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인플레 '사상 최고'인데..금리 올리자니 경기 침체 걱정
기준금리 0.5%P 올렸는데도
7월 기대인플레 4.7%로 치솟아
한은 "금리 1%P 오르면
소비 0.6% 감소" 보고서 내
소비자심리지수도 하락세
학계선 스태그플레이션 경고
사상 첫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에도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금리 인상 효과로 소비는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국은행의 고민이 커졌다. 한은은 일단 “빅스텝(13일)이 기대인플레이션율 조사(11~18일) 도중 이뤄졌기 때문에 효과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상이 물가는 잡지 못한 채 경기 하강만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물가 정점 아니다”
7월 기대인플레이션(4.7%)이 관련 조사가 시작된 2008년 이후 최고를 기록한 건 소비자들은 물가가 아직 정점을 찍지 않았다고 본다는 뜻이다.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높아지면 임금 상승 요구도 커진다. 이렇게 되면 이창용 한은 총재가 언급한 ‘고(高)물가의 고착화’가 진행될 수 있다.
지난 1월만 해도 기대인플레이션율은 2.6%로 안정적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중국 봉쇄 등을 거치면서 지난 4월 3.1%로 올라선 이후 3개월 만에 4%대를 돌파했다. 황희진 한은 통계조사팀장은 “소비자물가지수가 6%까지 상승한 데서 주로 기인했다”며 “하반기에도 물가가 크게 낮아지지는 않을 것이란 판단이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지난 1년간 주관적으로 체감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의미하는 물가 인식(5.1%)도 한 달 새 1.1%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소비 심리는 얼어붙은 것으로 나타났다. 7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6.0으로, 한 달 전보다 10.4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9월(80.9) 이후 최저치다.
○소비 둔화 가시화될 듯
이런 가운데 경기 둔화 우려는 커지고 있다. 지난 26일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3%로 낮췄다. 우크라이나 사태, 인플레이션 심화, 개발도상국 부채 문제,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중국 성장세 둔화 등을 세계 경제의 주요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이미 올해 상반기 무역적자는 103억달러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56년 이후 상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내수 역시 불안하다. 한은이 지난해 8월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는데 그 효과가 다음달부터 가시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27일 한은 조사국 동향분석팀이 발표한 ‘금리 상승의 내수 부문별 영향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경우 민간 소비는 평균 0.04~0.15%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년간 기준금리가 1.75%포인트 상승한 걸 고려하면 민간 소비는 1%가량 위축된다. 설비투자는 0.07~0.15%, 건설투자는 0.07~0.13% 줄어들 것으로 추정됐다.
○스태그플레이션 논쟁까지
경제학계에서는 한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단계에 진입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경제학회가 최근 스태그플레이션을 주제로 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39명 중 21명(54%)은 ‘한국이 스태그플레이션 초기 진입 단계에 있다’고 답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상당히 진행되고 있는 상태’라고 답한 학자는 2명(5%)이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스태그플레이션 자체는 이미 진행 중이며, 이에 따른 위험성과 불안 요인이 반영돼 외환·금융 시장 불안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물가는 오르지만 본격적인 경기 후퇴는 시작되지 않은 초기 진입 단계”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미국과의 기준금리 역전까지 더해지면 올해 남은 세 번(8·10·11월)의 금통위에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데 난관이 있을 수 있다.
금통위 내에서도 이런 고심이 나타났다. 서영경 금통위원은 이날 한은금요강좌에서 “미국, 중국 등 주요 수출대상국의 경기둔화로 수출 여건이 악화된 가운데 민간 소비도 실질 구매력 감소, 감염병 재확산 등으로 하방 리스크가 커졌다”며 “물가의 상승압력이 지속되는 동시에 성장의 하방 압력이 확대되면서 성장과 물가 간 상충 관계가 심화한다면 정책 결정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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