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이상 판결안된 사건 5배로.. "판사가 재판 당사자라도 이럴건가"
서울에서 개업하고 있는 A 변호사는 2년 전 고객의 의뢰로 민사소송을 냈지만 지금까지 법정에 한 번도 서보지 못했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근로자의 유족이 손해배상을 받으려고 낸 소송이다. A변호사는 “제발 기일을 잡아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가 “형사 사건 결과를 기다리겠다”며 재판을 미루고 있다고 한다. 형사 사건은 여전히 수사 중이며 언제 끝날지 짐작할 수도 없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A 변호사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숨지면서 유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빠졌는데 손해배상 재판을 시작도 못 하고 있다”면서 “판사 본인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과연 재판을 이렇게 뭉갤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법원이 소장을 받고도 첫 재판 기일을 자꾸 미루면서 피해와 불편을 호소하는 국민이 늘고 있다. 본지가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을 통해 입수한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민사 합의 사건에서 소장 제출 후 첫 재판 기일까지 소요 기간이 거의 매년 길어지고 있다. 이 기간은 2016년 120일에서 2017년 117일로 한때 줄었다가 이후 해마다 늘었고 2021년에는 150일로 크게 뛰었다. 5년 만에 30일(25%) 증가한 것이다. 한 변호사는 “첫 기일이 늦어지면 차례대로 1심 판결, 항소심 판결에 이어 대법원 판결까지 늘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로 1심과 항소심 선고는 갈수록 늦어지고 있다. 2017년 전국 법원 민사 합의부 1심 평균 처리 기간은 293일이었다. 올해 상반기에는 이 기간이 386일이 돼 있다. 5년 만에 93일(32%)이 늘었다. 민사 항소심 2심의 평균 처리 기간도 2017년 230일이던 것이 올해 상반기에는 323일이 됐다. 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법원 통계에는 판결이 빨리 나오는 간단한 사건 재판도 포함돼 있다”면서 “국민이 체감하는 재판 지연은 더 심각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변호사는 “재판 지연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며 “앞으로 재판이 얼마나 더 늦어질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전주혜 의원은 “재판 지연이 누적되면 결국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올 수밖에 없다”면서 “법원이 먼저 나서 사건 적체의 근본적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법원에는 ‘미제 사건’도 쌓이고 있다. 전국 법원에서 2년 넘게 민사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은 ‘장기 미제’ 사건은 2016년(4419건)과 2021년(1만2281건) 사이에 3배 가까이로 늘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경우, 민사 합의부가 5년 넘게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는 ‘초장기 미제’ 사건이 2021년에 356건으로 집계됐다. 2016년(73건)과 비교하면 5년 만에 5배 가까이로 늘었다. 2014년 서울중앙지법 민사 1심 합의부는 한 해 1만5000건을 처리했는데 작년에만 1만1000건 처리에 그쳤다. 한 변호사는 “법원이 사건을 제때 처리하지 않으니 미제 사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재판 지연으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고 호소하는 사례도 있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B씨는 거래처와 다툼 끝에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본인도 잘못이 있어 재판을 빨리 마치고 배상금을 지급할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판결까지 2년이 걸렸다. B씨는 “재판이 늘어지는 바람에 법정 이자를 훨씬 많이 내게 됐다”고 했다.
회사원 C씨는 직장 동료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오해를 받아 동료 직원의 아내로부터 위자료 청구 소송을 당했다. 사건 내용은 복잡하지 않았는데 재판부가 두 차례 바뀌면서 10개월 만에 승소 판결을 받았다. C씨는 “승소하긴 했지만 10개월간 ‘불륜녀’라는 의심을 받았다”며 “법원이 재판을 서둘렀다면 고통이 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사들은 재판 지연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털어놓고 있다. 서울 서초동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D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동기 모임에 현직 판사인 친구가 나왔는데 ‘재판 지연’에 대한 원망이 그에게 쏟아졌다”면서 “그 자리에서 ‘이유 없이 재판을 뭉개는 판사들이 너무 많아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란 말까지 나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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