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기준금리 역전 코앞..주식시장에 닥친 외국인 '썰물' 우려
한미 금리 2년 만에 역전 불가피
엇갈린 전망..환율 향방에 무게도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달에 이어 ‘자이언트스텝’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역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이언트스텝은 한 번에 금리를 0.75%포인트(p) 인상하는 것을 말한다. 주식시장에서는 금리 역전이 지수를 더 끌어내리는 요인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내비쳤다.
26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증시에서 주요지수는 일제히 하락했다. 오는 26~27일 열리는 FOMC를 하루 앞두고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228.50포인트(0.71%) 하락한 3만1761.54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45.79포인트(1.15%) 하락한 3921.05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220.09포인트(1.87%) 밀린 1만1562.58에 장을 마감했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실적 악화 우려로 유통주 낙폭이 컸다. 대형 유통업체 월마트는 2분기 및 연간 이익 추정치를 하향 조정하면서 주가가 7.6% 급락했고, 콜스와 타깃 주가도 각각 8.91%, 3.62% 하락했다. 백화점 브랜드 메이시스는 7.24%, 노드스트롬은 5.74% 하락했다. 온라인 쇼핑 플랫폼인 쇼피파이와 아마존은 각각 13.7%, 5.2% 빠졌다.
미국이 40여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연준이 또 한 번 자이언트스텝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5월 5% 수준에서 연말에는 7%에 올라섰고, 지난달에는 9%대로 치솟았다. 연준은 인플레이션 대응을 통화정책 최우선 목표로 꼽는다. 일부는 한 번에 금리를 1%p 인상하는 ‘울트라스텝’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이는 한미 기준금리 역전이 사실상 불가피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연준이 예상대로 자이언트스텝에 나설 경우 미국 금리는 기존1.5~1.75%에서 2.25~2.5%로 오르게 된다. 지금의 한국 기준금리(2.25%)보다 0.25%p 높아지는 셈이다. 한미 금리가 역전되는 것은 2020년 2월 이후 약 2년 반 만에 처음으로, 1999년 이후 한미 금리 역전은 세 차례(1999~2000년, 2005~2007년, 2018~2020년) 있었다.
전문가들 의견은 엇갈린다.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지수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반대로 과거 금리 역전 시기를 예로 들며 대규모 자금 유출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자금 유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금리 역전보다는 원·달러 환율 방향성을 주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주식, 채권 등 자본 유출에 대한 우려는 매번 금리가 역전될 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슈다. 금리가 높은 국가에 투자할 때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만큼 고금리 국가로 자금이 쏠리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입장에서 굳이 수익률이 낮은 한국에서 자금을 굴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강현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7월 FOMC 이후 한미 금리 역전 가능성이 있다”며 “투자자금은 수익률이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이전하기 때문에 국내 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고민이 커지는 듯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에 한미 금리 역전이 발생했을 때 한국 주식시장 부침이 나타난 경우가 더러 있었다”고 덧붙였다.
지난 한미 금리 역전 당시 상황을 보면 1999~2000년에는 국내로 주식자금이 유입(209억3000만달러)됐지만, 2005~2007년(263억4000만달러)과 2018~2020년(83억6000만달러)에는 주식자금이 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수 흐름은 시기마다 상이했다. 1999년에는 낙폭을 키웠지만, 2005년에는 상승했다. 2018년에는 2016~2017년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며 하락했다.
그러나 주식자금뿐 아니라 채권, 차입을 모두 합친 외국인 자금은 과거 금리 역전 시기에 오히려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1999~2000년에는 채권과 차입자금은 유출됐지만, 주식자금이 유입되면서 소폭 순유입을 기록했고, 2005~2007년에는 주식자금은 유출된 반면 채권, 차입자금이 유입되며 순유입으로 마무리됐다. 2018년에는 주식자금은 유출됐지만 채권과 차입자금이 유입되며 순유입을 기록했다.
정부는 금리 역전에 따른 대규모 자금 유출 가능성은 적다고 강조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 “단순히 금리 역전으로 자금 유출이 있을 것으로 예단하기 어렵다”며 “과거에도 장기간 금리 역전 현상이 있었지만, 자금 이탈로 시장이 불안해지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대외 신인도, 경제 기초여건, 최근 경기 흐름을 고려할 때 자금 유출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금리 역전보다는 환율 상승(원화 약세)여부나 경기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자금 유출입을 좌우할 것으로 내다봤다. 원화 약세를 야기하는 대내 요인인 수출 경기 둔화, 무역수지 악화 등은 이미 환율에 선반영됐지만, 유럽 등 미국 외 지역의 경기 침체 우려로 강달러가 심화할 가능성이 원화 약세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 주목받는 상황이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한미 금리 역전만으로는 자금 유출이 본격화하기 어렵다”며 “환율 방향성이 중요한데 원화 대내적 약세 요인은 정점을 통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그럼에도 유로화 약세로 인한 강달러 압력 부상 가능성이 상존하는 만큼, 대규모 자금 유출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가을의 유럽 및 러시아의 협상 등이 자금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연구원도 “현재는 과거 사례에서 유사한 경우를 찾기 어렵다”며 “한국과 미국 주식시장의 하락이 이미 진행된 상태에서 금리 역전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지금 한국 시장은 여러 우려를 선반영해 이미 폭락한 상태라, 금리 역전을 빌미로 추가 하락하는 정도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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