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영웅들 새긴 '추모의 벽' 준공..尹 "한미혈맹 강고함 상징"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2022. 7. 27. 23: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설치된 ‘ 추모의 벽’ 제막식을 하루 앞둔 26일(현지 시간) 6·25전쟁 전사자의 유족들이 하얀 장미꽃을 전사자의 이름 위에 올려 두고 있다. 추모의 벽에는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군과 한국인 카투사 4만3808명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
비가 내리던 26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들어선 앤 임리 씨(67)의 손에 하얀 장미꽃이 들려 있었다. 그는 둘레 130m, 높이 1m의 거대한 화강암에 새겨진 이름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다 한 이름 앞에 멈춰 섰다. ‘로버트 킹웰 임리.’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군과 한국인 카투사(KATUSA) 4만3808명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의 벽(Wall of Remembrance)’에서 앤 씨는 삼촌의 이름과 마주했다. 그는 밝게 웃는 23세 청년이 담긴 낡은 삼촌 사진을 이름 옆에 뒀다. 그러곤 정성스럽게 연필로 탁본을 떴다.

다음 날인 27일 이 공원에서는 7000여 명의 6·25전쟁 참전용사와 유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의 벽 제막식이 열렸다.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던 6·25전쟁을 ‘승리한 전쟁’으로 기리기 위해 미국 참전용사들이 건립을 추진한 지 18년 만이다. 피를 나눈 3만6634명의 미군과 7174명의 카투사 전몰장병의 이름이 새겨진 역사적 상징물이 백악관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4km 떨어진 곳에 세워진 것이다.

제막식의 첫 순서로 6·25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미국인 유족들과 한국인 참전용사들이 호명되자 참석자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이날 행사에선 미국 각 군의 군가와 함께 아리랑과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한미 국기에 대한 경레하는 이종섭·박민식 한국전쟁 전정협정 체결 69주년인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열린 추모의 벽 준공식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레를 하고 있다.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벽 에는 6·25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과 카투사 전사자 4만여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2022.7.27/뉴스1
‘전쟁 영웅’ 윌리엄 웨버 대령(1925~2022) 등 참전용사들이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인 2013년 건립을 목표로 2004년부터 추진해 온 이 사업은 우여곡절 끝에 정전 69주년인 올해 결실을 맺었다. “세상을 뜨기 전 추모의 벽을 보고 싶다”던 웨버 대령이 타계한 지 석 달 만이다.

한미 정상은 이날 한목소리로 한미 동맹 강화를 다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대독한 축사에서 “추모의 벽은 한미 혈맹의 강고함을 나타낸다”며 “역사적 상징물이자 평화의 공간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대신해 축사에 나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는 “미국과 한국 청년들이 자유와 한미 동맹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라며 “추모의 벽은 양국이 앞으로도 나란히 함께 설 것이란 영원히 지속될 약속을 상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지키려 모든걸 바친 삼촌…영웅으로 기억해준 한국에 감사 ”



한미 양국 혈맹의 상징인 ‘추모의 벽’이 27일 완공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추모의 벽 건립이 처음 구상된 것은 20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몰에는 한국전쟁기념공원을 비롯해 2차대전기념공원, 베트남전참전기념비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전사자 이름이 음각으로 새겨진 다른 시설물과 달리 한국전쟁기념공원에만 전사자 이름이 빠져 있었던 것.

이에 미국의 6·25전쟁 참전용사들은 한국전쟁기념공원 주변에 미군과 한국군 카투사 전사자의 이름을 새긴 유리벽 형태의 추모의 벽 건립 운동에 나섰다.

6·25전쟁에서 적의 공격으로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잃은 윌리엄 웨버 예비역 대령(전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회장·올해 4월 별세)은 미 의회에 관련 법안 통과를 호소하는 등 백방으로 뛰었다.

이 같은 노력으로 2011년 미 하원에 건립 법안이 상정됐지만 관할 기관의 반대에 부딪혔다. 내셔널몰을 관리하는 미 공원관리국은 관리 비용 증가 등 예산 조달에 난색을 표했고, 조형물을 심사하는 국립미술위원회는 베트남전참전기념비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추모의 벽 건립에 제동을 걸었다.

법안은 의회에 장기간 계류되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6년 10월 가까스로 미 상원을 통과됐다. 사실상의 ‘건축허가’가 난 것이다. 하지만 270여억 원의 건립 비용을 확보하지 못하는 바람에 5년 넘게 첫 삽조차 뜰 수 없었다. 게다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전 정부 추진 사업이라는 이유로 사업이 보류되고, 이를 추진하던 보훈처 관계자들이 내부 감사를 받기도 했다.

민간에선 건립 사업 주체인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KWVMF)과 한미 양국의 재향군인회 등이 건립 비용 모금 운동에 나섰고, 현지 교포들과 삼성그룹 SK그룹 현대자동차그룹 풍산그룹 등 민간 기업들도 동참했다. 각계의 지원 노력과 함께 북-미, 남북 대화가 이어진 2019년 우리 정부도 전체 건축비의 90%(약 266억 원)를 부담하기로 결정하면서 건립 법안이 통과된 지 5년 만인 지난해 5월에 착공식을 가질 수 있었다.

추모의 벽은 미 국립공원관리청에서 기본 관리를 맡고,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이 조경과 조명, 보수 등 종합 관리를 담당한다. 노후 등으로 개·보수가 필요할 경우 국가보훈처에서 예산을 지원할 예정이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