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 입양신청서의 '선량한 차별'이 불편해졌다[플랫]
최근 제주탠져린즈에 이은 2기 반려견 연습생 그룹 제주만다린즈의 MBC 라디오 생방송 스케줄로 서울에 간 일이 있었다. 강아지 아이돌답게 스위티와 포멜론은 초대석에 앉아서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방송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했다. 인간은 긴장하여 새하얗게 질려있었던 반면 두 멤버는 온에어 상황에도 ‘카메라 아이 콘택트’ ‘손’과 같은 개인기를 뽐내며 방송을 무사히 마쳤다. 뒤풀이 겸 근처에 있는 반려동물 동반 가능 술집으로 향했는데, 그곳에는 데뷔한 멤버 몇몇이 각자의 가족과 함께 모여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강아지들이 격하게 반겨주었고, 정신없는 와중에 사람들과도 이런저런 인사를 나누었다. 그곳 성미산알루는 지난 1월 제주탠져린즈가 가족을 찾기 위해 팬 미팅을 했던 장소이기도 한데 그곳에서 데뷔를 완료한 멤버들이 각자의 가족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새삼 기분이 좋았다.
거리가 멀어 자리에는 함께할 수 없었던 다른 가족들도 생각이 났다. 제일 처음으로 데뷔한 금귤이의 보호자는, 친구의 부탁으로 갑작스럽게 개농장에서 구조된 20㎏ 진돗개를 임시 보호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생전 처음 같이 살게 된 개가 경계심이 있었던지라 열심히 공부하였고 그 결과 미국의 한 가정으로 순조롭게 입양을 보냈다. 이렇듯 개를 반려하기에 손색없이 준비되어있는 분이었음에도, 우리를 만나기 전 여러 유기견 입양 단체에서 입양 심사에 반려되었다고 했다. 1인 가구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실 우리와 전속계약을 맺은 입양 가족 대부분 1인 가구, 비혼 여성, 취업 준비생, 출산을 앞둔 가족, 동거커플 등으로 다른 유기견 입양 단체에서는 금귤 보호자와 비슷한 답변을 듣게 될 것이다.
우리는 탠져린즈를 막 구조한 뒤, 유기견 관련 단체들에서 보통 어떤 조건으로 입양을 보내는지 참고하고자 찾아보았다가 적잖이 놀랐다. 많은 단체가 ‘이성애자 정상가족’을 기준으로 질문과 조건을 구성하고 있었다. 1인 가구는 애초에 입양 신청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고, 나이로 제한을 두는 경우도 많았다.
결혼한 부부는 하지 않아도 되는 추가적인 증명을 1인 가구 또는 동거가구에만 요구하기도 했다. 그 조건대로라면 39세 여성이 여자 친구와 함께 살면서 유기견 입양을 신청하게 되면, 단체는 이 여성의 부모와 통화해 입양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 여성은 수입을 증명하는 서류도 제출해야 하는데, 결혼한 이성애자 부부라면 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다. 신청자가 실제로 얼마나 경제적으로나 가족관계에서나 안정적인지와 무관하게, 결혼의 여부로 그것을 판단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 중 정신질환자가 있다면 입양할 수 없다는 조건도 있었다. 정신병 혐오를 버젓이 입양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는 것이 당혹스러웠고, 그런 신청서를 보는 것만으로도 차별받는 듯해 살펴보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1인 가구나 정신질환자나 성소수자나 20~30대 연령의 사람이 동물을 책임감 있게 반려하지 못할 것이라는 가정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일단 그 조건에 따르면 우리조차 단체에서 유기견을 입양할 수 없다.
아마 단체들에서는 수백 수천명의 신청서 가운데에서 입양 동물을 학대하거나 유기, 파양할 것 같은 무책임한 사람을 걸러내기 위해 고심하여 조건을 걸었을 것이다. 악의적으로 누군가를 차별해야겠다는 의도는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 차별은 많은 경우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던가? 악의 없는 순수한 무관심 속에서. 우리가 신청자라면 차별적이고 권위적인 입양신청서를 작성하는 과정이 썩 유쾌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관련 반려동물 데뷔 업계(?)에 문제의식이 공유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들었다. 더 찾아보니 몇몇 단체나 개인들은 우리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실제로 반려동물로 인한 스트레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 서술형의 질문을 통해 동물에 대한 태도를 확인하고자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점을 참고하여 우리도 입양신청서와 입양조건을 정하고, 반려견 전속 계약서를 만들었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강아지들의 가족이 결국 동물의 좋은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동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 동료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싶었다.
우리의 반려견 금배와 산책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이 우리를 불러 세워 개의 품종이 무엇인지 묻곤 한다. 처음에는 비슷하게 생긴 견종을 말해보기도 하고 잘 모른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냥 ‘믹스견’이라고 간단히 말하고 있는데,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는 부분은 사람들이 강아지마저 특정 범주 안에 포함시키고 싶어 한다는 사실 자체였다. 도시에서 흔히 키우는 작고 하얀 품종견이 아닌 금배는 항상 설명이 요구되는 존재였다. 질문하는 사람은 호의로 가볍게 하는 것이지만, 질문하는 이의 빈약한 범주 안에 맞추어 설명해야 하는 일은 매번 귀찮은 것이었다.
이런 일은 산책길에서만 겪는 것은 아니다. 강아지와 함께 비행기를 타려면 항공사에서 무게나 나이, 품종 등을 확인하는 절차가 있는데, 믹스견이라고 하면 ‘정확히 어떤 것들의 믹스견인지’ 답을 요구하곤 한다. 처음에는 ‘유기견이라 잘 모르고 그냥 여러 가지 섞인 잡종’이라고 대답해봤지만 그렇게는 등록할 수 없다는 반복되는 대답에 지쳐서, 이제는 비행 때마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견종을 골라 답한다. 오늘은 ‘몰티즈와 골든레트리버 믹스’, 어떤 날은 ‘요크셔테리어와 코커스패니얼 믹스’라고.
한동안 금배와 함께 어질리티를 배운 적 있다. 강아지와 보호자가 호흡하며 허들 같은 장애물을 넘는 도그스포츠인데, 함께 달리는 게 좋아서 매력에 푹 빠졌었다. 그런데 등급이 올라가면서 어떤 레벨부터는 혈통확인서가 있어야 경기 참가가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할 수 없이 비슷해 보이는 품종을 찾아 혈통확인서를 발급받았는데, 그 서류가 필요한 이유는 어질리티 자체가 품종 있는 개들의 우수함을 뽐내는 취지의 경기이기 때문이라는 답을 들었다. 그렇게 발급받은 혈통확인서상 금배의 품종은 네덜란드 강아지인 ‘더치스마우스혼트’이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이 가끔 산책하며 “내가 개를 잘 아는데, 얘는 삽살개죠?”라고 하면 “아닙니다. 더치스마우스혼트라고 합니다”라고 답해 “더치, 더치 뭐요?”라며 당황하는 사람을 돌려보낸 적도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밖에 나가 걸으니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럴 때마다 금배와 우리가, 사람들이 요구하는 문서의 기본 양식 바깥에 존재하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는 어딜 가든 항상 별첨이 필요한 존재라고. 사실 이런 경험들은 금배 이전에도 우리 둘의 삶 안에서 많이 반복된 일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금배에게 “그래서 넌 종이 뭐야?”라고 묻듯이 우리에게 언제나 물어왔다. “그래서 너는 여자야 남자야?” “그래서 너는 몇 살이야?” “그래서 너는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근데 왜 머리가 짧아?” “그래서 결혼은 안 할 거야?” 왜 일반적인 범주 안에 있지 않은지 설명해야 하는 일은 얼마나 번거롭고 곤혹스러운지. 거기에 금배까지 더해진 셈이었다. 열과 성을 다해 설명해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그래서 얘는 종이 뭐예요? 근데 그쪽은 언니야, 오빠야?”
제주도 이주를 결심할 당시에는 스스로에 관해 설명하는 일에 매우 지쳐있었다.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에서도, 직장뿐만 아니라 취미로 갖는 모임에서도 항상 조금 별난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취미생활로 시작한 강아지 모임에서는 저 개는 세계대회 도그쇼 챔피언 자견이라 항공료까지 1000만원이 들었다는 이야기, 저 개는 거의 경차 값이라는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했지만 아무도 우리에게 금배의 가격을 물어보지 않았다. 언제나 사람들과 원만히 교류하고 싶으면서도 항상 존재와 가치관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것이 너무나 피로한 일이었다. 제주로 이주해 한걸음 떨어져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실은 그런 것에 대해 회피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아주 잘 설명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우리 연습생들의 입양 홍보를 하는 것은 어느 때보다 그 설명의 의무에 충실히 임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마당 주민들 말마따나 집 안보다는 마당에 있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여겨지는 시골 잡종, 그러니까 태생부터 품종견·‘애완견’ 같은 일반적인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 존재들이 왜 그럼에도 동등한 취급을 당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골에선 원래 똥개들 잔반 먹이면서 키우는데 뭐가 잘못된 것인지, 저렇게 큰 개를 아파트에서 키워도 되는지, 진돗개 새끼면 공격적이지 않은지, 불쌍하니까 집이라도 내어주는 마음이 왜 부적절한지, 직장인인데 산책을 매일 해야 하는지, 기타 등등. 악의 없는, 대개 선량한 의도로 이루어진 질문들. 그것들은 보통은 편견이거나 잘 몰라서 하는 말들이었으므로 그걸 설명하는 것이 아이들의 장점을 설명하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차별의 대상이면서도 그것이 왜 차별인지에 대해 설명해야 할 의무도 있다는 사실이 이중으로 고통받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성미산알루에 앉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눈 날은 생각이 좀 달랐다. 사장님이 귤엔터의 팬이 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어느 방송에서 많은 단체의 입양신청서가 차별이라고 명확히 말하는 것을 듣고 정말 통쾌했다는 것이다. 그날은 이미 데뷔한 멤버들의 일상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척 즐거웠다. 1인 가구이고 혼자 강아지를 책임지는 것에 무척 겁이 났었는데 용기 내길 잘했다는 이야기들도 주고받았다. 생각해보면, 강아지는 당신을 어떤 범주로 가두고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귤엔터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존재만으로 충분한 당신을 우리는 반려견 연습생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다.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MBTI가 ENFP인 사람, INTJ인 사람, 그리고 말이 없는 강아지 금배로 이루어진 팀이다. 매일 산책하는 금배와 더 행복하게 걷기 위해 최근 제주로 이주했다. 걷다가 만난 마당개와 들개의 새끼들을 길거리캐스팅하며 ‘제주탠져린즈’라는 반려견 연습생 그룹을 꾸렸다. 지금은 이들의 소속사 귤엔터로서 반려견으로 데뷔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강아지 금배와 걸으며 만난 제주의 자연과 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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