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내장 사태 후폭풍에.. 환자들만 비급여 '진료비 폭탄' [심층기획]

김준영 2022. 7. 2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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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병원·소비자 갈등 심화.. 처방책 없는 정부
실손보험금 백내장 비중 1년새 2배 ↑
보험업계 손해율 늘자 심사기준 상향
의료계 반발하고 소비자는 소송 제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사안도 입장차
보험사 서류 입력 등 비효율 호소하나
의료계, 데이터 축적한 이윤확대 우려
정부, 비급여 보고의무 등 칼 들었지만
의료계 "사적 영역까지 개입·통제" 반발
복지부 수장은 공석.. '해법 찾기' 난망
직장인 이모(40)씨는 최근 부모님 댁을 찾았다가 어머니가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딱히 눈 건강이나 시력에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수술을 받았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계모임을 하는 친구들까지 모두 함께 수술을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어차피 나중에 나빠지면 할 거 미리한 거고, 돈도 안 들었는데 좋잖아”라던 어머니도 이후 백내장 수술과 관련한 각종 논란을 접할수록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씨는 “뉴스로만 문제가 된다는 소식을 여러 번 접했지만, 가족까지 백내장 수술을 받았을 줄은 몰랐다”며 “어머니와 계속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계모임뿐 아니라 교회를 같이 다니는 지인 등 백내장 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고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하루 평균 40억원 수준이던 백내장과 관련한 실손보험금 청구가 올해 들어 100억원이 넘어가면서 보험업계는 물론 정부까지 비상이 걸렸다. 사실 백내장 수술과 관련한 상황은 수년 전부터 꾸준히 문제로 지적돼왔다. 다만 최근 들어 일부 의사들의 비도덕적 행태로 그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며 사안의 심각성도 커졌다.
백내장 미지급 보험금 피해자들이 지난 6월 1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집회를 열고 백내장 미지급 보험금 지급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계 및 보험업계 안팎에서는 의료계의 행태 외에도 비급여(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의료 항목)를 둘러싼 제도적 맹점, 보험업계의 상황 등이 뒤엉키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계와 보험업계, 소비자(보험 가입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힌 만큼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정부의 ‘교통정리’ 역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보험업계 강타한 백내장 사태, 후폭풍 여전

27일 손해보험협회와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손해보험사와 생명보험사가 백내장 수술로 지급한 실손보험금은 4570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지급된 전체 실손보험금 중 백내장 수술의 비중도 지난해 9%에서 올 3월 17.4%로 2배 가까이 늘었다.

보험업계는 일부 안과에서 백내장 환자가 아님에도 단순 시력교정 목적의 다초점렌즈 수술을 권유하거나 브로커 조직과 연계한 수술 유도와 거짓청구 권유 등 과잉수술이 확산하면서 백내장 수술 관련 지급 보험금이 단기간에 급증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 백내장 수술 보험금 청구는 과잉진료 등이 의심되는 일부 특정 안과들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4개 주요 손보사 기준 올해 1분기 상위 10개 안과가 받은 보험금은 평균 49억원으로, 나머지 900여개 안과가 받은 평균 보험금(1억7000만원)의 29배에 달했다.

손해율이 급증함에 따라 보험업계는 세극등현미경검사 결과 백내장으로 확인되는 경우에만 인공수정체수술 보험금을 지급하는 보험금 심사 기준을 지난 4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지난해 말부터 일부 보험사들이 시행하던 기준이 업계 전체로 확대된 차원이다.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병·의원에서 검사결과지를 확보해 제출하는 등 심사 기준이 훨씬 깐깐해졌지만,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민원은 물론 법적 소송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백내장 수술을 일괄적으로 입원치료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의 판결도 나왔다. 1심에서는 백내장 수술의 입원치료를 인정했지만, 2심에서는 단순히 입·퇴원 확인서가 발급됐다는 사실만으로는 입원치료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상황이 해결되거나 진정된다기보다는 오히려 논란이 더욱 가중되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손보·생보협회가 보험사기 특별신고의 기간 및 대상을 확대하면서 백내장 외에 갑상선, 도수치로, 미용성형 등으로 범위가 확대함에 따라 의료계의 반발이 확산했다. 여기에 보험금을 받지 못하게 된 소비자들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보험사들을 상대로 공동소송을 제기하는 등 법정다툼까지 이어졌다. 공동소송을 제기한 실손보험소비자권리찾기시민연대 측은 “작년까지만 해도 백내장 단계에 관계 없이 수술만 하면 지급되던 보험금을 올해에는 등급을 따져 지급하고 있다”며 “약관에도 없는 자체적인 보험금 지급 심사를 일방적으로 강화한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번 백내장 사태와 관련해 정부까지 나서서 보험사기로 규정했지만, 실제 이를 적발해내거나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 과잉진료로 보험금 지급이 급증한 것은 사실이지만, 비급여 진료 자체가 불법이 아닌 데다 어느 정도를 과잉진료로 볼 것인지, 어느 정도에 대해 보험금 지급을 막을 것인지, 과잉진료를 한 병원이나 의사가 어느 정도인지 등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는 한계 때문이다. 백내장 수술을 잘 아는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애초에 보험 상품을 판매할 때부터 약관의 기준이 명확했다면 혼란이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보험사들이 보험 가입자는 늘리고 싶지만, 보험금은 덜 주고 싶어하는 고질적인 문제가 터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커지는 비급여 논란… 결국 헌법소원까지

10년 넘게 공회전하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사안에도 비급여와 관련한 논란이 관련돼 있다.
우선 현재 보험 가입자들은 의료기관을 통해 청구서류를 마련한 뒤 보험사에 방문, 팩스, 모바일 앱 등을 통해 실손보험을 청구하고 있다. 매번 전산화가 아닌 수기로 청구하는 방식이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번거롭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청구를 누락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관련 서류의 정보를 일일이 입력하고 확인한 뒤 근거로 남겨야 하는 전반적인 절차에 대해 “감내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한 비효율을 초래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병원에서도 서류를 매번 프린트해 발급하는 업무가 추가되는 만큼 대형병원 등을 중심으로 개별 보험사와 전산화에 나서는 경우가 나오기도 했다.

다양한 주체의 필요성이 커진 만큼 금융당국이 2015년 보험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취지로 ‘실손보험금 청구·지급절차 온라인화’를 과제로 삼는 등 정부 차원의 노력도 이어졌다. 국회에서도 20대와 21대를 거치면서 10개에 가까운 관련 법안이 논의됐다. 이러한 노력에도 아직 이렇다 할 만한 성과가 없는 데에는 의료계의 반발이 가장 큰 요인으로 떠오른다.

의료계는 전산화를 통해 보험사들이 의료 및 환자와 관련한 데이터를 축적해 보험 가입이나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등 이윤 추구 활동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대표적으로 제기해왔다. 민간보험의 확대로 공보험이 축소되며 결과적으로 국민의료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안에는 전산화를 통해 비급여 진료와 관련한 내용이 더 확실히 드러나는 것에 대한 우려도 포함돼 있다.

의료계는 그간 국내 의료행위에 대해 정부가 지급하는 수가가 80%대에 그친다며 적정수가 보상에 대한 목소리를 내왔다. 수가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탓에 비급여 진료를 통해 손실을 메운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병의원별로 같은 비급여 진료행위에 대해서도 비용이 천차만별인 상황에 백내장 사태와 같은 사례들까지 추가되며 정부도 마냥 방관할 수만은 없게 됐다. 보건복지부가 2013년 상급종합병원 43기관의 비급여 29항목 가격 정보를 공개하기 시작한 이후 2020년 병원급 이상 3915기관 비급여 564항목 등으로 확대되고, 비급여 진료 사항에 대한 보고를 의무화하는 방안 등을 추진한 배경이다.

비급여에 대한 정부의 공세가 강화하자 의료계는 각종 협회 등을 중심으로 헌법소원에 나섰다. 정부는 비급여 항목 보고에 개인정보 유출의 가능성은 없다고 일축했지만, 의료계는 좀처럼 관련 우려를 거두지 않고 있다. 공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사적 영역까지 무리하게 정부가 개입하고 통제한다는 것이 반발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이렇듯 비급여 문제는 단순히 의료계뿐 아니라 정부, 소비자, 보험업계 등의 이해관계가 다양하게 얽혀 있다. 게다가 보험업계에서도 생보와 손보의 입장, 회사 규모에 따른 보험사별 입장에 차이가 있다. 의료계의 경우 상급병원과 의원 등 규모뿐 아니라 외과 치과 등 분야에 따라서도 입장이 나뉜다.

복잡한 상황이 얽히는 만큼 갈수록 정부의 중간자 역할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윤석열정부의 경우 대선 공약에서부터 보험업계나 공보험 등에 대한 내용이 담기지 않았고, 출범한 지 수개월이 지나도록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석이기 때문이다.

의료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와 의료계가 물밑 접촉을 계속 진행 중이지만, 불신이 수십년간 쌓여온 만큼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코로나19가 재확산하는 상황도 정부에 결코 유리하게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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