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빙하 수년새 200m 얇아져… 스위스·伊 국경까지 변경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2. 7. 2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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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만년설이 사라진다

기후변화와 온난화로 지구촌 곳곳에서 빙하(氷河)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여름철 온도 상승과 함께 마른 겨울이 지속되면서 고지대 만년설(萬年雪·1년 내내 쌓여있는 눈)이 계속 줄어 빙하의 손실이 급격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이 문제가 국가 간 국경선 분쟁 같은 정치적 문제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지난 21일(현지 시각) 스위스 디아볼레자 스키장 슬로프가 흰색 천으로 덮여 있다. 햇볕을 반사시켜 지난겨울 내린 눈이 녹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알프스 빙하가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로이터통신은 26일(현지 시각) 스위스 빙하감시센터와 브뤼셀 자유대학교의 분석 자료를 인용해 “유럽 알프스의 빙하가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고 말했다. 스위스 알프스 지역 최대 빙하인 ‘모테라치 빙하’의 경우, 경계선이 하루 5㎝씩 축소되면서 60여 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크기가 줄고 있다고 한다. 만년설과 얼음층의 두께는 지난 수년 새 200m나 얇아졌고, 계곡을 따라 아래로 쭉 이어지는 빙하의 끝부분(빙하설·氷河舌)은 무려 3㎞ 짧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스위스 빙하감시센터의 안드레아스 린스바우어 박사는 “알프스의 빙하는 상대적으로 작고 얇아 더 취약하다”며 “얼음이 너무 빨리 녹아 빙하에 설치해 놓은 측정 장비들이 유실될 지경”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달부터 계속되고 있는 폭염으로 알프스의 만년설이 유지되는 빙점 고도(기온이 0℃로 떨어지는 높이)가 사상 최고인 해발 5184m까지 올라갔다. 빙하감시센터 측은 “예년 3000~3500m였던 것이 약 2000m 가까이 올라간 셈”이라며 “이는 몽블랑산 정상(4809m)보다 300m나 높다”고 말했다. 몽블랑을 상징하는 꼭대기의 만년설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의미다.

빙하가 이렇게 빠르게 녹는 것은 여름이 더욱 더워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해마다 ‘마른 겨울’이 반복되는 것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빙하 위에 쌓인 눈은 여름 햇볕을 반사해 빙하를 보호하고, 또 일부가 자연스럽게 녹았다 다시 얼어붙는 과정을 통해 빙하를 더 두껍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이 지역의 겨울 적설량이 눈에 띄게 줄면서 빙하가 여름 햇살에 노출되고, 빙하가 눈으로 다시 보충되지도 않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이런 속도라면 오는 2100년쯤이면 알프스 빙하의 80%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빙하와 만년설의 급격한 감소는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이 있는 인도 카슈미르 지역의 경우, 과거 산 전체를 덮었던 만년설이 많이 사라지면서 이제는 꼭대기 주변에만 약간의 만년설이 남은 산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 인근 ‘초타시그리’ 빙하는 알프스 빙하와 같은 운명을 맞고 있다. 쌓인 눈이 거의 사라지면서 빙하가 직접 햇빛에 노출돼 녹아내리고, 유실 속도가 빨라졌다. 그린란드는 최근 낮 온도가 15.6℃까지 올라가면서 섬 전체를 뒤덮고 있던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다. 이에 따라 맨땅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엄청난 물이 흘러내리면서 폭포와 대형 물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미국 국립 눈과 얼음 정보 센터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그린란드에서 녹아 없어진 빙하가 180억t에 달한다”고 밝혔다.

빙하의 손실은 국가 간 영토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지난 몇 년 동안 알프스 마터호른(몬테체르비노·해발 4478m) 정상 인근부터 이어지는 ‘테오둘’ 빙하가 녹으면서 스위스와 이탈리아 사이에 영토 문제가 발생했다. 두 나라 국경선은 이른바 유역 분수계(分水界)를 기준으로 그어져 있다. 빙하가 녹은 물이 흐르는 여러 물줄기를 기준으로 삼아 이탈리아 땅인지, 스위스 땅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빙하가 녹아 사라지면서 기준이 되는 물줄기가 이탈리아 쪽 해발 3840m 지점의 ‘체르비노 산장’까지 내려갔다. 빙하가 계속 녹으면 이 경계가 더 내려가 원래 이탈리아 소유였던 산장은 스위스에 속하게 된다.

AFP통신은 “산장 일대는 최근 세계 최대 규모의 스키 리조트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며 “산장 인근에 케이블카 정류장이 생기는 등 경제적 가치가 커지면서 두 나라 간 신경전이 치열하다”고 전했다. 양국은 2018년부터 새 국경 획정을 위한 협상에 착수, 지난해 11월 절충안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스위스 측 비준이 아직 이뤄지지 않아 합의 내용이 무엇인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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