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해외송금' 우리·신한만 4조1천억원..2조원 늘어(종합)
신생업체 해외송금 점검대상 44개 업체 7조원..이상 송금액 더 늘어날 듯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오주현 기자 = 4조원을 넘는 거액의 자금이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우리·신한 2개 은행을 거쳐 해외로 송금된 사실이 금융감독원 검사에서 확인됐다.
시중은행들이 이처럼 이상 거래로 의심되는 해외송금 사례를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있어 가상화폐와 관련한 수상한 외환거래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은 27일 거액의 이상 해외송금 관련 은행 검사 중간 발표를 하면서 "대부분의 송금거래가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로부터 이체된 자금이 무역법인 계좌로 집금돼 해외로 송금되는 구조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이 우리·신한 등 2개 은행을 상대로 현재까지 파악한 이상 외화송금 거래 규모는 총 4조1천억원(33억7천만달러)으로, 당초 이들 은행이 금감원에 보고한 규모인 2조5천억원(20억2천만달러)보다 크게 늘었다.
거액 해외송금에 관련된 업체 수도 최초 은행 보고로 알려진 8개 업체에서 22개 업체(중복 제외)로 증가했다.
수상한 해외 송금거래 조사는 지난달 우리·신한은행이 자체 감사에서 비정상적인 외환 거래 사례를 포착해 금감원에 보고하면서 시작했다.
앞서 우리은행은 지난달 22일 서울의 한 지점에서 최근 1년간 9천억원에 달하는 비정상적인 외환거래가 이뤄진 사실을 내부 감사에서 포착하고 금감원에 보고했다.
신한은행도 2개 지점에서 총 1조6천억원 규모의 비정상 해외송금 사례를 포착하고 금감원에 관련 사실을 알렸다.
금감원은 보고 접수 후 외환감독국·일반은행검사국·자금세탁방지실을 동시 투입해 이들 은행을 상대로 곧바로 현장 검사에 나섰다.
금감원은 지난 25일부터 내달 5일까지 검사 휴지기를 거쳐 다음 달 중 검사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최종 검사결과도 내달께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검사를 통해 금감원은 해외 송금된 자금이 대부분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를 거쳐 나온 사실을 확인했다.
이상 해외송금이 국내 가상화폐 시세가 해외보다 비싸게 형성되는 김치 프리미엄(김프)을 노린 차익거래와 연관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가상자산 거래소 이후 자금 흐름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가상자산 거래소로부터 이체된 자금은 국내 무역법인의 대표이사를 비롯한 다수의 개인 또는 법인 계좌를 거쳐 해당 무역법인 계좌로 모인 뒤 수입대금 지급 등의 명목으로 해외법인에 송금됐다.
해당 법인들의 대표나 임원들은 특수관계인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금감원은 파악했다.
형식상 무역거래로 이뤄진 해외송금은 대부분 신용장 없이 송장(인보이스)만으로 이뤄진 사전송금 방식으로 이뤄졌다. 연루된 국내 법인들은 귀금속업, 여행업, 반도체업 등 다양한 업종이 포함됐다.
해외송금 대상국은 홍콩이 25억달러로 가장 많았고, 일본 4억달러, 미국 2억달러, 중국 1억6천만달러 순이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전송금은 오랜 관계로 신뢰가 두터운 업체 간 이뤄지는 거래 방식"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된 해외송금액 중에는 가상자산 거래소를 거치지 않은 일반적인 상거래 자금(3개 업체)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금감원은 파악했다.
은행별로는 우리은행이 2021년 5월 3일부터 올해 6월 9일까지 5개 지점에서 931회에 걸쳐 총 1조6천억원(13억1천만달러) 이상의 외화송금이, 신한은행에선 2021년 2월 23일부터 올해 7월 4일까지 11개 지점에서 총 2조5천억원(20억6천만달러) 이상의 외화송금이 각각 취급된 것으로 금감원은 파악했다.
금감원은 파악된 이상거래 내용을 검찰에 수사 참고자료로 통보하고 관세청에도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금감원은 이상 해외송금 거래가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차익거래인지 여부에 대해선 단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송금받은 해외 법인이 가상자산 거래소를 이용했는지 확인하지 못한 탓이다.
앞서 하나은행의 경우 지난 5월 말 2천억원대 규모의 외환 거래법 위반으로 금감원으로부터 과징금 5천만원을 부과받았고 정릉지점은 업무의 일부를 4개월간 정지 처분받은 바 있다. 당시 문제가 된 외환 거래는 가상자산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차익거래였다.
금감원 관계자는 "하나은행 제재 사례의 경우 해외 가상자산거래소 거래가 확인됐던 경우"라며 "이번 사건의 경우 해외 송금받은 업체가 가상자산거래소가 아닌 일반 업체"라고 설명했다. 해외 거래소 조사 권한이 없다 보니 차익거래 여부를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금감원은 유사한 이상 해외송금 거래가 추가로 드러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1일 모든 은행을 상대로 우리·신한은행 사례와 유사한 거래가 있는지를 자체 점검하고 그 결과를 이달 말까지 제출하도록 요청한 바 있다.
점검 대상 거래는 2021년 이후 신설업체 가운데 ▲ 외환송금액이 5천만달러 이상이고 자본금의 100배 이상인 거래 ▲ 외환송금액 5천만달러 이상이고 신한·전북·농협·케이뱅크 등 가상자산 연계계좌 운영은행으로부터 입금 거래가 빈번한 거래 ▲ 특정 영업점의 외환송금 실적 50% 이상을 차지하는 거래다.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점검대상 거래규모는 현재 금감원이 검사 중인 거래를 포함해 44개 업체에서 총 53억7천만달러(약 7조원) 수준이라고 금감원은 밝혔다.
이들 점검대상에는 우리·신한은행 외에도 KB국민·하나은행 등 다른 시중은행 거래 건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들 중에는 정상적인 상거래 송금액이 포함됐을 수 있어 현시점에서 해당 금액을 모두 이상 거래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금감원은 강조했다.
해외송금 거래 조사를 위해 국가정보원까지 나섰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해선 "국정원 관련한 사안은 알지 못하고 관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달 말까지 자율점검 결과를 통보받은 뒤 해당 거래의 이상 거래 여부를 추가로 들여다볼 예정이다.
또한 검사 결과 외환업무 취급 및 자금세탁방지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은행에 대해서는 관련 법규 및 절차에 따라 엄중히 조치한다는 방침이다.
이 부원장은 브리핑에서 "금감원 검사 및 은행 자체 점검 결과 등을 기초로 이상 외화송금 업체가 추가로 확인되는 경우 관련 내용을 검찰 및 관세청에 통보해 수사 등에 참고토록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아울러 은행 자체 점검 결과를 면밀히 분석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추가 검사 등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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