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피해? 미필적 고의?..한국체대 교수 '전·월세 사기' 연루 파문
SH 협력업체 사칭 “싼값 입주”
전세금 107억 빼돌린 사건 주범
거래 희망자 모집한 ‘공범’으로
중학교 친구 사이인 교수 고소
차명거래 둘러싼 진실 규명돼야
무지에서 비롯된 순수한 피해일까. 도덕적 해이가 초래한 미필적 고의일까.
국립대인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조교가 지난 5월 경찰에 의해 1차로 밝혀진 ‘서울주택도시공사(SH) 상품 사칭 전·월세 사기 사건’에 연루됐음이 최근 확인됐다. 두 달 전 주범으로 구속된 A씨가 한국체대 교수 B씨를 거래 희망자들을 모집한 공범으로 고소했다.
고소장에는 차명으로 전세거래를 진행한 한국체대 교수, 조교 7명이 참고인으로 거명됐다. 피고소인 B씨는 최근 경찰 조사를 받았다.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
A씨 일당 5명은 2015년부터 지난 2월까지 SH 협력업체를 사칭하며 ‘기존주택전세임대’로 싼 전셋집을 구해주겠다며 피해자들을 속여 전세금 107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SH와 아무 관련 없는 강동구 아파트, 오피스텔 등을 월세로 계약한 뒤 피해자들에게 저소득층을 위한 저렴한 SH 상품이라고 속여 거래를 독려했다. A씨가 제시한 전셋값은 시세의 절반 수준이었다.
A씨는 차명거래를 하면서 챙긴 ‘반값’ 전셋값을 일당과 나눈 뒤 실제 물건에 대해서는 월세만 돌려막았다. 거래 희망자가 늘어나면서 거래 금액이 커졌고 월세를 돌려막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서 사기 행각이 발각됐다. 현재까지 밝혀진 피해자는 65명에 이른다.
■어떻게 연루됐나
A씨는 지난 5월 국가공무원법, 이자제한법 위반 등 혐의로 B씨를 고소했다. A씨는 본인이 단독범으로 확정될 경우 무거운 형량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 B씨를 공범으로 고소한 것으로 풀이된다. A씨와 B씨는 중학교 동기동창이다. A씨가 서울 강동경찰서에 제출한 고소장에 따르면, 한국체대 교수와 조교 등은 A씨가 제시한 부동산에 대해 차명 전세거래를 했다. 이들은 대부분 해당 건물에 현재 살고 있다. 모 교수는 입주하지 않고 투자만으로 적잖은 수익을 올렸다고 A씨는 주장했다.
A씨는 일면식도 없는 한국체대 교수들을 B씨가 모았고, 대가로 B씨 측에 수억원대 수익을 배당했다고 주장했다. 고소장에는 B씨가 단순히 거래 희망자를 모집한 것을 넘어 가족, 지인을 동원해 투자하면서 거액의 수익도 올렸다고 나와 있다. A씨는 B씨와 B씨 가족 등에게 거액을 송금한 내역, 송금과 관련해 B씨와 주고받은 욕설이 포함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증거로 제출했다.
■피해자인가? 적극 가담자인가?
경찰은 교수, 조교가 저소득층을 위한 상품인 줄 알고 거래했는지 철저하게 밝혀야 한다. 아직 명확한 증거는 없다. 다만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전세거래가 확정일자 없이 차명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순수한 피해자라고 보기에는 설득력이 약하다.
거액의 전세거래를 하기 전에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이유를 묻고 답을 듣는 건 상식이다. 교수들이 합리적인 답변을 듣지 않은 채 거액의 전세거래를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립대 교수는 공무원이다. 교육부와 한국체대의 철저한 조사, 수사기관의 성역 없는 수사가 필요하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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