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50)하지 않고 됨
늙은이(老子) 47월은 가지 않고 아는 길이다. 문을 나서지 않고 세상을 알며, 창문을 내다 안보고도 ‘하늘길’(天道)을 보는 일이다. 세상으로 열린 숱한 길들을 다 간다고 내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걷는 길이 있고, 보는 길이 있으며, 아는 길이 있을 터. 두 발로 걷고 또 걷는 길은 세상의 길이다. 두 눈으로 좇는 길도 그렇다. 그러나 참을 좇는 길은 두 발로만 걷는 게 아니다. 마음의 발로도 걷는 길이다. 머리를 텅 텅 비우고 쉬엄쉬엄 걷는 마음의 길은 마음눈(心眼)을 환히 뜨고 가는 길이다. 밝고 밝은 ‘빛눈’(靈眼)이요, ‘참눈’(眞眼)을 크게 뜸이다.
방문은 호(戶)라 하고, 집 문은 대문(大門)이라 하고, 마을 문은 이문(里門)이라 한다. 호(戶)를 ‘지게문’이라고 하는 것은 지게 진 모습처럼 드나들기 때문이다. 지게문은 나 잘난 없는 ‘낮춤’(謙遜)이요, 더 잘난 없는 ‘모심’이다. 스스로 낮춤이요, 저절로 모심이다. 빈 집은 또한 빈 몸이다. 집은 비어서 살림을 꾸리고 돌린다. 빈 집 구들장 아궁이에 불이 있어야 사람이 살아진다. 밥이 살고 몸이 산다. 집의 불이 사람의 알짬(精)이다. 빈 집에 이것저것 채우고 채우면 망가진다. 쓸몬(財物)은 다 짐이다. 아파트라고 다른 게 아니다. 사람살이 살림은 비워야 숨 돌아간다. 몸도 다르지 않다. 맑고 밝은 알짬이 몸을 성하게 한다.
문(門)의 옛말은 ‘오래’다. 그래서 다석은 문을 ‘오래’로 풀었다. 아주 오래된 문의 옛말은 ‘돌’이다.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반도와 진도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海峽)을 ‘울돌목’이라고 한다. 울돌목의 ‘돌’이 곧 문이라는 뜻이다. 물살이 크게 휘돌아 가니 ‘울’이요, 그 울이 땅과 섬 사이의 좁은 바다 길목에 있으니 그 어귀를 돌(門)이라 했다. 목은 ‘자리’라는 뜻도 있다. 몸과 맘, 뫔은 늘 울돌목으로 있어야 한다. 휘돌아 솟구쳐 열린 ‘텅빔’(虛空)의 그 자리에 있으란 이야기다. 블랙홀과 화이트홀이 하나로 돌아가는 웜홀의 그 자리! 들고나는 회오리 빛 구멍!
다석은 중묘지문(衆妙之門)을 “뭇 야믊의 오래러라.”로 풀었다. 이때 ‘오래’가 바로 문이다. ‘뭇’은 사람 씨알이요, ‘야믊’은 익어 영그는 야릇이요, ‘오래’는 빛 쏟아지는 여닫이문이니, 중묘지문은 “씨알 튼 밝돌”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뭇 씨알이 영글어 터져 야릇한 빛으로 밝게 휘돌아가며 들고나는 문! 본 그대로의 참(眞)이 어진 속알(德)로 솟구쳐 환빛(光明)으로 돌아가는 울돌목! 그러니 무엇보다 먼저 ‘없’에 ‘있’으로 나서 이름도 없이 있는 난꼴(生身) 그대로의 몸과 마음을 올바로 지키는 게 아주 중요하다. 앎의 ‘낮힘’을 키워 뜻앎(意識)을 높이더라도 하루하루 이름 없는 몸과 마음을 돌이켜야 첫 ‘한울’ 자리가 깨끗하고 환한다.
깨야 끗이다!
깨 끗 이 우 주 우 물 로 열 려 다 훤 하 다!
거울이 아니라, 우주우물이다!
우주우물은 맑고 밝다!
온통 온새미로다!
지게문이 걸린 빈 방(房)의 참나(眞我)는 깨끗이 우주우물로 뚫려 환히 열리니 다 훤하다. 다 알아진다. 다 보인다, 다 되고 되는 일들이다. 참나는 이제 방에도 있고 여기저기거기 없는 곳이 없다.
사람은 오온(五蘊)이다. 이 다섯 꾸러미는 ‘빛받꿍짓알’(色受想行識)의 온통이다. 다섯 꾸러미가 한 줄로 이어져 온생명을 이룬 것이 사람이다. 다섯의 하나는 빛(몸)이요, 다섯의 넷은 마음이다. 빛으로 드러난 몸이 있고, 마음으로 ‘받꿍짓알’이 있는 것! 벌거벗은 몸은 땅구슬(地球)이 짓고 일으키는 변화무쌍의 바람 속에서 오롯하다. 온몸의 살로 느껴야 화들짝 깨인다.
빛(色:색), 벌거벗어 빛으로 드러난 몸은 짓고 일으키는 변화무쌍에 오롯함!
받(受:수), 몸의 그물코인 마음이 바깥으로부터 받아 느껴 일으키는 하고픔!
꿍(想:상), 받은 느낌이 꿍꿍(想像)으로 피어서 눈뜸으로 두루 번지는 앎!
짓(行:행), 하는 짓짓이 꼴짓으로 나아가면서 드러내 이루는 움직임!
알(識:식), 깨어서 몸마음세상이 한 그물로 이어져 있음을 알아챔!
몸과 마음이 뫔으로 갈마들어 깃들어야 산숨(生命)의 사람이 살아진다. 나고 사는 사람의 삶은 늘 다섯 꾸러미일 수밖에 없다. 몸맘이 뫔으로 짜이고 서로 이어져야 올바르기 때문이다. 다섯 꾸러미는 결코 따로따로 돌아가지 않는다. 또한 다섯 꾸러미는 쉬지 않고 그치지 않으며 멈추지도 않는다. 지금 여기를 사는 늘(常)의 변화무쌍이기에 자기 동일성도 갖지 않는다. 잠깐, 또 잠깐, 아주 잠깐, 그 사이 사이에 온갖 것들이 나고 되고 살고 죽고 다시 나지 않는가. 하지 않고도 스스로 저절로 다 되고 이룬다. 있는 그대로의 늘이다. 그치고 멈추면 넘어선다. 넘어선 자리에 때빔(時空)이 환하다. 길은 다섯 꾸러미가 그친 곳에 크게 열린다.
때때로 늘은 늘 없이 비어서 돌아간다. 그러니 사람은 사람으로 있고 없다. 바꾸어 말하면, 나는 나로 있고 없다. 없어도 숨이 돌아가니 다시 나서 있다. 이름 없이 본 그대로 서 있는 몸은 참이다. 다섯 꾸러미가 그치면 뫔에 숨 하나가 오롯할 뿐이다. 그 뫔이 또한 참이다.
지게문(戶)은 여닫이문이 아니다. 설문해자에 호(戶)는 외짝 문이며 ‘지킨다’의 뜻이다. 무엇을 지키는 것일까? 뫔이다. 빈 집 빈 몸에 숨 하나로 가득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몸이 어디에 있더라도 텅 비어 돌아가는 숨을 지키면 다 알아지고 보인다.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라고 했다. 울돌목의 그 자리에 한울모심으로 고루고루 바르고 그 바름을 늘 잊지 않으니 온갖 일들이 다 알아진다는 뜻. 길은 바로 그 자리에 있다. 그 자리에 집집 우주가 다 열려서 가지 않고도 알고, 보지 않고도 훤하며, 하지 않고도 된다. 텅 빈 그 자리를 늘 지켜야 나날이 새롭다. 새 몸 새 마음이 늘 열려 있다.
여섯이 한바탕으로 돌아가는 가온찍기로 섰다. 여섯은 들고나지 않는다. 여섯이 이어이어 섰으니 이르고 여닫고 아우르는 일은 그냥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돌고 돌아 돌아서 온 길들이 보이지 않았다. 길의 흔적조차 없었다. 여섯은 외짝 지게문이 걸린 방에 앉아서 있는 그대로 말없이 그저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눈망울에 서로의 눈부처가 환했다. 눈부처로 열린 집집 우주의 우물길에 삼라만상(森羅萬象)이 펼쳐졌다. 우주 숲 그물의 온갖 꼴들이 벌이는 짓짓의 바람과 볕의 그림들 속으로 참나의 텅 빈 마음이 흩어졌다.
어린님 : 풀어 말하면, 지게문을 나지 않고 세상을 알며, 창문을 내다 안보고 하늘길(天道)을 본다는 거야.
떠돌이 : ‘나지 않고’의 뜻은 그저 그대로 있다는 것이지. 처음부터 참나는 든 적이 없어서 나지도 않아. 참나는 들고나는 게 아니거든. 이미 아이 뱀(孕胎)에 한울 씨알이 있고 아이는 그 한울 씨알을 가지고 태어나는 거야. 있는 그 자리의 한울 씨알을 깨야 한울의 본 꼴인 참나가 솟지. 참나가 솟으니 세상이 바로 알아져. 한울이 참나요, 참나가 한울이니, 씨알 깬 그 자리에 바로 우주우물이 환히 열려 하늘길이 다 보이지 않겠어?
어린님 : 드는 외짝 지게문은 없고, 나는 외짝 지게문만 있어서 얼 나간이가 그리 많았구나.
떠돌이 : 됨됨이가 변변하지 못하고 덜된 사람을 얼간이라고 하지. 덜된 사람은 ‘덜을 업은’ 그러니까 덜업은, 더럽은, 더러븐, 더러운 사람이기도 해. 때나 찌꺼기 따위가 잔뜩 있어서 지저분하기 짝이 없어. ‘덜’을 깨(覺)고 끗(極)으로 솟아야 맑고 밝은 ‘깨끗’이 돼! 다석은 ‘덜’을 마귀(魔鬼)라고 불렀어. 그러니 덜 없는 사람을 ‘씻어난이’(聖人)라고 하는 거야.
어린님 : 그래서 그 세상 속으로 더 멀리 나갈수록 그 하늘길 앎이 더 적다고 한 것이구나.
떠돌이 : 처음부터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지 않고 외짝 지게문을 나서니 참나의 자리를 잃어버린 것이지. 그 자리에 ‘없있’으로 늘 숨 돌리며 ‘낮힘’ 키워 뜻앎(意識) ‘높임’으로 솟나야 하는데 나갔으니 그 앎이 더 적어질 수밖에.
어린님 : 허허 참, 이것 참. 바로 씻어난이가 나오네. 참나의 깨끗으로 처음부터 줄곧 늘 있는 그 ‘없’의 자리에 솟았으니 가지 않고 앎이요, 보지 않고 이름이요, 하지 않고 됨이지. 그런데 왜 ‘이름’이라고 한 걸까?
떠돌이 : 오래 오래 전에는 이름(名)과 밝힘(明)을 두루 하나로 썼다는 걸 알아야 해. 이름으로 ‘그 사람’을 밝혔으니까. 그런데 노자 늙은이는 이름(名)을 껍데기로 보았거든. 이름이 본 그대로의 꼴(身)을 가리지. 그러니까 여기서는 환히 밝힌 ‘밝’으로 풀어야 앞뒤가 맞아.
어린님 : 그러네. 앎(知)에서 밝(明)으로, 밝(明)에서 됨(成)으로. 그래야 뜻이 저절로 오르네. 오르면서 열리네. 자, 그럼 47월을 새로 새겨볼까!
■김종길은
다석철학 연구자다. 1995년 봄, 박영호 선생의 신문 연재 글에서 다석 류영모를 처음 만났는데, 그 날 그 자리에서 ‘몸맘얼’의 참 스승으로 모셨다. 다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민중신학과 우리 옛 사상, 근대 민족 종교사상, 인도철학, 서구철학을 좇았다.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뜨거운 한 솥 잡곡밥이다.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정양모, 김흡영, 박재순, 이정배, 심중식, 이기상, 김원호 님의 글과 말로 ‘정신줄’ 잡았고, 지금은 다석 스승이 쓰신 <다석일지>의 ‘늙은이’로 사상의 얼개를 그리는 중이다.
■닝겔은그림책 작가다. 본명은 김종민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큰 기와집의 오래된 소원>, <소 찾는 아이>, <섬집 아기>, <워낭소리>, <출동 119! 우리가 간다>, <사탕이 녹을 때까지> 등을 작업했다. 시의 문장처럼 사유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작가다.
김종길 다석철학연구자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사과해” “손가락질 말라” 고성·삿대질 난무한 대통령실 국정감사 [국회풍경]
- 수능 격려 도중 실신한 신경호 강원교육감…교육청·전교조 원인 놓고 공방
- [스경X이슈] ‘나는 솔로’ 23기 정숙, 하다하다 범죄전과자까지 출연…검증 하긴 하나?
- “이러다 다 죽어요” 외치는 이정재···예고편으로 엿본 ‘오겜’ 시즌2
- [단독] ‘김건희 일가 특혜 의혹’ 일었던 양평고속도로 용역 업체도 관급 공사 수주↑
- 유승민 “윤 대통령 부부, 국민 앞에 나와 잘못 참회하고 사과해야”
- “부끄럽고 참담” “또 녹취 튼다 한다”···‘대통령 육성’ 공개에 위기감 고조되는 여당
- 김용민 “임기 단축 개헌하면 내년 5월 끝···탄핵보다 더 빨라”
- [한국갤럽]윤 대통령, 역대 최저 19% 지지율…TK선 18% ‘지지층 붕괴’
- 민주당, 대통령 관저 ‘호화 스크린골프장’ 설치 의혹 제기… 경호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