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In] '건보 적신호'에 MRI 등 특수의료장비·고가약 관리 강화한다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현재 우리나라는 인구 대비 의료장비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훨씬 많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내놓은 5차 국민보건의료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의료기관은 CT(컴퓨터단층촬영기기) 2천80대, MRI(자기공명영상촬영기기) 1천744대, PET(양전자단층촬영) 186대를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인구 100만명당 장비 수는 CT 40.1대, MRI 33.6대, PET 3.6대로, OECD 평균(2019년 기준)인 25.8대, 17.0대, 2.4대와 비교해 보유량이 많았다.
2020년 한 해 동안 CT는 총 1천200만건, MRI는 총 620만건 촬영됐는데, 대부분이 건강보험 급여로, 상급종합·종합 병원에서 이뤄졌다.
MRI의 경우 2018년 10월부터 뇌·뇌혈관 등을 시작으로 건강보험 적용이 단계적으로 확대되면서 촬영 건수가 2018년 대비 2019년에는 127.9%, 2020년에는 134.4% 증가했다.
환자 부담이 줄면서 필요성이 떨어지는 환자들까지 정밀검사를 받는 사례가 증가한 것이다. 실제 OECD 평균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이에 따라 MRI 항목에 들어간 건보 진료비는 2018년 513억원에 그쳤지만, 2019년 5천248억원, 2020년 5천282억원, 2021년 5천939억원 등으로 늘었다.
이처럼 건보 적용 범위가 확대되면 될수록 건보 재정에는 '적신호'가 켜짐에 따라 보건의료당국이 건보 재정이 많이 투입되는 CT, MRI 등 고가 특수 의료장비와 고가의약품에 대해 더욱 엄격하게 관리하기로 했다.
초고가약 보험등재 맞춰 중점 급여관리 대상으로 관리
28일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건강보험 최고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고가 중증질환 치료제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관리 강화 방안을 내놨다.
건보 신속등재제도를 도입해 신약에 대한 환자 접근성을 높여 국민 건강증진을 도모하되, 고가 약제를 적정 관리해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취지에서다.
중점 관리 대상 고가 의약품은 1인당 연간 건보재정 소요 금액이 3억원 이상인 초고가 신약, 연간 건보 청구액이 300억원이 넘는 약제로, 이들 고가약에 대해서는 투여 비용 대비 효과성 등을 더 깐깐하게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처럼 고가약 관리에 힘을 쏟기로 한 것은 건보재정에서 약값으로 나가는 금액이 해마다 증가하는 가운데 급격한 고령화로 만성질환이 늘고 보험 적용이 되는 초고가 신약이 속속 등장하며 약품비 지출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약품비는 2015년 14조986억원에서 2016년 15조4천287억원, 2017년 16조2천98억원, 2018년 17조8천669억원, 2019년 19조3천388억원, 2020년 19조9천116억원, 2021년 21조2천97억원 등으로 꾸준히 올라 20조원을 넘어섰다.
이런 가운데 한번 주사 맞는데 약 20억원이 드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척수성근위축증(SMA) 유전자치료제 '졸겐스마'가 보험급여를 적용받는 등 초고가 신약들이 건보 적용을 받았거나 받으려고 줄줄이 대기 중이다.
'병상 사고팔기' 야기한 'CT, MRI 공용병상 활용제도' 폐지 가닥
복지부는 CT와 MRI 등 고가 특수의료기기의 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 개선에도 나선다.
이를 위해 이른바 'CT, MRI 등 특수 의료장비 공용병상 활용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병상 공동활용 제도는 2003년 1월 당시 정부가 고가의 특수 의료장비 남용이 극심하다고 판단해 불필요한 검사를 최소화하고자 도입했다.
당시 MRI의 경우 시·군 이상 지역 200병상 이상의 의료기관에만, CT는 시 지역은 200병상 이상, 군지역은 100병상 이상 의료기관만 설치할 수 있게 했다.
다만, 병상 기준에 못 미치는 병·의원은 다른 의료기관과 공동 활용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줬다. 즉, 두 의료기관의 병상을 합쳐서 이 기준을 충족하면 CT, MRI를 설치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병상 기준을 맞추려고 웃돈을 주고 병원 간 병상을 사고파는 등 부작용이 속출해 매년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되는 등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적잖았다.
의료계에 따르면 제도 초기만 해도 CT, MRI 장비가 불필요한 병원과 이들 장비가 필요하지만 200병상이 안 되는 병원 간 구두 합의로 공동사용 계약서를 쓰고 병상을 공유해 특수 의료장비 활용의 효율성을 꾀했다. 하지만 이후 병상을 빌려준 의료기관에 감사의 표시로 병상당 10만원씩 보상해주기 시작하면서 점차 제도의 취지가 퇴색하고 변질했다.
건보재정 환경 갈수록 나빠지는 상황에 '고육지책'
건보 재정 사정도 그다지 좋지 않다. 올해 6월 현재까지는 18조원 가량의 누적 적립금이 쌓여 있을 정도로 재정적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지만, 어디까지나 일시적 현상일 뿐 중장기적으로 재정 전망은 밝지 않다.
급속한 고령화로 노인 의료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오는 9월부터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부담을 줄여주는 내용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2단계 개편을 하게 되면 매년 2조원이 넘게 보험료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
지출은 증가하는데 수입은 감소하니 건보 곳간 사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 일로를 걸을 수밖에 없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1~2030년 중기재정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건보 보장정책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건보 당기 수지 적자 규모는 2024년 4조8천억원, 2025년 7조2천억원, 2028년 8조4천억원, 2030년 13조5천억원 등으로 커진다.
이에 따라 건보 적립금은 갈수록 감소해 2023년 8조원, 2024년 3조2천억원을 끝으로 바닥을 드러내고 해마다 수조원의 누적 수지 적자 상태에 빠질 것으로 국회예정처는 전망했다.
현재의 건보 체계를 개선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건보 가입자들이 보험료를 더 많이 내거나, 국고지원을 확대하지 않으면 지출 규모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될 것이라는 경고다.
보건의료당국이 고가 특수 의료장비와 고가약 사용에 따른 재정지출을 효율화하고자 팔을 걷어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건보재정을 당장 좋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나빠지는 속도만이라도 늦추겠다는 고육지책인 셈이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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