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내장 사태 후폭풍에.. 환자들만 비급여 '진료비 폭탄' [심층기획]
실손보험금 백내장 비중 1년새 2배 ↑
보험업계 손해율 늘자 심사기준 상향
의료계 반발하고 소비자는 소송 제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사안도 입장차
보험사 서류 입력 등 비효율 호소하나
의료계, 데이터 축적한 이윤확대 우려
정부, 비급여 보고의무 등 칼 들었지만
의료계 "사적 영역까지 개입·통제" 반발
복지부 수장은 공석.. '해법 찾기' 난망
지난해 하루 평균 40억원 수준이던 백내장과 관련한 실손보험금 청구가 올해 들어 100억원이 넘어가면서 보험업계는 물론 정부까지 비상이 걸렸다. 사실 백내장 수술과 관련한 상황은 수년 전부터 꾸준히 문제로 지적돼왔다. 다만 최근 들어 일부 의사들의 비도덕적 행태로 그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며 사안의 심각성도 커졌다.
의료계와 보험업계, 소비자(보험 가입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힌 만큼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정부의 ‘교통정리’ 역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보험업계 강타한 백내장 사태, 후폭풍 여전
27일 손해보험협회와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손해보험사와 생명보험사가 백내장 수술로 지급한 실손보험금은 4570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지급된 전체 실손보험금 중 백내장 수술의 비중도 지난해 9%에서 올 3월 17.4%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손해율이 급증함에 따라 보험업계는 세극등현미경검사 결과 백내장으로 확인되는 경우에만 인공수정체수술 보험금을 지급하는 보험금 심사 기준을 지난 4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지난해 말부터 일부 보험사들이 시행하던 기준이 업계 전체로 확대된 차원이다.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병·의원에서 검사결과지를 확보해 제출하는 등 심사 기준이 훨씬 깐깐해졌지만,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민원은 물론 법적 소송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백내장 수술을 일괄적으로 입원치료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의 판결도 나왔다. 1심에서는 백내장 수술의 입원치료를 인정했지만, 2심에서는 단순히 입·퇴원 확인서가 발급됐다는 사실만으로는 입원치료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번 백내장 사태와 관련해 정부까지 나서서 보험사기로 규정했지만, 실제 이를 적발해내거나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 과잉진료로 보험금 지급이 급증한 것은 사실이지만, 비급여 진료 자체가 불법이 아닌 데다 어느 정도를 과잉진료로 볼 것인지, 어느 정도에 대해 보험금 지급을 막을 것인지, 과잉진료를 한 병원이나 의사가 어느 정도인지 등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는 한계 때문이다. 백내장 수술을 잘 아는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애초에 보험 상품을 판매할 때부터 약관의 기준이 명확했다면 혼란이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보험사들이 보험 가입자는 늘리고 싶지만, 보험금은 덜 주고 싶어하는 고질적인 문제가 터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커지는 비급여 논란… 결국 헌법소원까지
다양한 주체의 필요성이 커진 만큼 금융당국이 2015년 보험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취지로 ‘실손보험금 청구·지급절차 온라인화’를 과제로 삼는 등 정부 차원의 노력도 이어졌다. 국회에서도 20대와 21대를 거치면서 10개에 가까운 관련 법안이 논의됐다. 이러한 노력에도 아직 이렇다 할 만한 성과가 없는 데에는 의료계의 반발이 가장 큰 요인으로 떠오른다.
의료계는 전산화를 통해 보험사들이 의료 및 환자와 관련한 데이터를 축적해 보험 가입이나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등 이윤 추구 활동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대표적으로 제기해왔다. 민간보험의 확대로 공보험이 축소되며 결과적으로 국민의료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안에는 전산화를 통해 비급여 진료와 관련한 내용이 더 확실히 드러나는 것에 대한 우려도 포함돼 있다.
비급여에 대한 정부의 공세가 강화하자 의료계는 각종 협회 등을 중심으로 헌법소원에 나섰다. 정부는 비급여 항목 보고에 개인정보 유출의 가능성은 없다고 일축했지만, 의료계는 좀처럼 관련 우려를 거두지 않고 있다. 공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사적 영역까지 무리하게 정부가 개입하고 통제한다는 것이 반발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이렇듯 비급여 문제는 단순히 의료계뿐 아니라 정부, 소비자, 보험업계 등의 이해관계가 다양하게 얽혀 있다. 게다가 보험업계에서도 생보와 손보의 입장, 회사 규모에 따른 보험사별 입장에 차이가 있다. 의료계의 경우 상급병원과 의원 등 규모뿐 아니라 외과 치과 등 분야에 따라서도 입장이 나뉜다.
복잡한 상황이 얽히는 만큼 갈수록 정부의 중간자 역할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윤석열정부의 경우 대선 공약에서부터 보험업계나 공보험 등에 대한 내용이 담기지 않았고, 출범한 지 수개월이 지나도록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석이기 때문이다.
의료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와 의료계가 물밑 접촉을 계속 진행 중이지만, 불신이 수십년간 쌓여온 만큼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코로나19가 재확산하는 상황도 정부에 결코 유리하게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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