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3808명 영웅을 기억에 새겼다, 美 한국전 '추모의 벽' 준공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2022. 7. 2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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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DC의 한국전쟁(6·25전쟁) 참전 기념공원 내에 완공된 '추모의 벽' 위에 26일(현지 시각) 희생자 가족들이 놓고 간 노란 장미꽃들이 놓여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윌리 브룩스, 르로이 채트먼, 프레드 데일리, 존 리틀, 김상준, 정한기, 최수진…

검은 화강암 벽에 빼곡히 새겨진 6·25전쟁 전사자·실종자 4만3808명의 이름들 위로 ‘추모와 사랑'을 뜻하는 노랑 장미꽃이 드문드문 놓였다. 이름이 적힌 돌을 하염 없이 쓰다듬으며 눈시울을 붉히는 가족들도 보였다. ‘미군 전사자 3만6334명, 한국군 지원부대(카투사) 전사자 7174명'이란 통계로만 남아있던 한국전쟁(6·25전쟁) 전사자들이 추상적 숫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이 부르던 이름으로 기억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미국 워싱턴DC의 한국전쟁 기념공원 내 새로 건립된 ‘추모의 벽'이 준공식을 하루 앞둔 26일 오후(현지 시각) 유가족과 친지 800여명에게 먼저 공개됐다. 지난 2010년 당시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재단 회장을 맡고 있던 고(故) 윌리엄 웨버 미 육군 예비역 대령이 워싱턴 시내의 2차대전, 베트남전 기념공원과 마찬가지로 한국전쟁 기념공원에도 참전용사의 이름을 새겨넣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미국 의회에 제안한 지 12년 만의 일이다. 27일 오전(현지 시각·한국 시각 27일 밤) 열리는 준공식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각각 축사를 보내 대독시킬 예정이다.

이날 추모의 벽을 찾은 가족들은 전사자·실종자의 이름을 찾아 어루만지며 사연을 나눴다. 그들이 기억하는 전사자들은 모두 젊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다.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다가 스러진 이들의 죽음과 실종은 남겨진 가족들에게 큰 상처였다.

26일 오후(현지 시각) 워싱턴DC의 한국전쟁 참전 기념공원 내에 완공된 추모의 벽 앞에서 저넷 토너 쉘버그(71)씨가 청천강 전투에서 실종된 뒤 전사자로 처리된 오빠 조셉 토너 상병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뉴저지에서 온 저넷 토너 쉘버그(71)씨는 추모의 벽에서 미 육군 2보병사단 9보병연대 2대대 F중대 소속으로 참전했던 오빠 조셉 토너 상병의 이름을 찾고 있었다. 쉘버그씨가 입은 하얀 티셔츠에는 토너 상병의 얼굴 사진과 소속, 실종된 날짜 등과 함께 “영원히 잊지 말자(NEVER FORGET)”란 글귀가 인쇄돼 있었다. 토너 상병은 청천강 전투 중인 1950년 11월 26일 평안남도 순천 인근에서 적이 설치한 바리케이드를 제거하려다가 행방불명(MIA)됐고 이후 전사처리됐다.

쉘버그씨는 “나는 오빠가 실종됐을 때 생후 1개월이었다. 내가 오빠의 행적을 추적하게 된 것은 부모님, 특히 아버지를 위해서였다”라고 말했다. “오빠는 맏이였어요. 선친께는 너무나 큰 아픔이었고 그래서 제가 오빠의 추억과 이름이 잊혀지지 않게 노력하는 거예요.” 그는 “너무나 많은 전사자나 실종자가 고작 18살, 19살이었고 그들에게는 집으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 가족을 꾸릴 기회가 없었다. 오빠를 기억해 줄 자녀나 손주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한다”고 했다.

워싱턴DC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 내에 건립된 추모의 벽 앞에서 26일(현지 시각) 카투사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고(故) 한상순씨의 아들 한신희씨가 어린 시절 선친과 찍은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추모의 벽에 한국군 지원부대(카투사) 전사·실종자들의 이름도 함께 새겨진 만큼, 이날 행사에는 그들의 가족도 참석했다. 미 7사단 17연대에 배속돼 복무하던 중 1953년 7월 10일 연천 천덕산에서 발생한 이른바 ‘폭찹힐’ 전투에서 전사한 고(故) 한상순씨의 아들 신희(72)씨는 어린 시절 선친과 찍은 사진을 들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이 사진을 남겨두셔서 아버지가 그리울 때는 이 사진을 보면서 마음을 달랬다”고 했다.

한씨는 행정기록 누락으로 선친의 유해가 안장된 곳을 모르고 살다가 30여년 뒤 미군 측 기록을 토대로 국립묘지에서 찾았다고 했다. “아버지의 전사통지서가 도착한 뒤 할아버지는 물론 고모까지 쓰러지시고 어디에 유해가 있다고 들었지만 교통이 나빠 찾으러 가지 못했다고 해요. 미군들이 기록을 아주 정확하게 해둬서 나중에라도 찾을 수 있었던 것이 정말 고맙지요.“ 그는 추모의 벽 완공에 대해 “세계의 중심지 워싱턴DC에 이름이 각인된 것은 가문의 영광이고,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는 기회가 된 것 같아 너무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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