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특별하고 감격"..한국전 '추모의 벽' 찾아 눈물 흘린 美유가족들(종합)
탁본 뜨는 모습도..보훈처장 "추모의 벽, 굳건한 한미동맹 상징될 것"
(워싱턴=뉴스1) 김현 특파원 = 6·25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미군과 카투사들의 유가족 500여명이 26일(현지시간) 오후 미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모였다.
7·27 한국전쟁 정전협정일 69주년을 하루 앞두고 기념공원내 세워진 '추모의 벽'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추모의 벽'엔 한국전쟁 당시 목숨을 잃은 미군 전사자 3만6634명과 카투사 전사자 7174명 등 총 4만3808명의 이름이 새겨졌다.
'추모의 벽'은 한국 정부로부터 총 사업비 287억원을 지원받아 건립됐다. 지난해 5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착공식을 개최한 이후 14개월 만에 추모의 벽이 완성됐다.
한국전참전기념비재단(KWVMF)은 오는 27일 '추모의 벽' 준공식을 개최하는데, 하루 앞서 유가족들에게 이를 먼저 공개해 기념할 수 있는 행사를 개최한 것이다.
간간이 비가 내리는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가족들이 행사장을 찾았고, 각자 '추모의 벽'에 새겨진 잊혀졌던 영웅들의 이름을 찾아 가져온 하얀 장미꽃을 올려 놓으며 애도를 표하는 시간을 보냈다.
유가족들은 '추모의 벽'에 새겨진 '자랑스러운 영웅'의 이름을 탁본을 뜨는가 하면, 각인된 이름을 한자 한자 손으로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로버트 자무디오(88)는 쌍둥이였던 선친과 숙부가 참전용사인 외조카와 함께 추모의 벽을 찾았다. 외조카의 숙부이자 자신의 친구였던 영웅의 이름을 보기 위해서였다.
한국전 당시 군함을 타고 원산 등 동해안을 오르내렸던 자무디오는 '추모의 벽'이 건립된 데 대해 "저같은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겐 너무나 특별하고 감격스럽다"며 "한국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는 것 같아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외조카의 부친인 고(故) 월터 크리번, 그의 쌍둥이 동생인 제임스 크리번과 한 동네에서 자랐다는 자무디오는 한국전 당시 제임스와 계속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어느 날 편지가 끊겨 불안한 마음을 커졌다고 한다. 자무디오는 나중에 고국에 돌아와 제임스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고 취재진에게 설명하다가 끝내 눈물을 쏟았다.
외조카인 제프 크리번(62)도 추모의 벽에 새겨진 삼촌의 이름을 보며 벅찬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크리번의 아버지 월터와 삼촌 제임스는 18살에 한국전에 참전했다. 두 사람은 1953년 3월26일 당시 경기 연천군 장남면 매향리 지역의 전초지역(리노전초·카슨전초·베이거스전초)을 방어하던 전투에 참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당시 베이거스전초를 방어하는 본진에 있었는데, 상부로부터 1명이 전초기지로 가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다. 일란성 쌍둥이였던 두 사람은 신분증을 바꿀 수 있었기 때문에 동전던지기로 전초기지로 갈 사람을 정했다고 한다. 결국 전초기지로 가는 것은 동생인 제임스의 몫이 됐다. 당일 오후 7시 3000여명의 중공군이 전초기지를 공격했고, 전초기지에 있던 미군 40여명은 전멸했다.
1500야드(약 1370m) 뒤 본진에 있던 월터는 당시 전투 때 박격포탄에 맞아 부상을 입었고, 전투가 끝난 후 동생을 찾기 위해 구호소에 있던 시체 가방을 하나하나 뒤졌다고 한다.
아들 크리번은 "아주 비극적이었다"며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와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동생 생각에) 항상 무너졌다. 1969년에 완전히 무너졌다"고 설명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오빠를 아직도 찾지 못한 쟌넷 셀버그(71)는 "저와 같이 (한국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갈만한 묘소가 없었다"면서 "이곳은 (이제) 묘소와 같은 근거지다. 이곳은 우리가 (전사한) 그들의 이름을 보고 경의를 표하러 오는 곳"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한국전이 끝난 이후 실종자 모두를 사망자로 처리했고, 셀버그의 오빠 이름도 '추모의 벽'에 새겨지게 됐다.
셀버그의 오빠인 조셉은 19세의 어린 나이에 한국전에 참전했고, 1950년 11~12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청천강 전투'에 참여했다가 실종됐다. 첫째 아들을 잃은 셀버그의 부모님은 아들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나중에 셀버그가 미 정부로부터 받은 오빠의 인사 파일엔 아버지가 정부에 보냈던 수많은 편지들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셀버그는 그 편지를 보고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았다"고 말하며 울컥하기도 했다. 오빠의 사진과 실종 장소, '결코 잊지 말라(Never Forget)'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셀버그는 "우리는 오빠가 전쟁포로로 붙잡혀 있을지 모른다는 정보를 갖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저는 오빠를 위해, 오빠의 이름이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해 오빠를 계속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으로 인해 실종자 등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저는 그들(북한 정부)이 좀 더 인도주의적인 것에 초점을 맞춰줬으면 좋겠다"며 "우리가 들어가서 유해들을 찾을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이날 행사에는 한미 양국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주한미군 사령관을 지낸 존 틸럴리 KWVMF 회장은 기념식에서 "오늘 처음으로 여러분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공개한다"며 "여러분은 매일 희생을 치르고 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늙어 갈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유가족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조태용 주미한국대사는 '추모의 벽' 한편에 새겨진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언급하면서 "사랑하는 여러분 가족들의 희생 덕분에 한국은 경제와 민주주의 발전을 이뤘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한국은 72년 전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전혀 알지 못한 나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포연 속으로 뛰어든 영웅들의 헌신을 잊지 않고 있다"며 "그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4만3808명의 이름을 새겨 '추모의 벽'을 건립했다. '추모의 벽'은 앞으로 영웅들의 용기와 헌신을 기억하는 공간이자 굳건한 한미동맹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처장은 기념식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사자 유가족들 여러분이 저에게 추모의 벽 건립에 엄청 고맙다고 말씀을 많이 하셨다. 우리가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데, 저분들이 그렇게 말씀을 하신다"며 "미국 분들은 화강암에 (이름을) 새긴다는 그 자체가 그 마음을 새긴다는 뜻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이 한국이 가장 특별한 나라라고 생각을 하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 처장은 이어 "이런 기념식이 단순히 이벤트로 그치는 게 아니라 향후 한미 관계의 아주 든든한 발전에 그야말로 초석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편, '추모의 벽' 건립 등으로 새롭게 단장한 기념공원엔 일반 미국 시민들은 물론 한국인들도 많이 찾았다.
초등학생 아들을 둔 40대 한국계 여성은 뉴스1과 만나 "내일(7월27일)이 정전기념일이라는 얘기를 듣고 아들에게 보여줄 겸 해서 찾았다"며 "아들이 매우 의미 있는 날을 앞두고 이곳을 찾아 뜻깊다"고 말했다.
을지대학원 시니어헬스케어 학과에 다니는 박신성씨(25)는 "조지워싱턴대에서 행사가 있어 워싱턴DC를 방문했다가 여유가 생겨서 동기들과 함께 방문했다. 한국 사람들이 워싱턴에 오면 이곳을 꼭 방문하는 곳이라고 들었다"며 "숭고한 의미가 있는 곳을 찾으니 숙연해진다"고 밝혔다.
gayunlov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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