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기피증에 4급 판정, 맡은 업무가 민원응대"..더 병드는 사회복무요원
[편집자주]'군대보다 편하지 않으냐’ 사회복무요원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질병이나 심신장애로 정상적인 군복무가 힘든 이들이 사회복무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대신한다. 이들은 21개월 동안 '사복 입은 이등병'으로 살아가면서 공공 서비스의 최말단을 지탱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노동기구는 한국의 사회복무요원 제도에 대해 '강제노동'이라며 폐지를 권고한다. 자신들을 ‘현대판 공노비’라고 정의하며 노동조합 설립을 통해 부당한 현실 알리기에 나섰다. <뉴스1>은 사회복무요원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파헤쳐보고 존치의 필요성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서울=뉴스1) 송상현 기자 = 생활관 여기저기서 알 수 없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도 했다. 사회복무요원 A씨는 지난 6월 기초군사훈련 동안 매일 밤 생활관을 가득 메우는 고통 소리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현재 경남의 한 시청에서 근무하는 A씨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면 지옥같다고 했다.
훈련소에서 일부 요원들은 교육 시작도 전에 신체 여기저기에 남은 기저질환으로 인해 무너졌고,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환경에서 정신질환은 더 나빠져만 갔다. A씨는 "나도 병신이지만 남들이 걱정돼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A씨는 평소 앓던 무릎 상태와 우울증 등이 모두 악화해 1주를 채우지 못하고 퇴소해야 했다.
병역판정검사에서 사회복무요원처럼 4급 보충역 처분을 받게 되면 논산육군훈련소에 들어가 3주간 훈련받게 된다. 훈련기간이 5주인 현역에 비해 짧지만, 몸과 마음이 온전치 않은 사회복무요원들에겐 이마저도 고통스럽다.
◇신체·정신적 문제, 업무에 고려 안 돼…사실상 시키면 모든 일 해야
28일 병무청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국가기관과 자치단체, 공공단체, 복지시설 등에서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은 5만8661명이다. 이들은 현역 복무가 어렵다고 판정된 청년들로 대다수는 이처럼 신체·정신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
상당수는 일상생활에서도 적지 않은 지장을 겪지만 이런 핸디캡은 업무 현장에서 고려되지 않는다.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이 사회복무요원 11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8%가 4급 판정 사유와 배치되는 노동에 투입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사회복무요원 노조는 강제노동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15명이 모여 지난 4월 출범한 법외노조다.
사회복무요원 상당수는 저체중, 허리디스크, 척추측만증, 기흉, 당뇨 등의 사유로 4급을 받았다. 하지만 상하차 등 무거운 짐을 옮기거나 노인·장애인을 들어 옮기는 업무에 상시 노출돼 있다. 실태조사에서 응답자 중 55%는 사회복무로 인해 가지고 있던 질병이 악화했다고 대답했다. 몸이 아프다고 호소해봐도 '군인', '막내', '이등병'의 정신을 강조하며 "시키면 하라"는 식으로 가볍게 무시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A씨는 유전적 요인에다가 이를 모른 채 중학교 때까지 운동선수를 한 여파로 양쪽 무릎의 연골판 80%를 절제했다. 여기에 퇴행성 질환까지 겹치며 많이 걷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3개의 문서 창고를 돌아다니며 수만개의 서류들을 혼자 수레에 실어 옮긴 후 의자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새로 채우는 일을 하고 있다.
정신질환으로 4급 판정을 받고 복무하는 요원들의 경우엔 업무로 인한 고통이 더 심각한 경우가 많다. 우울증, 공황장애, 대인기피증 등으로 인해 4급 판정받은 요원들에게 민원 업무를 맡기는 게 대표적이다. 자신의 감정조차 컨트롤할 수 없는 이들에게 욕설과 인격 비하가 난무하는 민원 업무를 시키고 있다. 이른바 사회복무요원을 '총알받이'로 취급하고 있는 셈이다.
경기도의 한 구청에서 근무하는 B씨는 중증 우울증으로 4급 판정받았지만 '불법주차 단속'과 관련한 민원 응대 업무에 배치됐다. 민원인들은 대부분 단속에 반감을 품고 전화를 건다. "신분이 뭐냐"는 질문에 "사회복무요원"이라고 답하면 어김없이 무시하는 발언이 날아들었고 "장애인"이라며 비하도 당했다. 결국 우울증 증상이 악화하는 것은 물론 기존에 없던 공황장애와 사회공포증 증상까지 생겨 사람들과 마주칠 때면 견딜 수 없는 불안감과 공포가 찾아온다.
사회복무 관리 규정은 요원들의 활용이 제한되는 분야로 사고위험, 임무와 관련이 없는 노무, 풍속사범 단속 등을 뒀다. 이 외에 어떤 잡무를 시켜도 사실상 거부할 방법이 없다.
버틸 수 없다면 다른 기관으로 근무지를 옮기는 재지정을 신청할 수 있지만 정신질환으로 6개월 이상 치료를 받아야 하는 등 충족요건이 까다롭다. 신청은 복무기관장에게 해야 하는데 답변이 언제 올지도 알 수 없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현재 업무에 순응하며 병을 키운다.
◇인격비하·사적유용 속수무책…직장내 괴롭힘 사각지대
사회복무요원들은 업무 현장에서도 정당한 인격체로 대우받기 어렵다.
서울의 한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C씨는 사회복무요원을 관리하는 군인 출신의 복무 관리 담당자에게 규정에도 없는 두발 단속을 당하는 등 과도한 통제를 받고 있다. 특히 C씨는 사회복무요원 대표자로서 복무 관리 규정에 따라 함께 근무하는 요원들의 의견을 모아 애로사항을 접수했다. 그런데 담당자는 '선동 행위'라며 경고장을 주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경고장을 받으면 복무기간이 연장되기 때문에 C씨는 잘못이 뭔지도 모른 채 경위서를 쓰고 2주간의 근신 처분받아야 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회복무요원 22%는 복무 중 경고장 발급과 연장 복무를 빌미로 직원에게 협박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복무 중 직원으로부터 모욕적인 언사나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요원도 31%나 됐다. "살을 찌워라. 명령이다"라는 말을 듣는가하면, 여성 직원에게 현역과 비교해 신체 평가를 당하기도 한다.
공식적 업무가 아닌 복무기관장이나 직원의 사적 업무에 동원되는 경우도 많다. 요원 41%는 사적 유용에 동원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담배 등 직원 개인 심부름, 세차, 농사일 등은 물론이고 복지시설 후원자의 업무에까지 끌려가는 경우도 있다.
사회복무요원은 이처럼 직원들로부터 각종 인권침해, 괴롭힘을 당하고도 갑을 관계가 명확한 상황에서 입을 열기 어렵다. 고발한다고 해도 쉽게 해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병무청 '사회복무요원 복무 관리 규정'은 복무 기관의 장이 고충 처리반을 통해 사회복무원들의 고충 상담을 하도록 한다. 하지만 고충을 얘기해도 복무기관장들은 "적당 선에서 해결하자"며 타이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인력이 적은 복지시설의 경우엔 기관장이 직접 괴롭힘의 당사자가 되곤 한다. 호소할 곳이 없어지는 셈이다.
소속 지방병무청 복무지도관을 통해 처리하는 방법도 있지만 지도관이 협조적인 경우는 흔치 않다. 복무지도관 한 사람당 620명(2020년 기준)의 사회복무요원을 맡다 보니 시간 끌기만 지속된다. 더군다나 지도관이 업무를 방기해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만한 법적·제도적 장치도 없다.
군인도, 노동자도, 공무원도 아닌 사회복무요원들의 애매한 신분이 문제해결을 더 어렵게 한다. 노동자들은 직장 내에서 생긴 문제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의 위반 조항'을 적용받아 구제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복무요원들은 공무원에 준하는 지위를 갖고 있어 이 조항에 해당 사항이 없다. 심지어 국민권익위원회가 공무원 행동강령 상 갑질 개념에 직장 내 괴롭힘을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 입법예고까지 된 상태지만 대상에 사회복무요원은 빠져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사회복무요원들이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병무청 복무지도관에게 고충 처리를 요청하는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고, 복무 기관의 장들은 소관 사항 없으니 우리는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하는 게 대부분"이라며 "제도적 공백으로 사회복무요원들은 직장 내 괴롭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songs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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