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 키운 인재, 구글·테슬라에 다 뺐긴다..'脫코리아' 왜
<1> 생존을 위한 인재 전쟁-육성도 영입도 못하는 韓
기업 투자·증설로 인력 모자란데
이공계 해외 취업 2년새 60% 급증
국내서 키운 외국 인력도 본국으로
美 등 높은보수 앞세워 인재 싹쓸이
韓 인재풀 확대·유치 전략 마련 시급
# 우리나라의 한 대기업은 국내에서 찾기 힘든 인공지능(AI) 및 반도체 박사를 채용하기 위해 해외 대학을 뒤지고 있다. 하지만 채용을 위해 면접을 하던 도중 더 높은 보수와 좋은 근로조건을 제시한 미국 기업에 뒤통수를 맞는 일이 허다하다. 이 기업 인사 담당자는 “해외 박사 채용을 진행하다 보면 글로벌 기업들 간에 인재 쟁탈전이 치열하다는 점을 실감한다”며 “가끔 국내에서 발굴한 핵심 인재도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우리 기업들이 핵심 인재 기근 현상에 시름하고 있다. 27일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반도체 제조사들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 등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 부족한 인력은 1년에 3000여 명 수준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들의 대규모 투자와 국내외 증설 작업이 빠르게 이뤄지며 인력 수요가 급증하지만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향후 10년간 누적 부족 인력이 3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차 분야도 마찬가지. 미래차 분야 기술 인력은 2028년까지 6년간 4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8년에는 △친환경차 7만 1935명 △자율주행차 1만 1603명 △인프라 5531명 등 8만 9069명에 달하는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친환경차 관련 인력이 5만 532명으로 집계된 점을 고려하면 무려 3만 8000명 이상의 미래차 인력이 더 필요한 셈이다. 배터리·우주·소프트웨어 분야도 인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다. 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향후 수년간 각종 핵심 산업 분야 인력 부족은 1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더 큰 문제는 국내에서 배출되는 얼마 안되는 핵심 인재마저 외국에 빼앗기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이공계 인력의 국내외 유출·입 수지와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17년 대졸 이상 이공계 직종 해외 취업자 수는 3만 9853명으로 2015년 2만 3879명보다 늘었다. 불과 2년 만에 해외 유출 인력이 60% 증가한 것이다. 반면 대졸 이상 이공계 외국인 취업자 수는 2018년 4596명으로 2014년도의 4944명보다 감소했다.
우리 대학에서 교육시킨 외국 인력도 정작 우리 기업에 취업하는 사례가 줄고 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올 초 발표한 국내 외국인 박사 학위 취득 이후 현황 조사를 보면 지난해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본국에 돌아간 학생들은 62%에 달했다. 4년 전 46%에 비해 16%포인트가량 뛰었다. 같은 기간 한국에서 일자리를 얻고 싶다는 외국인 박사들도 3.4%에서 1.9%로 주저앉았다. 지난해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외국인은 10년 전보다 4배가량 증가하고 있지만 국내 산업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보수적인 조직 문화와 낮은 보수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한국에서 일했던 구글의 한 직원은 “한국의 크고 작은 기업에서 일했는데 저녁 11시까지 야근하는 것이 일상”이라며 “반면 구글은 적게 일하고도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고 생산성도 높으며 학벌이나 지연 등에 따른 끼리끼리 문화가 없다”고 했다.
실제 미국 직장 커뮤니티 플랫폼 블라인드에서는 한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외국인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해외로 인재가 떠나고, 해외 인재가 국내로 오지 않는 것은 단순히 임금 문제가 아니라 국내 기업 문화가 아직도 상당히 경직적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구글·테슬라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는 한국 지방대 출신 인력들이 상당 부분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한결같이 “이곳은 지방대·외국인이라는 차별이 전혀 없고 오직 실력으로 평가받는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에 대한 압박, 일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 한국 기업들이 여전히 많다”며 “본국에서 일하면 삶에 만족하면서 자신의 역량까지 발휘할 수 있는데 굳이 한국에 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인력 부족 상황은 더 심각하다. 국내외 우수 인력의 풀 자체가 극단적으로 좁다 보니 국내 기업 간 인력 빼가기가 극심하고 중견·중소기업으로 갈수록 인력 공동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차량용 소프트웨어를 연구하는 중견기업의 한 연구소장은 “신입 연구원들이 6개월만 있으면 완성차 기업이나 정보기술(IT) 업계로 떠난다”고 호소했다. 글로벌 인재 쟁탈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국내 핵심 인공계 인력은 부족한데다 그나마 있는 인재도 해외로 유출되니 국내 기업 간 인력 빼가기만 심화되고 있는 셈이다.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반도체·미래차 등 핵심 분야 인력이 부족한데다 회사가 원하는 인력과 대학이 배출하는 인력이 서로 다른 미스매치도 심각하다”며 “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확보 경쟁 속에서 기술 인력은 가장 중요한 국가의 자산인 만큼 국내 인력 확대뿐 아니라 해외 우수 인력을 어떻게 들여올 것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김능현 기자 nhkimchn@sedaily.com박호현 기자 greenlight@sedaily.com유창욱 기자 woogi@sedaily.com연승 기자 yeonvic@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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