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등' 한국 제조업, 핵심 원자재 중국 의존도 더 커졌다
최근 ‘탈중국론’까지 나오며 공급망 체제를 동맹국 위주로 재편하는 이른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지만 핵심 원자재에 대한 중국 의존도는 오히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땅속에 매장된 금속을 배터리로 만드는 모든 과정을 통제한다’는 비유가 나올 만큼 핵심 원자재에 대한 중국의 독점 현상이 두드러진 게 현실이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 구도로 ‘관세 폭탄’과 원자재 조달 차질이 빚어질 경우 국내 기업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이 27일 한국무역협회의 수출입 통계를 분석한 결과, 반도체·석유화학·자동차 등 주력 제조업 생산에 필수적인 원자재의 중국 수입액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2차전지 핵심소재인 수산화리튬 수입액은 올해 6월 누적 기준, 11억6236만달러로 전년 동월대비 404.5% 늘었다. 수산화리튬은 전기차 주행거리를 늘리는 방법으로 하이니켈 양극재가 주목을 받으면서 수요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수산화리튬은 하이니켈의 양극재의 핵심 원자재로 쓰인다.
같은 기간 중국에 수입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마그네슘잉곳 수입액은 4556만달러로 151.2% 증가했다. 마그네슘잉곳은 자동차 차체와 차량용 시트 프레임, 항공기 등 부품 경량화 작업에 필요한 알루미늄 합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원자재다. 전자제품의 소형화·경량화에 쓰이는 네오디뮴 영구자석(2억2176만달러)은 88.5%, 배터리 핵심 소재인 인조흑연 음극재(8164만달러)는 32.1%씩 늘었다.
이들 품목은 주력산업 경쟁력에 직결되는 품목이어서 원자재 조달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기업에 막대한 손해를 끼칠 수 있다. 특히, 최근 미국이 동맹국 중심으로 공급망 재편을 요구하면서 기업들의 부담은 더 커졌다. 미국에 공급하는 제품에 중국 원재료를 쓸 경우, 막대한 규모의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최근 미국에서 배터리 생산공장을 운영하는 SK이노베이션은 미국에 중국산 흑연에 대한 관세를 면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업계 관계자는 “미·중 갈등이 커지면서 중국산 원자재 의존도가 큰 기업은 높은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다변화를 추진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기업도 조달처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LG화학은 27일 미국 1위 자동차 업체인 GM에 올해 하반기부터 2030년까지 95만t 이상의 양극재를 공급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쓰이는 원재료는 대부분은 국내산인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홀딩스는 광양 율촌산업단지에 4만3000t 규모 수산화리튬 공장을, 아르헨티나에서는 염호 리튬 상용화 공장을 착공했다. LG에너지솔루션도 최근 독일 벌칸에너지와 수산화리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다만, 중국이 원자재 보유량이 많고 가공 비중도 높아 국내 기업의 의존도는 당분간 낮아지기 어렵다. 흑연의 경우 매장량 자체는 세계적으로 풍부하지만 아프리카 지역에서 채굴되더라도 환경 문제 등으로 처리와 정제는 대부분 중국에서 이뤄진다. 리튬도 중국은 세계 4위 규모의 매장량을 보유한 국가임에도 호주, 칠레 등 해외 리튬 광산 지분 투자를 통해 해외에서 더 많이 생산하고 있다. 소재 업체 한 관계자는 “핵심 원자재를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단기간 내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는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자칫 동맹국 위주로 공급망을 재편에 동참했다가 핵심 원자재 가격이 치솟을 경우 기업만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500대 기업 중 12대 수출 주력 업종 대기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올해 상반기에 대기업 영업이익률은 평균 8.7% 감소했다. 이들 기업은 하반기에도 원자재 가격 고공행진이 지속될 경우 영업이익률은 평균 9.5%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핵심 원자재에 대한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완화해야 하지만 정부가 중국과의 갈등을 형성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책연구기관 한 관계자는 “지나치게 중국산 의존도가 높은 제품에 대해서는 미국과 공동투자 방식 등으로 대응해야 한다”면서도 “중국을 배제하려는 조치들이 원자재 가격 급등 현상으로 이어지는 시장 왜곡현상을 부추겨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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