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L 개발' 해외 게임사가 왜 우리 문화재 환수에 뛰어들었을까

송주용 2022. 7. 2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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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엇게임즈, 6번째 문화재 환수 발표
10년째 문화재 보호 활동..68억 원 기금 조성
"게임사 정체성 지키고 한국 이용자 친밀도 강화"
"식민 지배 겪은 한국의 역사적 상황 반영"
라이엇게임즈와 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영국 소장자에게 구매해 국내로 환수한 '보록'을 27일 공개했다. 보록은 조선시대 임금의 도장인 '어보'를 보관하는 상자다. 송주용 기자
문화재가 영국 경매에 오른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문화재가 팔리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움직였습니다.

라이엇게임즈 문화재 환수 프로젝트를 담당한 구기향 사회환원총괄의 회고다. 라이엇게임즈는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롤)' 개발사로, 2012년부터 해외로 반출된 한국 문화재의 국내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협력해 해외반출 문화재 탐색부터 매입 협상까지 전 과정을 지원한다. 27일에는 조선시대 임금의 도장(어보)을 보관하는 상자, '보록'의 국내 환수를 발표했다. 라이엇게임즈가 국내 환수에 성공한 6번째 문화재다.

주목할 점은 라이엇게임즈가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고, 2015년 중국 기업 텐센트가 인수한 '해외 게임사'라는 부분이다. 국내 게임사는 물론 주요 대기업들조차 문화재 환수에 관심을 두지 않는 상황을 고려하면 라이엇게임즈의 행보는 더욱 독특하다. 중국이 지분을 투자하고 미국인이 경영하는 해외 게임사가 한국 문화재 환수에 이토록 '진심'인 이유는 무엇일까.


긴박했던 '보록 환수' 막전막후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임금의 도장 보관함인 '보록'을 열어보고 있다. 보록은 조선 왕실의 정통성을 상징하고 궁중 공예품 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문화재다. 라이엇게임즈 제공

라이엇게임즈는 이날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의집에서 국내 환수 문화재 '보록'의 실물을 공개했다. 보록은 조선시대 임금의 도장을 보관하는 상자로, 이번에 환수된 문화재는 180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파악됐다. 서준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은 해당 보록에 대해 "조선 왕실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문화재로, 궁중 공예품의 양식과 재질 변화를 확인할 수 있어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라이엇게임즈가 공개한 '보록' 환수 과정은 스파이 영화를 보는 듯 긴박했다. 지난해 12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영국 갤러리 경매 시장에 조선 왕실의 보록이 올라간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라이엇게임즈 측과 이를 공유했다. 라이엇게임즈는 곧바로 미리 마련해 둔 '문화재 환수' 기금 투입을 결정했다. 라이엇게임즈 관계자는 "만약 경매 시장 목록에 올라가면 소장자뿐만 아니라 갤러리 측과도 협의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해진다"며 "그렇게 되면 문화재 환수에 시간이 한참 걸리거나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자금이 쓰이면서 문화재 되찾기에 속도가 붙었다. 문화재 전문가인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보록 소유자 설득에 나섰고, 라이엇게임즈는 필요한 경비를 지원했다.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정부의 예산 지원을 기다리기 보다 민간 기업의 자금 투입이 더 빠르다는 판단에서다. 올해 1월에는 전문가가 검토했고, 4월에는 법률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다. 7월 라이엇게임즈가 환수 비용을 내면서 최종적으로 문화재 소유권이 한국 정부로 넘어왔다. 구 총괄은 "라이엇게임즈의 발빠른 지원 사격이 큰 역할을 했다"며 "문화재를 사오거나 해외 소장자를 설득하는 데 폭넓게 돕고 있다"고 평가했다.


롤 제작사는 왜 '한국 문화재 환수'에 나섰나

라이엇게임즈가 2018년 국내 환수를 지원한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라이엇게임즈 제공

해외 게임사 라이엇게임즈가 한국 문화재 환수에 힘을 쏟은 이유는 무엇일까. 라이엇게임즈가 개발한 '롤'이 국내 시장에서 "2000년대 초반 스타크래프트 이후 최고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해외 민간 기업이 한국 문화재 환수에 수십 억원을 쏟아붓는 것은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수많은 사회공헌 활동 중 '왜 하필 문화재 환수인가'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라이엇게임즈 측은 '게임사'의 정체성과 '한국의 역사성'을 강조했다. ①'놀이 문화'를 창출하는 게임사로서 한국의 문화재를 지키고 ②한국 게임 서비스 이용자와의 친밀도를 높이려는 전략이다. 특히 ③일제강점기 등 식민 지배를 겪은 한국의 역사적 배경으로 해외로 빠져나간 문화재가 많다는 점④중국 기업이 라이엇게임즈를 인수한 뒤에도 경영 활동의 독립성을 보장받은 점도 크게 작용했다. 식민 지배를 겪은 한국의 역사성과 문화재를 향한 국민적 관심을 고려했을 때 게임회사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사회공헌이 '문화재 환수'라는 설명이다.

양세현 라이엇게임즈 한국사업 총괄은 기자와 만나 "해외반출 국내 송환 프로젝트는 한국에서만 진행하는 프로젝트"라며 "각 지역의 특징을 살리는 사회공헌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는데, 한국의 문화재 환수는 해외 시장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또 "게임사는 종합예술, 종합문화 기업인데 해외 진출국에 대한 문화재 환수 노력 자체가 개발자들에게 독특한 영감을 준다"면서 "문화재가 번성해야 게임도 번성할 수 있다는 인식"이라고 설명했다.

라이엇게임즈의 해외반출 문화재 환수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문화재 보호 사업이 닻을 올린 이후 ①석가삼존도(2014년) ②효명세자빈 책봉 죽책(2018년) ③척암선생 문집 책판(2019년) ④백자이동궁명사각호(2019년) ⑤중화궁인(2019년) 등 다섯 차례 지원했다.

'석가삼존도'는 조선시대 불교 문화를 그린 작품으로, 미국 버지니아주 '허미티지박물관'에서 환수했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은 조선 24대 왕인 헌종의 어머니 신정왕후가 효명세자의 세자빈으로 책봉됐음을 알리는 '대나무 문서'로, 프랑스 개인 소장인이 경매에 올린 것을 환수했다. '척암선생 문집 책판'은 조선말기 을미의병 의병장으로 활동한 척암 김도화 선생의 문집이며 독일 경매 시장에서 구입했다. '백자이동궁명사각호'와 '중화궁인'은 각각 도자기로 만들어진 도장이다. 19세기 조선 왕실에서 사용된 백자와 도자기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희귀자료다. 미국 뉴욕 경매 시장에서 사서 되돌려줬다.

라이엇게임즈의 문화유산 관련 누적 기금은 68억 원을 넘어섰고, 그 가운데 20억 원을 해외반출 문화재 환수를 위한 별도 예산으로 운영하고 있다. 구 총괄은 "여섯 번의 문화재 환수에 10억 원 이상을 썼다"고 밝혔다.


中게임 동북공정 계속…"라이엇게임즈 배워라"

중국 게임사 4399가 개발한 신작 모바일 게임 '문명정복'은 게임 광고 영상에 이순신 장군을 중국문명, 즉 중국인으로 표기해 논란이 됐다. 문명정복 광고 화면

이 같은 라이엇게임즈의 한국 문화재 환수 사업은 최근까지 이어지는 중국 게임사들의 '역사왜곡' 논란과 사뭇 대조적이다. 라이엇게임즈가 독립적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중국 기업에 인수된 현실을 고려하면 특히 그렇다.

이달 초 중국 게임사 '4399'의 한국법인 '4399코리아'는 신작 모바일 게임 '문명정복' 광고에 이순신 장군을 중국문명, 즉 '중국인'으로 소개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지난해에는 중국 게임 '스카이: 빛의 아이들'의 아이템으로 한국 전통 의상인 '갓'이 등장하자 일부 중국인들이 "갓은 중국 의상"이라고 반발했고, 게임사 대표가 직접 나서 "갓은 중국 의상"이라는 취지로 발언해 논란이 됐다. 2020년에는 중국 게임사 페이퍼게임즈가 출시한 스타일링 게임 '샤이닝니키' 한국 진출을 기념하며 '한복'을 아이템 의상으로 선보였는데, 중국인들이 "한복은 중국 의상"이라며 강하게 항의하자 한국 서비스 자체를 중단해버렸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모바일 게임은 특히 아동과 청소년에게 접근성이 좋아 잘못된 문화와 역사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며 "중국 게임에서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또다시 왜곡하면 비난과 분노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도 게임을 통한 역사왜곡을 막기 위한 장치가 일부 마련됐다. 게임법 32조 2항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국가의 정체성을 현저히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게임의 제작과 유통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조항 자체가 선언적이고, 게임물관리위원회의 게임등급 심사 과정에 '역사왜곡' 평가가 반영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국회에는 게임등급 심사에 '역사왜곡' 관련 내용을 포함하는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이 지난해 4월 발의됐지만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게임업계는 게임을 통한 역사왜곡을 방지하기 위한 법제도 정비와 함께 게임사들의 자발적 노력도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중국 게임사들이 해외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감에 따라 게임을 통한 역사왜곡 문제는 계속될 것"이라며 "1차적으로 게임위가 등급 심사에 '역사왜곡' 항목을 포함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한 축으로 라이엇게임즈처럼 게임사들이 역사왜곡을 방지하고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자체 노력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라이엇게임즈가 중국 기업에 인수되긴 했지만 10년 전부터 꾸준히 문화재 환수 사업을 펼치는 만큼 박수를 받을 만한 행보"라고 평가했다.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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