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니부터 당대표 청탁까지.. 정치인의 '스마트폰 잔혹사'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가 언론에 공개된 가운데 과거 국회 회의장에서 휴대폰 화면이 찍혀 곤욕을 치른 정치인들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뒷말이나 청탁을 주고받은 정황이 드러나 구설에 오르는가 하면, 정치적 계산이 깔렸다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회의장에서 여성 신체 사진을 보는 등 딴짓을 하다 물의를 일으킨 정치인도 있었다.
아빠가 도와줄게... 해명에도 구설수
먼저 국회의원 영향력을 직무와 관련 없는 곳에 직간접적으로 발휘한 정황이 스마트폰 속 메시지로 걸린 유형이다. 2019년 9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무소속 천정배 의원은 외교부 서기관으로 근무하는 둘째 딸에게 '국정감사 때 가까운 해외공관 직원들을 알려주면 내가 가서 도와주겠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이 찍혔다. 천 의원은 딸에게 '내가 이번 국감은 구주반에 속해 프랑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벨기에, 유럽연합(EU), 모로코, 이집트, 이탈리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공관에 갈 예정이다. 혹시 너와 가까운 직원들 있으면 알려주고 내가 가서 도와줄'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고 언론은 이를 포착해 보도했다. 천 의원 측은 "국정감사를 앞두고 해외 공관에서 근무하는 하급 공무원의 고충을 듣기 위해 (딸에게 지인을) 소개해 달라는 취지였다"고 해명했지만 두고두고 뒷말을 낳았다.
2020년 9월엔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연설이 바로 포털사이트에 반영됐다"는 보좌진의 보고에 '카카오에게 강력히 항의해 달라'고 지시한 문자 내용이 포착돼 비판을 받았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은 "포털을 통한 여론통제를 시도한 것이냐"며 "대형 포털 네이버의 임원 출신이자 문재인 청와대의 초대 국민소통수석 윤 의원의 문자가 충격이고 매우 유감"이라고 항의에 나섰다.
국회에 불려 나온 정관계 인사들이 보고받은 '기밀 사안'이 스마트폰 사진으로 알려져 부처 간 '서열'이 비교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여야 공방을 벌이고 있는 2019년 북한 어민 송환 때가 대표적이다. 그해 11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단결 ○○ 중령입니다. 오늘 오후 3시에 판문점에서 북한 주민 2명을 북측으로 송환 예정입니다"라고 적힌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문자메시지 내용이 보도된 직후 통일부는 브리핑을 통해 이 사실을 알리며 "당초 송환 이후에 발표할 계획이었다. 관련 보도가 나와 갑작스레 브리핑을 잡은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컨트롤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그때도 제기됐다.
"갈수록 이상해지네" 뒷말 찍혀 망신사기도
동료 정치인의 뒷말을 한 스마트폰 메시지가 사진에 찍혀 논란이 된 국회의원도 여럿이다. 2020년 2월 당시 미래통합당 공천 갈등을 겪었던 유승민 전 의원이 측근 인 이혜훈 전 의원에게 보낸 메시지가 대표적이다. 김형오 공천심사위원장이 미래를향한전진4.0(전진당) 대표 출신 이언주 의원에게는 전략공천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새보수당 의원들에게는 컷오프(공천배제) 혹은 경선 결정을 내려 형평성을 문제 삼았는데, 이 과정에서 "김형오가 갈수록 이상해지네"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해 입길에 올랐다.
2019년 9월엔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받은 문자에 이해찬 민주당 대표를 비난하는 내용이 있어 "제 의견이 아니다"라고 해명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해당 문자는 "대표될 때부터 분노조절이 안 되는 사람이라 이한구처럼 공천 파동을 염려했는데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고,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인천시 예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한 송 전 의원이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던 중 카메라에 잡혔다. 문자에는 "3선 이상이 너무 많고 386세대를 언론에 흘리는 걸 보니 이해찬이 명분을 만들어 감정을 앞세울 수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전략적 노출? 주요 시국에 스마트폰 확인하는 중진들
정치인의 스마트폰에 쏠린 시선을 이용해 일부러 노출했다는 의혹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2020년 7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의 아내와 장모 관련 자료를 읽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추 장관이 윤 총장과 검찰 개혁을 두고 계속해서 대립하는 상황에서 서류를 공개적으로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2016년 11월에는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박지원 당시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에게 보낸 "충성충성충성 장관님사랑합니다충성", "장관님 정현이가 죽을 때까지 존경하고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문자들이 공개됐다. 하지만 해당 문자는 발송 2개월여가 지난 시점에 박지원 대표를 통해 공개됐고, '정치적 술수'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진태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망신 줘서 대표직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술수"라며 "이 대표로선 곤혹스러운 것이고 박지원으로선 폼나 보인다"라고 비판했다.
2015년 국회 한 토론회에 참석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공천권 관련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다. 당시 20대 총선 공천권을 두고 당·청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였는데, 문자는 '정병국, 원희룡, 남경필에게 협조 요청을 해야 된다', '대표님은 큰 명분만 얘기하시면 게임은 유리해진다' 등 비박계의 공천 경쟁 전략을 담고 있어 역시 전략적으로 노출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권성동 대행 스마트폰 포착 구설수 3번째
지난 26일 대통령과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로 구설에 오른 권성동 대행은 이미 두 차례 스마트폰 화면이 문제가 돼 입길에 오른 적 있다.
2014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참석한 권 대행은 스마트폰으로 비키니 사진을 보는 모습이 포착돼 곤혹을 치른 바 있다. 당시 권 대행은 "다른 의원의 질의 도중 환노위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가 잘못 눌러져 공교롭게 비키니 여성 사진이 뜬 것"이라며 "의도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2019년 11월에는 황교안 당시 한국당 대표에게 당내 보수통합추진단장에 원유철 의원을 내정한 것을 재고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이 역시 스마트폰 화면이 찍히면서 드러났다. 권 대행은 문자메시지에서 "대표님, 자꾸 월권적인 발언을 드리게 되어 송구합니다. 통합추진단장으로 원 의원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지적했다. "김재원 의원의 이해찬 2년 내 사망 발언"을 문제 삼으며 "단호하게 대응해서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윤리위 회부도 제안했다.
때문에 권 대행이 윤 대통령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노출했을 거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BBS라디오 인터뷰에서 “상당히 의도가 있다”고 말했고, 보수논객인 변희재씨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권 대행이 국회서 비키니 사진을 봐 물의를 빚었던 뉴스를 올리며 "이미 이렇게 화를 한 번 당해본 자가, 똑같은 방식으로 또 당했다? 이게 바로 권성동이 고의로 문자 폭로했을 정황 증거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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