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 뛰어도 배달·택배만큼 못벌어"..떠난 택시기사들 안 돌아와
■ Why -‘택시 대란’ 해결 안되는 이유
코로나 이후 승객 감소하자 법인 기사 급감… 대부분 고령인 개인택시는 심야운행 꺼려
정부,‘탄력요금제’‘강제배차’‘3부제 해제’ 등 검토… 서울시는 법인 면허 빌려주는 ‘리스제’ 추진
“회식 마치고 집에 가는 데 2시간 이상 걸렸어요. 택시를 타면 30분이면 가지만 택시가 잡히지 않아서 걷다가 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겨우 갔습니다.”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지난 22일 오후 11시쯤 서울 강남역에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호출했지만 배차되는 택시가 없었다. 그는 “‘택시대란’이라는 말이 나온 지가 한참 됐는데 아직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 같다”면서 “최근 회식자리도 많아지고 있는데 ‘귀가전쟁’이 더 심해질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심야시간대에 택시 잡기가 힘들다 보니 술자리가 끝나갈 때쯤 각자 택시를 호출하고 택시가 먼저 잡히는 사람부터 일어서는 술자리 문화도 생겨나고 있다. 직장인 조모(36) 씨는 “술자리에서 택시를 불러 잡히는 사람들은 먼저 귀가하고 안 잡히는 사람들끼리 다음 술자리로 이동해 택시가 잡힐 때까지 술을 한 잔 더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뿐 아니라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택시대란 해소를 위한 정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지만 사태 해결까지 다소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택시 부족이 아닌 택시기사 부족이 원인 =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며 저녁 술자리가 늘어남에 따라 서울에서는 연일 심야 귀가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택시가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27일 서울시에 따르면 심야시간대(오후 11시∼다음 날 오전 2시) 서울에서 운행하는 택시 수는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6월 평균 2만4000대에서 지난해 6월 1만6000대 수준으로 줄었다. 올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시가 각종 유인책을 발표하면서 심야 운행 택시 수는 2만1000대 수준까지 늘었지만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다.
얼핏 보면 운행 택시 수가 부족해 택시대란이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의 핵심은 택시기사 부족이다. 시에 따르면 법인택시 면허 수는 현재 2만2000개이지만 법인택시 기사 수는 약 2만 명에 불과하다. 운행 택시 수보다 기사 수가 적다. 시에서 심야 부제 해제 등 규제를 풀어줬지만 약 5만 대에 달하는 시 개인택시 중 1만2000대 정도만 심야운행에 나서고 있다. 개인택시 운전자 수는 코로나19 전후로 변동이 거의 없지만 매년 고령 운전자 수가 늘고 있다. 고령 운전자들은 건강 등의 이유로 심야운행에 잘 나서지 않고 있다. 70대 개인택시 기사 김모 씨는 “은퇴 후 소일거리로 우리 부부만 먹고살 정도의 돈을 벌기 위해서 택시운행을 하고 있다”면서 “심야에는 눈이 침침하고 피곤해 운행에 잘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 개인택시 면허 보유자 중 44%는 65세 이상이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도 택시기사가 부족한 상황이다. 경기도에서는 면허제인 개인택시 기사 수의 변동은 없지만 법인택시 기사 수는 대폭 감소했다. 도 법인택시 기사 수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2월 1만5000여 명 수준에서 올해 5월 기준 1만1000명대로 26% 이상 줄었다.
택시업계에서는 법인택시 기사들이 택시영업보다 단기 수익이 높은 배달대행 업체나 대리운전, 택배 등의 업종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택시업계 관계자는 “대리운전 등 다른 업종의 요금은 수요에 따라 오르지만 택시요금은 고정돼있어 상대적으로 기사들이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택시공급정책 쏟아내는 정부·지방자치단체 = 심야시간대 택시대란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자 정부는 개인택시 3부제 전면 해제와 ‘강제배차’ 도입 등을 검토하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 18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추진과제로 심야 택시 탄력요금제 도입 등 택시공급 확대 방안을 보고했다. 국토부는 심야 택시대란 해소를 위해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플랫폼 택시에 탄력요금제를 적용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요금을 25∼100% 올려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탄력요금제를 도입하면서 택시기사가 승객의 목적지를 알 수 없도록 가리고 강제배차하는 방식 도입도 거론되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최근 서울 강남역 인근에 나가 심야 택시대란 상황을 살피기도 했다. 국토부는 현재 25% 안팎에 그치는 심야시간대 택시호출 성공률을 50%대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국토부는 또 개인택시 3부제(2일 근무 1일 휴무)를 전면 해제하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국토부는 택시면허 없이 렌터카로 운송사업을 할 수 있는 ‘타입1’ 택시의 운행 활성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타입1 택시는 매출의 5%를 사회적 기여금으로 내야 하고, 총량규제도 받고 있다. 국토부는 택시공급 확대를 위해 타입1 택시의 허가 조건인 사회적 기여금을 낮추거나 총량규제를 풀어주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방침이다.
서울시는 국토부에 앞서 지난 4월 20일부터 개인택시 부제를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4시까지 일시적으로 해제하는 등의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시는 또 심야시간대 택시대란의 해결책으로 법인택시 리스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택시 리스제란 법인택시회사가 법인에 소속되지 않은 기사들에게 법인택시 면허를 대여해 주는 것이다. 시는 택시 리스제가 시행되면 부족한 법인택시 기사 수가 증가해 현재보다 3000∼4000대 많은 심야 택시 운행 대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는 심야 택시 운행 대수가 2만5000대에 이르면 택시 부족 현상이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경기도는 부제 운행 해제나 기사 확충을 위한 취업박람회 등 운수종사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택시대란의 근본원인 해결방안을 찾고 있다.
이정민 기자 j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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