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약 앞에 두고..돈 때문에 2년만 살고 떠나야 하나요"
#부산에 거주하는 60대 양혜원씨는 3년 전부터 손과 발 관절에 고통을 느꼈다. 정형외과부터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그사이 증세는 더욱 악화했다. 그러다 1년 전, 이름부터 생소한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 심근병증(Transthyretin Amyloid Cardiomyopathy·이하 ATTR-CM)' 진단을 받았다.
최근 '킴리아', '졸겐스마' 등 초고가 신약의 건강보험 적용으로 희귀·난치 질환 보장성이 확대됐다. 하지만 여전히 건강보험 지원 사각지대에 남겨진 희귀질환 환자가 적지 않다. ATTR-CM 환우들이 대표적이다.
치료제가 있지만 연간 1억원에 달하는 약값에 투약이 쉽지 않다.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에 '중증·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가 포함된 만큼 ATTR-CM 환우들의 부담도 줄어들 수 있을지 주목된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ATTR-CM 치료제인 화이자의 '빈다맥스(성분명: 타파미디스)'의 급여 적정성을 심사 중이다. 빈다맥스는 현재 국내에서 이용할 수 있는 ATTR-CM의 유일한 치료제다. 빈다맥스는 지난해 건강보험 급여 적용에서 두 번이나 실패했다.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다.
ATTR-CM은 비정상적 단백질 발현으로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가 좌심실 벽에 쌓여 심장 기능 장애를 유발하는 희귀질환이다. 아밀로이드가 심장을 침범하면 심장벽이 두꺼워지고 잘 늘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어 심장 수축과 이완 기능에 문제가 생기고 결과적으로 전신에 혈액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다. 노화로 발생하는 '정상형'과 유전자 돌연변이로 발현하는 '유전성'으로 나뉜다.
환자 예후는 매우 나쁘다. 심부전 혹은 심장 돌연사 등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유전성 환자의 경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기대 수명이 2~3년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발생하는 환자의 약 80%가 유전성으로 알려진다.
빈다맥스는 2020년 8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ATTR-CM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도입 3년 차이지만 한 해 투약 비용이 1억원이 넘어 정작 환자들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 부담은 더 심하다.
환자들은 적극적인 치료를 위해 빈다맥스 급여 적용이 꼭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양씨는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숨이 차고 괴롭다"며 "이런 걸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을 겪지만 이보다 괴로운 건 본인의 치료비 부담을 가족에게도 짊어지게 만들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다른 고가 희귀질환 치료제들의 급여 소식을 보면서 하루라도 빨리 내가 먹는 약도 보험 적용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씨는 약값을 내기 위해 최근 형제와 친척에게도 손을 빌렸다고 덧붙였다.
김동현 아밀로이드증 환우회 회장은 "유전성 ATTR-CM은 가족 안에서 50% 확률로 유전된다. 부모 중에 환자가 있다면 자녀도 같은 병에 걸리는 것"이라며 "저희 누나의 경우 본인을 포함해 조카 2명이 이 병을 앓는다. 다섯 식구 중에 세 사람이 약을 먹어야 하는데 치료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차라리 치료제가 없었으면 기대하고 절망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며 "유일하게 쓸 수 있는 치료제를 눈앞에 두고 돈 때문에 환자들이 치료받지 못해 소중한 삶의 기회를 그냥 날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고가 중증질환 치료제에 대한 환자 접근성 제고 및 급여 관리 방안'을 발표했다. 신속한 보험 적용으로 환자의 치료제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중증·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도입은 정부가 26일 발표한 '12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다.
급여 적용의 신속성은 환자 생명에도 중요하다. 김 회장은 2020년 빈다맥스 국내 허가 이후 보험 급여를 기다리다가 치료받지 못해 사망하는 환자가 매해 1~2명씩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윤종찬 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ATTR-CM은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면 중증 심부전으로 진행하여 생명을 잃을 수 있다. 하지만 빈다맥스를 통해 적절한 시기에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환자 증상이 호전돼 더 오래 살 수 있다"며 "정부에서 최근 고가 의약품 접근성 제고 방안을 발표한 만큼 급여 논의가 잘 마무리돼 경제적인 부담을 이유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환자가 더는 없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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