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하며 다시 쓴, '인하대 성폭력·사망 사건' 기사

남형도 기자 2022. 7.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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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자협회·여성가족부가 2018년 마련한 '성폭력 범죄 보도 가이드라인' 따라 기사 써보니..2차 가해 유발하는 피해자에 피해에 대한 자세한 보도 금지, '피해자 책임'으로 인식되지 않게 유의하고 근본 해결에 초점 맞춰야
인하대 캠퍼스 안에서 동급생을 성폭행하다 추락해 숨지게 한 20대 남성 김모씨(20)가 17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사진=뉴스1

기사 제목 : 인하대 남학생, 같은 학교 학생 성폭행한 뒤 '살해'

인하대학교 1학년 남학생 가해자 김모씨(20)가 교내에서 같은 학교 학생 A씨를 성폭행한 뒤 숨지게 한 혐의로 15일 경찰에 체포됐다.

=>1-2.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한다. 피해자 신원이 노출될 수 있는 이름, 나이, 주소 등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보도 내용 중 근무지, 경력, 가해자와의 관계, 주거 지역 등 주변 정보들의 조합을 통해서도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될 수 있단 점에 주의해 보도에 신중을 기한다.

=>3-1. 피해자 등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피해자의 얼굴, 이름, 나이, 거주지, 학교, 직업, 용모 등을 직접 공개하지 않는 건 당연한 법적 의무이다.

피해자 A씨는 이날 새벽 3시 50분쯤 학교 내에서 머리에 출혈이 많은 상태로 발견됐다. 행인 신고를 받은 119 구조대가 그를 병원에 옮겼지만 같은 날 오전 7시쯤 숨졌다.

경찰은 A씨가 김씨에게 성폭행당한 뒤 건물 3층에서 추락해 사망한 것으로 봤다. 또 주변 CCTV를 확보해 A씨 동선을 파악한 결과, 김씨가 함께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

=> 2-4. 피해자의 피해상태를 자세하게 보도하거나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반영된 보도를 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입은 상해 등 피해 상태를 자세히 보도할 경우, 피해자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침해될 소지가 높다. 일반인들에게도 성희롱·성폭력은 극복할 수 없는 피해라는 잘못된 통념을 심어줄 수 있다. 또한 기사를 접하는 피해자에게 사건을 다시 상기하게 하고 공포심을 다시 경험하게 하는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

=> 3-6 가해자의 가해행위를 자세히 또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묘사하거나 사건의 심각성을 희석하는 보도를 하지 않는다.성희롱·성폭력 사건의 특성상, 가해자의 가해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자세히 묘사하게 되면 피해자를 그러한 자극적인 성적 행위의 대상자로 연상, 인식하도록 만들어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착화시키고 피해자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을 재경험하게 할 수 있다.

20대 남학생이 같은 학교 학생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뒤 건물 3층 아래로 떨어져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됐다. 18일 오전 여학생이 발견된 현장인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인하대학교 한 건물 앞 추모공간에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사진=뉴시스

또 경찰은 김씨가 A씨를 성폭행할 당시 피해자 A씨가 심신상실, 항거불능 상태였다고 봤다.

=> 1-1. 올바른 인식 갖기. 성희롱·성폭력으로 인한 피해가 피해자의 잘못된 처신으로 발생하였다거나 피해자가 범죄에 빌미를 제공하였다고 인식될 수 있는 보도를 지양한다.

=> 3-5.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피해자측(피해자 개인, 가정환경)에 책임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보도를 하지 않는다. 강도 피해를 당한 경우 피해자에게 왜 가해자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는지, 왜 그 시각, 그 자리에 가해자와 같이 있었는지를 궁금해 하거나 따지지 않는다. 반면 유독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있어서는 왜 그 시각에 거기 있었는지, 피할 수는 없었는지에 대한 가치 판단이 담긴 보도를 한다. 이는 그 상황을 초래한 '피해자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는 잘못된 통념을 심어줄 수 있다. 피해자가 방어에 취약한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이 범죄의 원인 제공' 내지 '피해자의 책임'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피해자의 상태를 보도함에 있어 은연중에라도 '가치판단'이 가미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하며, 피해자의 어떤 상태 때문에' 범죄가 일어났다는 식의 표현은 하지 않는다.

인하대 캠퍼스에서 같은 학교 학생을 성폭행하고 숨지게 한 가해 남학생 김모씨(20)가 검찰 송치를 위해 22일 오전 인천 미추홀경찰서를 나서고 있다./사진=뉴스1

이에 인천 미추홀경찰서는 김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한 뒤, 16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인천지방법원은 17일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뒤 "김씨가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갈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어 경찰은 김씨를 준강간치사 혐의, 성폭력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카메라 등 이용 촬영)로 22일 인천지검에 구속 송치했다. 준강간은 피해자의 심신상실, 항거불능을 이용해 간음 또는 추행할 때 성립하며, 준강간치사는 성폭행으로 인해 사망한 인과 관계가 성립될 때 적용된다.

경찰은 김씨를 '준강간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 게, 살인의 고의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씨가 A씨를 고의로 건물에서 떠밀었는지를 두고 검토했으나, 관련 혐의를 찾지 못해, 강간살인죄를 적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A씨가 건물에서 추락한 뒤 1시간 넘게 방치돼, '미필적 고의'나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전문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씨가 피해자가 죽을 수 있단 걸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봤을 때 적용할 수 있는 법리다.

=>3-7. 사실에 입각하여 정확하고 신중한 보도를 한다. 사건을 객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하고, 수사 및 재판결과를 보도할 때에는 법률용어의 의미를 명확히 파악하여 관련 내용을 서술한다.

이에 인천지검은 '인하대 교내 성폭행·사망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해 22일 전담팀을 구성했다. 김씨에 대해 살인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 면밀히 들여다볼 방침이다.

=>1-2.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한다. 설령 피해자가 공개적으로 피해사실을 밝혔다고 하더라도, 피해자 실명으로 '○○○ 사건'이라고 부르는 등 피해자를 전면에 내세워 보도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준강간치사와 함께 김씨에게 적용된 '성폭력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는, 경찰이 김씨가 현장에 버리고 간 휴대폰에서 발견한 파일을 근거로 '불법 촬영' 혐의를 추가한 것이다.

=>3-6. 가해자의 가해행위의 심각성을 희석하는 보도를 하지 않는다. 가해행위를 미화하거나 모호하게 표현('몹쓸짓', '나쁜 손', '몰카', '성추문' 등) 하여 가해자의 책임이 가볍게 인식되게 하거나 가해행위의 심각성을 희석하는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피해자 A씨가 숨진,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인하대학교 한 단과대학 건물 앞 추모공간의 광경.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도 만연했으나, 피해자를 추모하는 이들 역시 많았다./사진=뉴스1

교육부와 인하대는 순찰 인력 증원, CCTV 추가 설치, 야간 시간에 승인받은 학생만 건물 출입 등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란 비판이 나왔다.

대학 내 성폭력 사건은 최근 5년간 1206건(2019년, 교육부 통계)이나 발생했다. 그러니 인하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또 CCTV가 부족해서도 아니며, 음주 문제도 아니다.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엄벌은 당연한 거고, 이를 넘어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함께 짚어야 한다는 거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가 고질적 문제로 지적한 건, 대학공동체 내 만연한 '강간문화'다.

강간문화가 작동하는 방식은 이렇다. 이소희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장 "성폭력 피해자를 상담해보면, 피해자가 호감 속에서 동의하는 스킨십은 키스나 애무 정도였는데, (성폭력을 저지른 가해자는) '이제 와서 그때 한 성관계를 왜 성폭력이라 하느냐'고 한다"고 했다.

남녀 간 성에 대한 인식 차이, '성인지 감수성' 차이 때문이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성별 간 불균형에 대한 이해와 지식으로 일상에서의 성차별 요소를 감지해내는 민감성이다.

실제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연구 결과에선 20대 남성의 성인지 감수성이 특히 낮게 나왔다. '모텔에 들어간 건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의미인가'란 물음에 남성의 47.7%가 동의했으나, 여성은 17.7%에 불과했다. '키스와 애무를 한 건 성관계에 동의한 건가'란 항목엔 남성의 52.7%가 "그렇다"고 했으나, 여성은 19.4%만 동의했다. '술에 취해 의식 없는 이와 성관계를 하는 건 성범죄인가'란 질문에도 여성은 99.1%가 그렇다고 했지만, 남성은 86.8%에 그쳤다.

남녀 청소년들의 성희롱, 성폭력에 관한 인식 차이./사진=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는 비단 20대 남자 대학생만의 문제는 아녔다. 청소년 역시 성희롱, 성폭력에 관해 남녀 인식 차이가 드러났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또래 문화를 통해 성평등 의식과 태도 연구' 보고서를 살펴봤다.'여자들이 조심하면 성폭력은 줄일 수 있다'는 문장에 남자 청소년의 31%가 동의했으나, 여자 청소년은 16%만 "그렇다"고 했다. '성희롱 사건은 성적 농담에 예민하게 반응해서 확대되는 게 대부분'이란 물음에도 남자 청소년의 22.1%가 동의했다.

그러니 이 소장은 "인하대 성폭력 사건이, 오늘 갑자기 불쑥 나타난 게 아니다. 누적됐었던 학교 안 문화이고, 나아가 직장 내에서의 성 의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와 연결된다"고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에 대해, 그는 "우리 공동체에서 허용돼 왔었던 문화가 뭔지, 그게 성폭력·성차별 사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인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사진=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그런 뒤에는 성인지 감수성을 함께 쌓아나가기 위한,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소장은 "많은 직장, 학교서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지만 고작 1년에 1회 정도이고, 쓸데없는 걸 또 듣는다는 식의 반응도 있다" "초등 교육부터 차곡차곡 감수성을 쌓아갈 수 있는 실질적 시간 배분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도 26일 발표한 '성폭력이 여성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는 궤변'이란 인하대 사건 관련 논평에서 "국가는 여성폭력 및 여성살해 통계 시스템 구축을 시작으로 예외 없는 가해자 처벌, 빈틈없는 피해자 지원, 2차 피해 방지 체계 구축 및 인식개선 등을 통해 여성폭력 범죄를 국가가 묵인하지 않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목소릴 높였다.

=>3-10. 성희롱·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하여 피해를 유발하는 조직문화 및 사회구조적인 문제, 피해자 보호 및 구제대책, 예방대책 등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보도한다. 범죄자에 대한 분노와 복수 감정만을 조성해 처벌 일변도의 단기적 대책에 함몰되지 않도록 하며, 성희롱·성폭력 범죄를 유발하거나 피해를 확산하는 조직문화 및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주목하여 보도한다.

※기자의 말
안녕하세요, 기사를 작성한 남형도 기자입니다.

인하대 성폭력·사망 사건 보도를 보고 비판이 쏟아지는 걸 봤습니다. 숨진 피해자와 관련된 사실이 알려지는 데에 섬세함도, 알릴지 말지에 대한 감수성도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무분별하게 드러난 사실로 인해,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서슴지 않게 이뤄졌습니다. 많이 불편하고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언론이 어떻게 사실을 알리면 좋았을까, 그런 고민이 들었습니다. 기사를 쓸 때 걱정이 많았다면 어땠을까요. 이게 정말 '국민의 알 권리'와 관련이 있을까, 이렇게 쓰면 2차 가해에 악용될 수 있겠구나, 보도 윤리에 맞는 걸까, 그리 고심하며 어렵게 쓴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이 기사는,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함께 마련한(2018년 제정, 2022년 4월 개정) 성폭력 사건 보도 기준을 하나씩 짚어가며 다시 썼습니다. 부끄럽게도 저 역시 이런 보도 기준을 이리 자세히 본 게 처음이었습니다. 이미 12년 차인데, 다시 수습기자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대로 배웠다면 아마 덜 부끄러웠을 겁니다. 제가 잘났다고 쓴 게 아닙니다. 기자들 스스로 반성하고 함께 배우자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잘 들여다보니 각 사안마다 보도 기준이 다 있더라고요. 아동학대 보도 기준, 자살 보도 권고 기준, 재난 보도준칙, 감염병 보도준칙, 선거 여론 조사 보도준칙, 이렇게나 많습니다. 부지런히 살피고 배우려 합니다.

연차가 쌓일수록 더 많이 걱정하고, 더 어렵게 기사를 쓰겠습니다.

2022년 7월 27일 남형도 기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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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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