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못 만났지만 아버지 자랑스러워".. '완공' 한국전 추모의 벽 찾은 유가족 [르포]

박영준 2022. 7. 2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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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버지를 한번도 실제로 보지 못했어요. 제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는 전쟁에서 실종됐어요. 아버지는 아기가 생겼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것이 전부였어요. 아들인지 딸인지도 몰랐죠.”

6·25전쟁에 참전해 경기도 연천 천덕산 폭찹힐 고지 전투에서 전사한 도널드 던도어 미국 육군 상병의 딸 데니스 바처씨(69)가 미국 워싱턴 한국전참전기념공원 추모의 벽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을 안타까운 듯 내려다보며 말했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도널드 던도어 미국 육군 상병의 딸 데니스 바처씨가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 추모의 벽에 새겨진 아버지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던도어 상병은 1953년 3월 결혼식을 올리고 몇주 뒤 6·25전쟁에 참전했다. 육군 제7사단 17연대로 배치받아 7월6일 폭찹힐 전투에서 실종됐고, 이듬해 사망자로 처리됐다. 22세 때다. 데니스씨는 아버지 실종 후 11월에 태어났다. 데니스씨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은 힘든 일”이라며 “할머니와 가족들은 항상 아버지를 그리워했다”고 말했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도널드 던도어 미국 육군 상병의 딸 데니스 바처씨가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한국전 참전용사기념공원 추모의 벽에서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참전용사기념공원 내 추모의 벽 준공식을 하루 앞둔 26일(현지시간) 전사자 유가족 800여명이 추모의 벽을 방문해 가슴에 뭍은 그리운 이름을 확인했다. 유족들은 검은색 석판에 새겨진 하얀색 이름 위에 백장미를 올리고 쓰다듬거나, 연필을 문질러 탁본을 뜨면서 고인을 기억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데니스 바처씨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팔에 아버지의 얼굴을 문신으로 새겼다고 소개했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데니스씨는 팔뚝에 새긴 아버지 얼굴의 문신을 보여줬다. 아버지를 기리는 자신만의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자라면서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지난해 12월에 돌아가셨다. 살아계셨으면 이곳에 함께 왔을 것“이라며 “아버지의 이름이 이곳에 새겨진 것은 저에게 아주 큰 의미다.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한국 국적의 카투사 전사자 고 한상순씨의 아들 신희(72)씨도 이날 추모의 벽을 찾아 아버지의 이름을 확인했다. 아버지는 1952년 5월 제주 모슬포 제일훈련소에서 군사교육 후 던도어 성명과 마찬가지로 7사단 17연대에 배치돼 폭찹힐 고지 전투에서 1953년 7월10일 전사했다. 한상순씨도 22세 때다. 

6·25전쟁 카투사 전사자 고 한상순씨의 아들 한신희씨가 미국 워싱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 추모의 벽 공개 행사에서 생전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신희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제가 3세 때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면서 “아버지가 그리울 때는 사진을 보고 그리움을 달랬다”고 했다. 신희씨가 태어난 지 1년 반 만에 입대한 한 씨는 이듬해 1월 잠시 휴가를 나와 신희씨를 안고 사진을 찍었다. 신희씨는 이날 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한국에서 워싱턴까지 날아왔다. 

신희씨는 이날 추모의 벽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을 연필로 탁본했다. 그러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너무 기뻐하실 것”이라며 “혼을 풀어드린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6·25전쟁 카투사 전사자 고 한상순씨가 1953년 1월 휴가 중 아들 신희씨를 안고 찍은 사진. 국가보훈처 제공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 출신의 던도어 상병과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출신의 한상순씨는 똑같이 22세 1953년 7월 경기도 연천의 폭찹힐 전투에서 며칠을 사이에 두고 눈을 감았다. 한번 안아보지도 못한 딸과 이제 막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아들을 남긴 것도 같았다. 그리고 69년이 지나 워싱턴 추모의 벽에 함께 이름이 새겨졌다. 

추모의 벽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미군과 함께 외국군 전사자 이름이 새겨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지난해 5월 착공돼 15개월 만에 준공된 추모의 벽은 미군 전사자 3만6634명, 카투사 전사자 7174명 등 모두 4만3808명의 이름이 대리석 100장에 각인됐다. 1995년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이 설립됐지만 전사자 이름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 추모의 벽 건립 사업이 추진됐다. 2016년 10월 미국 상원에서 추모의 벽 건립 법안이 통과됐지만, 예산 확보 문제로 사업이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국가보훈처와 KWVMF, 재향군인회, 삼성과 현대 등 국내기업, 국민의 성금으로 예산을 마련했다. 

국가보훈처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과 카투사 전사자 43,808명의 이름을 새긴 '미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 벽' 준공식을 27일 미국 워싱턴 디시(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내 현장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추모의 벽 전경. 국가보훈처 제공
추모의 벽에는 미군과 카투사 전사자의 이름이 알파벳 순으로 함께 실렸다. 주한 미군사령관을 지낸 존 틸럴리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재단(KWVMF) 이사장은 올해 세계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미군 전사자의 이름과 한국 국적의 카투사 전사자의 이름이 알파벳 순으로 함께 새겨지는 의미에 대해 “완전히 통합되는 것이다. 그들(미군과 카투사)이 함께 생각했던 방식이기 때문이다. (한·미연합사령부의 모토인) ‘같이 갑시다(Go Together)’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틸럴리 이사장은 이날 유가족 추모행사에서 “오늘 처음으로 여러분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공개한다”면서 “여러분은 큰 희생을 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여러분과 함께 늙어 갈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유가족에게 감사를 표했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포화 속으로 뛰어든 영웅들의 헌신을 잊지 않고 있다”며 “그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4만3808명의 이름을 새겨 추모의 벽을 건립했다”고 말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 내 추모의 벽에서 열린 전쟁포로·실종·전사 유가족 추모행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
조태용 주미 한국대사는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리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족들의 희생 덕분에 한국은 경제와 민주주의 발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한국전 참전용사 정전협정 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포고문을 내고 한·미 관계가 한국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의 토대였다면서 한·미 동맹이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반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3만6000명이 넘는 미군과 그들과 함께 싸운 7000명 이상의 한국군 장병들이 함께 전사했다”며 “우리는 계속해서 한국 전쟁 참전용사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국가에 대한 봉사와 우리의 이상을 가능하게 한 모든 것을 기린다”고 밝혔다. 미국 대통령은 매년 한국전쟁 정전협정일에 맞춰 포고문을 냈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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