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어도 남는 장사.. 언론·유튜버·정치인은 '혐오 공범들'[정중하고, 세련된 혐오사회]

유대근 2022. 7. 2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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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처럼 얽힌 혐오 공생관계

‘혐오팔이’는 단기적으로 남는 장사다. 이미지를 신경 써야 할 정치인이 사회 소수자나 여성을 공격하는 건 표 계산을 끝내고 하는 정치공학적 전략이다. 언론과 유튜버는 갈등을 조장해 관심과 돈을 얻는다. 거미줄처럼 엮인 혐오의 실타래 안에서 우리는 혐오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다. 혐오 스피커들은 어떻게 공생하는지 분석했다.

7글자 공약의 혐오 나비효과

尹 페북에 ‘여성가족부 폐지’ 한줄
기사 쏟아지고 ‘댓글·좋아요’ 중계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였던 지난 1월 7일 여성가족부를 없애겠다는 공약을 급작스레 공개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별 설명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만 올린 것이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여가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는 게 공식 입장이었다. 다음날 기자들이 “여가부 폐지 관련 한 줄 공약은 남녀 갈라치기를 하려는 의도로 꺼낸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뭐든지 국가와 사회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 달라”고만 말했다.

맥락 없는 7자 공약이 공개되자 ‘혐오의 생태계’는 바빠졌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언론이었다. 기사가 쏟아졌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데이터 분석 시스템인 빅카인즈로 공약 발표 직후 관련 기사량(‘여성가족부’가 포함된 기사)을 확인해 보니 한 달간(1월 7일~2월 6일) 1136건이나 됐다. 깊이 있는 분석 기사도 많았지만 혐오만 조장하는 기사도 여럿 보였다.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대남’(20대 남성)이 열광했다는 평가와 함께 여가부 폐지 공약을 두고 “멋지다”, “필살기다”라고 한 반응을 옮겨 적거나 한 줄 공약에 달린 실시간 댓글과 좋아요 수를 중계하는 식이었다.

근거 없는 유튜버·커뮤니티의 선동

“페미니즘 정신병”“노예해방 비견”
잦은 비방 접하며 어느새 동조화

혐오 장사에 익숙한 유튜버들도 움직였다. 구독자 110만명을 확보한 이슈 유튜버(정치·연예 등의 이슈를 주제로 속성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뻑가’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커뮤니티 글을 근거로 “(여론은) 여가부 폐지를 노예 해방과 비교한다”거나 “여혐(여성혐오)으로 몰리던 ‘여가부 폐지’ 주장이 대선 공약이 됐다”고 말했다. 비속어를 양념처럼 섞어 가며 말하던 그는 이런 제안을 했다. “우리는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이 갑자기 급반등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합니다.”

언론·유튜버가 취재원으로 삼던 남초 커뮤니티는 기사와 유튜브 영상을 재료 삼아 혐오 발언을 뿜어냈다. 지식 콘텐츠 스타트업 업체인 언더스코어가 서울신문의 의뢰로 분석한 결과 여가부 폐지 공약 발표 이후 한 달간 남초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는 여혐 글이 직전 1개월과 비교해 9.9% 포인트나 늘었다. ‘페미니즘이 정신병이라는 데 동의하시는 분’ 같은 제목의 글이다.

홍주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혐오 감정이 무딘 사람이라도 여과 장치가 부족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비방글을 계속 접하면 혐오에 동조하는 쪽으로 생각이 굳어지는 ‘에코체임버 효과’가 나타난다”고 밝혔다.

“표심만 얻는다면”… 혐오의 정치학 

‘소수’인 소수자 공격으로 반사이익
국민 열에 여섯 “정치인, 혐오 조장

‘여가부 폐지’ 한 줄 공약과 이후 상황은 혐오를 둘러싼 정치인과 언론·유튜버, 온라인 커뮤니티 간 공생 관계를 잘 보여 준다. 서로에게 기대 우리 사회에 숨어 있던 혐오를 자극한다. 각자 얻는 게 분명하기에 멈추기 어렵다.

우선 정치인은 혐오 발언을 통해 내 편을 뭉치게 한다. 특히 경쟁 후보를 지지할 것 같은 계층 또는 소수자를 향해 혐오 조장 발언을 하면 표몰이에 도움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한 줄 공약 발표 이후 한 주 만에 지지율(리얼미터 기준)이 6.5% 포인트나 올라 40%의 벽을 돌파했다.

표 결집이 시급한 선거철만 되면 혐오 선동이 극에 달한다. 유권자 수가 적은 성소수자는 안전한 혐오 표적이다. ‘세월호 유족 혐오 발언’으로 악명 높은 차명진 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2020년 총선 후보 토론회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차별하지 말자는 건 결국 인종차별도, 동성애 차별도 하지 말자는 얘기 아니냐”고 말했다. 박지원(전 국정원장) 전 민생당 의원도 같은 해 토론회에서 “신랑이 입장을 하는데 여자가 들어오면 기절할 것”이라고 했다.

공적 권위를 가진 정치인의 혐오 발언은 ‘소수자는 죄의식 없이 공격해도 된다’는 삐뚤어진 사고를 사회에 퍼뜨린다. 김왕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인들은 ‘정의롭지 않은 대상’을 낙인찍어 혐오 감정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지지자를 쉽게 얻을 수 있다”며 “감정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세력 기반이 될 수 있기에 혐오 표현을 계속 내뱉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은 이미 정치인을 혐오의 확성기로 여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9 혐오표현 국민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약 6명(58.8%)이 정치인이 혐오 표현을 조장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슈 터지면 달려드는 ‘사이버렉카’

팩트’보다 자극적 콘텐츠 퍼나르기
혐오 저격에 시달린 BJ 목숨 끊기도

‘사이버렉카’는 혐오를 확대 재생산하는 핵심 고리다. 차 사고가 나면 달려오는 견인차(렉카)처럼 이슈만 터지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일부 유튜버 등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이들은 기본적 사실관계도 파악하지 못한 채 퍼나르기에 열중한다. 공인뿐 아니라 커뮤니티 글에서 언급된 자영업자 등 일반인도 혐오의 표적이 된다.

영상 조회수와 슈퍼챗(시청자가 직접 주는 현금 후원)은 사이버렉카를 달리게 하는 연료다. 서울신문과 인터뷰한 4년차 이슈 유튜버 A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약 80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한 그는 조회수에 따라 유튜브가 매달 정산해 주는 돈만 월 2000만원쯤 받는다. 정치권 핫이슈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만드는데 주로 진보 성향 정치인을 저격한다. 많이 읽힌 기사나 온라인 베스트 게시글 등을 주제로 고르고, 화제가 된다면 연예인의 사생활도 거론한다. 넘치는 콘텐츠 사이에서 시청자의 관심을 끌려면 제목부터 자극적이어야 한다. ‘터졌다’, ‘사고 쳤다’, ‘충격 근황’, ‘사상 초유’ 등의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구독자가 늘다 보니 오세훈 서울시장 등 거물급 정치인도 출연한다. A씨도 사이버렉카가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은 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정치인이라면 그 정도 비판은 감내해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사실 A씨는 이슈 유튜버 시장에서 비교적 점잖은 편에 속한다. 유튜버 뻑가는 인터넷방송 스트리머인 BJ잼미(본명 조장미·27)를 남성혐오자로 모는 영상을 올렸다. 잼미는 지난 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를 두고 뻑가 등 사이버렉카에 책임이 있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플랫폼의 책임도 적지 않다. 유튜브 운영사인 구글은 괴롭힘, 사이버 폭력에 가담하거나 가짜뉴스를 다룬 영상이 수익을 얻지 못하게 하는 등의 규제책을 세웠다. 하지만 이미 영상이 퍼져 ‘장사’를 끝낸 뒤 조치하기에 효과가 작다. 수사기관에도 제작자 정보를 잘 제공하지 않는다. 유튜버가 특정인을 모욕·명예훼손하고도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이유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유튜브의 사회적 영향력은 언론과 비슷한 수준이 됐다”면서 “유튜브 자체 서비스 약관 등은 잘 마련돼 있지만 운영이 잘되고 있는지는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실 검증은 뒷전… 언론의 배신

조회수 외면 못하고 속보 쏟아내기
‘기사화’만으로도 논란 확대 재생산

이슈를 속보 처리하는 일부 언론의 행태도 사이버렉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커뮤니티나 유튜브 영상에 나온 기사를 사실관계 확인 없이 퍼날라 클릭 수를 끌어내는 식이다. 인권위의 ‘온라인 혐오표현 실태조사’(2021년) 결과 응답자의 79.2%가 ‘언론이 혐오를 부추긴다’고 답했다.

특히 언론은 일부 커뮤니티 등에서 해프닝으로 끝날 이슈조차 공론장으로 끌고 나온다. 홍 교수는 “유튜브와 커뮤니티에 있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도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언론이 보도하면 내용을 신뢰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농담인데 뭘”… 혐오 키우는 유머

‘밈’ 형태로 혐오 메시지 증폭 위험
전장연 출근시위 조롱 등 2차 가해

온라인 커뮤니티는 언론, 유튜버 등과 끝없이 상호작용하면서 작은 논란의 몸집을 키운다. 특히 온라인 특유의 유머 코드와 혐오가 결합하면 파괴력이 커진다.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밈’(원콘텐츠를 패러디한 2차 창작물) 형태로 혐오를 유머로 만든다. 이용자들은 혐오를 소비하면서도 그저 웃긴 이야기를 공유하는 정도로만 인식하게 된다.

예컨대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는 보수 커뮤니티에서 혐오 대상이 됐다. 디시인사이드 등에서는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이동권)를 주장하는 장애인에게 ‘대체 이동권씨가 누군데 맨날 저러느냐’거나 엎드려서 지하철 문을 막고 있는 단체 대표를 향해 ‘핸드폰을 떨어뜨려 찾는 모습’이라고 조롱했다. ‘그냥 문을 닫고 출발해도 똑같은 장애인’이라는 등 심각한 수위의 글도 있었다.

이훈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유머는 메시지 증폭과 설득 효과가 강해 혐오와 합쳐졌을 때 악영향이 매우 크다”며 “메시지의 설득력이나 매력도가 높아지면 수용자가 혐오를 접하더라도 ‘어차피 농담인데 뭘 그러냐’는 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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