족들의 희생 덕분에 한국은 경제와 민주주의 발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7·27 정전협정 69주년을 하루 앞두고 포고문을 발표해 한·미 관계가 한국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의 토대였다면서 한·미동맹이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반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3만6000명이 넘는 미군과 그들과 함께 싸운 7000명 이상의 한국군 장병들이 함께 전사했다”며 “우리는 계속해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국가에 대한 봉사와 우리의 이상을 가능하게 한 모든 것을 기린다”고 밝혔다. 미국 대통령은 매년 정전협정일에 맞춰 포고문을 냈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박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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