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탈냉전 상징' 국제우주정거장 떠난다
미 "공식 통보 없어"..중국 가세로 '우주 신냉전' 양상
러시아가 자체 우주정거장을 건설하기 위해 2024년 국제우주정거장(ISS)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탈냉전의 상징이었던 미국 등 서방과의 우주 협력이 20여년 만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유리 보리소프 러시아 연방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 사장은 26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ISS 철수 계획을 보고했다. 그는 “우리는 파트너들에 대한 모든 의무를 이행하겠지만, 2024년 이후 ISS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한 결정은 이미 내려졌다”면서 “그때쯤이면 러시아 자체 우주정거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좋다”고 대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의 ISS 프로젝트 탈퇴는 예견된 일이다. 러시아는 ISS의 노후화를 이유로 2024년 정거장 운영 계약 종료일을 기점으로 ISS에서 철수하고 2030년까지 자체 정거장을 건설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드미트리 로고진 전 로스코스모스 사장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인 2020년에도 자체 정거장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국 등 서방과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러시아는 ISS 프로젝트 탈퇴 의사를 노골적으로 밝히기 시작했다. 로고진 전 사장은 지난 4월 국영 타스통신 인터뷰에서 서방의 제재가 ISS 운영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보복으로 ISS에서 철수하겠다고 선언했다.
ISS 프로젝트는 미국과 러시아를 주축으로 유럽, 일본 등 16개국이 참여한 국제 협력 개발사업이다. 미국과 소련 간 우주 경쟁이 냉전시대의 치열한 체제 경쟁에서 비롯됐던 만큼 이들의 우주 협력은 탈냉전기 국제 협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러시아 우주비행사들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개발한 우주왕복선을 타고 궤도로 향했고, 우주왕복선이 퇴역한 뒤 지난 10년간 NASA 우주비행사들은 러시아 소유스 로켓을 타고 ISS로 날아갔다.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름반도(크림반도) 강제병합을 비롯해 여러 차례 지정학적 위기에도 이들의 우주 협력은 계속됐다.
이날 러시아의 ISS 프로젝트 탈퇴 발표로 향후 ISS의 정상적 운영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러시아는 지구 중력을 이용해 정거장을 올바른 궤도로 유지하도록 하는 ISS 중요 추진 제어 시스템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은 ISS 전력 공급과 생명유지장치 운영을 전담하고 있다. 어느 한쪽이 없으면 당장 운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30년까지 ISS를 계속 운영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해온 미국은 이날 러시아의 철수 발표에 난색을 보였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러시아의 결정은 “ISS에서 이룩한 과학적 주요 성과와 우주 분야의 가치 있고 전문적인 협력 면에서 불행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NASA는 수십년간 1000억달러를 들여 무중력 상태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는데, 해당 연구의 핵심이었던 ISS 운영이 중단될 경우 이 연구가 조기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러시아 측이 “ISS로부터 철수할 의사를 미국에 공식적으로 알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우리는 러시아가 철수할 경우 2024년 이후 ISS에 미칠 잠재적인 영향을 완화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중국도 최근 독자 우주정거장 건설을 본격화하면서 ‘우주 신냉전’ 양상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안보상의 문제를 이유로 한 미국 등의 반대로 1992년 ISS 건설에 참여할 수 없게 되자 독자적인 우주정거장 건설을 추진해왔다. 지난 25일 톈궁 우주정거장의 기본적인 골격을 갖추는 단계에 돌입한 중국은 연내에 정거장 건설을 완료할 계획이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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