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내부총질', '충성충성충성' 국회 본회의장 문자 흑역사
(서울=연합뉴스) 이성한 논설주간 = 권성동 국민의힘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가 공개됐다. 권 대행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화면이 2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출입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노출된 것이다. 발신자는 '대통령 윤석열'이다. 윤 대통령은 "우리 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고 권 대행을 치하했다.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이준석 대표를 겨냥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고 표현했으니 여권은 27일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현직 대통령의 문자 메시지가 적나라하게 공개된 것 또한 초유의 일이다. 윤 대통령이 텔레그램 메신저와 체리 엄지척 이모티콘을 사용하고,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 권 대행이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라며 깍듯이 존칭을 쓴다는 점 등은 하루종일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과거에도 비슷한 일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이 때마다 당사자들은 해명하거나 사과하느라 진땀을 뺐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는 지난해 6월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권도전을 선언한 직후 '윤 전 총장이 검찰권력을 사유화했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당 대변인에게 보낸 것이 카메라에 잡혔다. 앞서 2020년 1월에는 추미애 당시 법무장관이 "지휘감독권한의 적절한 행사를 위해 징계 관련 법령 찾아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장관정책보좌관에게 보내는 장면이 포착됐다. 누가 보더라도 당시 윤 검찰총장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네이버 부사장 출신인 민주당 윤영찬 의원은 2020년 9월 국민의힘 원내대표 발언이 포털 다음 메인에 걸리자 "카카오 너무하는군요. 들어오라 하세요"라며 카카오 관계자를 소환하라는 취지의 문자를 보좌진에게 보냈다. 윤 의원은 문재인 정부 초기 청와대 소통수석 비서관을 지냈기에 포털을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지난 2016년에는 당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충성충성충성 장관님 사랑합니다충성"이라고 아부했고, 박 위원장이 "나에게 충성말고 대통령 잘 모셔"라고 답한 카카오톡 대화 화면이 공개됐다. 무심코 노출이 심한 여성 사진을 보거나 게임을 하다가 카메라를 피해가지 못한 의원들도 있다. 어떤 의원은 여성에게 애정어린 톡을 보내는 장면이 찍혀 구설에 올랐다. 인사 청탁을 하거나 선거를 도와준 지인들로부터 받은 취업 청탁 문자를 열었다가 사과하는 일도 여러번 있었다.
정치인들의 문자 메시지가 가장 많이 카메라에 포착되는 곳은 국회 본회의장이다. 좌석배치상 여야 지도부나 다선 의원들이 뒷자리에 앉는데, 이 곳은 바로 뒤 기자석과 방청석에서 내려다 보인다. 의원들이 대부분 노안이라 휴대전화 글씨를 크게 해놓기 때문에 망원렌즈를 들이대면 비교적 선명하게 찍힌다고 한다. 국회출입 사진기자들은 휴대전화 화면을 잡기 위해 의원들의 루틴을 면밀히 살펴본다. 여야가 첨예하게 맞선 상황에서 당 지도부가 휴대전화를 꺼내든채 안경을 쓰고 벗고 하면 사진기자들의 카메라 앵글이 분주하게 돌아간다고 한다. 노회한 정치인들은 카메라 기자들의 이러한 속성을 알고 일부러 휴대전화 화면을 노출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직 대통령의 문자 메시지 공개에 대해 과연 사적인 대화 내용까지 노출해야 하느냐는 비판도 있다. 최영범 홍보수석비서관은 27일 "사적인 대화 내용이 어떤 경위로든지 노출이 돼 국민이나 여러 언론에 일부 오해를 일으킨 점에 대해서는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다,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 수석은 "우연한 기회에 노출된 문자 메시지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거나 정치적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하는 것은 조금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온라인 질문에 "대통령도 사람입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정치인들은 공인인데다 장소 또한 국회 본회의장이라면 사적 대화를 운운할 상황은 아닌 듯 하다. 예지력이 있는지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20일 의원들의 텔레그램 대화방에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 사용은 사진기자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고 한다. 이러다가 여야 지도부가 '휴대전화 트라우마'에 빠져 본회의장내 휴대전화 사용 금지령을 내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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