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사건파일]➂ 임차인 울리는 깡통전세.. 전세 보증 보험으로 피해 막을 수 있어

윤예원 기자 2022. 7. 28. 0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보증금 반환이 선순위가 아니라고?".. 집주인 채무 상태에 따라 달라
조직적 '깡통전세'에 눈 뜨고 코 베이는 임차인들
전문가 "전세 보증 보험 가입하면 깡통전세 확인 가능"

사기나 횡령, 배임 같은 경제범죄는 자본주의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보이스피싱이나 전세 사기 같은 범죄는 서민들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기도 한다. 정부와 검경이 경제범죄와의 전쟁에 나서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수법 탓에 피해 건수와 액수는 매년 늘고 있다. 조선비즈는 경제범죄를 심층적으로 파헤쳐 추가 피해를 막고 범죄 예방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편집자주]

A씨는 2016년 대구 남구에 있는 다가구주택을 계약하기 위해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부동산)를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B씨는 A씨에게 “임대차 계약 종료 후 정상적으로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다. 선순위 임차보증금이 2억2000만원이고, 다가구주택 시세가 높으니 향후 문제 발생 시 임대차보증금을 보전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A씨는 부동산에서 만난 B씨의 말을 의심 없이 믿었다.

하지만 B씨의 말은 ‘가짜’였다. 심지어 B씨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조차 없었다. 다른 공인중개사에게 자격증을 대여받아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B씨는 기존 대출금과 임대차보증금을 승계하는 조건으로 소액의 자기자금만 보태 다가구주택을 매입했다. 이렇게 사들인 주택의 월세를 전세로 전환하거나 기존 전세보증금을 올려 받는 식으로 자금을 모아 다른 다가구주택을 사모았다. B씨는 자신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명의와 자신이 설립한 주식회사 명의까지 더해 모두 8채의 다가구주택을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 B씨가 은행에서 대출받은 채무는 약 37억원이었고,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할 임대차보증금 채무는 41억원에 달했다. 여기에 매달 내야 하는 이자만 1500만원이었다. 이런 방식의 투자가 유지되려면 차임이 대출금 이자보다 많거나 다가구주택 가격이 올라야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이렇다할 투자 수익은 없었다.

B씨가 소유한 다가구주택은 8채에 달했지만 재산은 사실상 ‘0′에 가까웠다. 이런 상황에서 B씨는 공인중개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임차인들에게 사기를 치기로 마음 먹었다. 임차인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여력이 없음에도 선순위 임차보증금을 실제보다 낮게 이야기하면서 임대차계약을 맺도록 종용한 것이다. B씨는 2016년 2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이런 식으로 14차례에 걸쳐 임차인들에게 12억9800만원을 보증금 명목으로 받아냈다. 이 돈은 고스란히 임차인들의 사기 피해금이 됐다.

대구지방법원은 2020년 5월 B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고 공범인 그의 부인과 직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빌려준 지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다수의 피해자들을 상대로 서민들의 주거자금인 임대차보증금을 대상으로 사기 범행을 저질렀고, 피해자에 대한 피해회복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피해자들은 임대차보증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게 돼 주거의 안전을 위협받게 됐을 뿐만 아니라 재산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고 지적했다.

서울 시내 부동산 중개업소에 부동산 매물 광고가 게시돼 있다./연합뉴스

A씨처럼 ‘깡통전세’ 사기를 당하는 임차인이 적지 않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 국면에 들어서면서 전셋값이 매매가격보다 높은 주택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깡통전세는 임차인이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받지 못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주의가 요구된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세입자가 돌려받지 못한 전세보증금은 사상 최대치를 찍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2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는 1595건, 금액 기준으로는 3407억원이었다.

지난 20일 대통령 주재 제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전세사기에 대한 엄정 대처를 주문했다. 이후 국토교통부와 지자체, 경찰이 특별관리에 나섰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내년 1월 24일까지 6개월간 ‘전세 사기 전담수사본부’를 설치해 운영한다.

전문가들은 ‘깡통전세’를 피하기 위해선 임차인이 더 꼼꼼하게 따져보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한다. 깡통전세 사기는 향후 적발되더라도 피해 회복이 어렵기 때문이다.

김예림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집을 계약하기 전 임대인과 협의를 통해 세금 체납 여부 등을 열람하고, 전세 보증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보험 가입 과정에서 해당 주택이 깡통전세인지 여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임대인의 세금 체납 여부 등을 확인하면 전세 사기를 피할 수 있는 사례는 적지 않다. 예컨대 C씨는 2020년 2월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다가구주택을 계약하기 위해 부동산을 찾았다. 집주인 D씨는 공인중개사를 통해 “시세가 13억원이고, 보유한 네 가구에 대한 전세보증금 3억3200만원의 선순위보증금반환채무가 있다. 거기에 선순위근저당권자한테 6억원의 채무를 지고 있어 충분히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D씨의 설명대로라면 보증금을 떼일리가 없다고 생각한 C씨는 보증금 9170만원을 내고 계약을 했다.

하지만 D씨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해당 주택에 설정된 근저당권의 피담보채무가 6억원에 달했던 것이다. D씨가 부담하는 전세보증금 반환채무도 새로 계약한 C씨를 제외해도 9가구에 합계 8억6200만원이었다. 시세보다 채무가 큰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깡통전세’였다.

C씨처럼 집주인의 설명만 믿고 계약을 했다가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가장 흔한 ‘깡통전세’ 유형이다. 집주인의 말을 믿지 말고 채무 상태를 먼저 확인하고 보증금을 제때 받을 수 있는지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갈수록 전세 사기의 유형은 교묘해지고 있다. 최근 갭투자 방식으로 피해자 136명으로부터 임대차보증금 약 298억원 상당을 뜯어낸 ‘세 모녀 전세 사기 사건’ 역시 조직적인 깡통전세 수법에 해당한다. B씨처럼 집주인이 공인중개사를 사칭하는 경우나 부동산이 집주인과 한통속인 사례도 왕왕 있다.

김 변호사는 “전세 보증 보험에 들면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경우 보험 회사에 청구할 수 있다. 계약 전에 가입이 가능한 주택인지 확인해야 한다. 만약 전세가가 집값보다 지나치게 높은 경우 보험이 체결이 안 된다. 그렇다면 깡통전세의 위험이 있는 주택이라는 점까지 인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