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타깃 투자' 속도 낸다.."비상 경영이지만 미래 투자는 아끼지 않는다"

박관규 2022. 7. 28.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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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반도체 공장 확충은 중단·연구투자엔 19조 투자
"신산업 선점 기회, 리스크 관리하며 놓치지 않을 것"
추경호(왼쪽)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022년 세제개편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7일(한국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화상 면담을 하고 2025년까지 미국에 220억 달러(28조8,4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특히 투자액의 70% 가까이인 150억 달러(19조6,650억 원)를 반도체 연구개발(R&D) 협력과 메모리 반도체 첨단 패키징 제조 시설 구축 등 반도체 분야에 투입하기로 했다. 청주 SK하이닉스 공장 증설(예상 사업비 4조3,000억 원) 계획을 유보한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윤석열 정부 출범에 발맞춰 1,055조 원 투자 계획을 내놓았던 주요 기업들이 선택과 집중을 하는 '타깃 투자'로 빠르게 돌아서고 있다. 경영 환경이 빠르게 나빠지면서 비록 핵심 사업이라도 전망이 불투명하거나 부정적이면 투자를 미루거나 중단하면서도 미래 먹거리에 대해선 당장 이익을 못 내도 자금을 아낌없이 쏟아붓겠다고 나선 것.

재계에 따르면 SK그룹 내에선 지난 2주 동안 계열사별로 희비가 엇갈렸다. 반도체 청주공장 증설계획(SK하이닉스)은 보류했고, 폐플라스틱 재활용(SK케미칼)과 배터리(SK온) 생산 시설에는 새로 투자 결정이 이뤄졌다. 반도체는 2, 3년 동안 업황 부진을 예상하고 내린 결론이고, 반면 폐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은 전 세계적 환경 규제 때문에 유망하다고 보고 2030년까지 재활용 플라스틱 선도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목표까지 제시했다.

이날 이뤄진 미국 투자도 그동안 메모리 반도체에 쏠려있는 SK의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좀 더 멀리 보고 시스템 반도체 기술력을 확보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SK그룹 관계자는 "미국 투자는 SK하이닉스의 기술력 강화로 이어지고,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기업들의 투자는 주로 ①친환경 에너지 ②우주항공 ③도심항공모빌리티 ④바이오 등 신산업과 갈수록 모든 산업 분야에서 비중이 커지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가 250조 원을 들여 미국을 반도체 산업의 거점으로 만든다며 텍사스주 주정부에 세제혜택 신청서를 냈고,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1위 코발트 정련업체 화유코발트와 배터리 재활용(리사이클) 합작법인 설립에 나섰다. 국내 폐배터리 재활용 1위 업체 성일하이텍은 19일 기업공개(IPO) 청약에서 확보한 20조 원의 청약증거금을 내년 하반기까지 제3공장 증설에 투입하기로 했다.

국내 배터리 3사는 공격적으로 해외 거점기지 공략에 나섰다. 국내 1위 배터리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도 해외 투자에 열중이다.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와 손잡고 ①미국 오하이오주 1공장(35GWh+α) ②테네시주 2공장(35GWh+α) ③미시간주 3공장(50GWh) ④캐나다 온타리오주 합작공장(45GWh)을 짓고 있다. 또 미국 미시간주에 독자 운영 중인 공장도 5GWh에서 40GWh까지 생산 능력을 단계적으로 늘려갈 계획이다. 현재 70GWh 규모인 폴란드 공장 연간 생산 규모도 2025년까지 100GWh로 늘린다. 이런 투자를 통해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까지 연간 생산능력을 540GWh까지 늘리고, 5년 내 매출도 3배 이상으로 증대한다는 방침이다.

SK온은 이달 말까지 진행되는 헝가리법인 유상증자에 1조1,913억 원을 참여하기로 했다. 또 포드와 10조2,000억 원을 투자(50대 50)해 '블루오벌SK'라는 합작법인을 세우고 미국 테네시주에 1개, 켄터키주에 2개 등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3개 짓는다. 또 현재 미국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배터리셀 공장 2개도 내년까지 완공한다. 이들 공장이 정상 가동된다면 SK온은 미국에서만 총 150.5기아와트시(GWh) 규모의 배터리를 생산하게 된다.

삼성SDI는 2025년까지 1조7,000억 원을 투자해 말레이시아에 원통형 배터리 생산라인을 구축한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생산에 공을 들이는 만큼 시장 선점을 위해 생산 역량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K배터리가 세계 시장에서 보여주는 위상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며 일본 등에 뒤처졌던 기술력을 끌어올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배터리 소재 공급을 위한 활발한 대미 투자도 진행되고 있다. LG화학은 최근 GM과 배터리 원료인 양극재 공급을 위한 포괄적 합의서를 체결, 2025년까지 북미에서 양극재 제조공장 현지화 방안을 찾기로 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2030년까지 공급하기로 한 양극재만 해도 무려 95만 톤(t)으로, 이는 고성능 순수 전기차 약 500만 대의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규모다. 특히 안정성과 출력을 높인 NCMA(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양극재가 공급될 예정이다.


계열사 간 합병으로 투자 '실탄' 확보도

기업들의 투자 확대·위축 주요 이유. 자료:전경련 '500대 기업 2022년 하반기 국내 투자 계획 조사' 보고서

증시 부진과 자금 조달 금리 급등 등으로 실탄 마련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 기업들은 내부 계열사 합병이라는 카드로 위기 관리와 사업 확장 등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다.

포스코그룹도 핵심 사업인 철강 분야는 하반기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재무건전성을 높이는 조치를 취한 반면 미래 먹거리로 꼽은 액화천연가스(LNG) 부문엔 더 힘을 싣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포스코에너지가 합병 절차에 들어갔다. 합병이 성사되면 양사가 보유한 약 1조5,000억 원을 활용해 구매와 저장, 발전을 한 번에 다루는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한화그룹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디펜스, 한화 방산부문으로 나뉜 방산사업을 통합하는 절차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방산부문 통합은 확정되지 않았다"면서도 "새로운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려면 모든 역량을 한데 모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수원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실장은 "디지털 전환 속도가 빠른 데다 코로나19가 새로운 사업 분야가 떠오르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며 "기업들에게 지금 투자할 곳이 어딘지가 더 또렷해졌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특히 새로운 산업에서 주도권을 먼저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온 만큼 기업들도 과거처럼 선도 기업들을 따라가는 입장이 아니라 좀 더 과감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류종은 기자 rje312@hankookilbo.com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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