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세워질 복합쇼핑몰, '도시의 미래'도 팔까
함박눈이 내리던 그날의 풍경을 어떤 사람들은 비웃었다. 2월16일 광주광역시 송정매일시장,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연단에 올라 ‘복합쇼핑몰 유치’를 공약했다. 대선후보가 자신의 지지율이 취약한 지역에서 던지는 공약이 겨우 복합쇼핑몰 유치라는 점, 하필 그 공약을 발표하는 장소가 전통시장이라는 점이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공약이 지역 정치권에 파동을 일으켰다. 이날 이후 호남 정치에는 ‘복합쇼핑몰’이라는 단어가 유령처럼 떠다녔다.
몇달 뒤 민선 8기 광주시장이 되는 강기정 당시 더불어민주당 호남총괄특보단장은 윤석열 당시 후보의 공약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공약이다. 광주·호남 발전에 대한 진정성이 떨어진다(2월22일 기자간담회).” 그러나 5개월 후 7월11일, 강기정 신임 광주시장은 언론 앞에 이렇게 선언한다. “대통령실에 가서도, 추경호 부총리한테도 말씀드렸지만 이 사업(복합쇼핑몰 유치)은 국가주도성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 5개월 전만 해도 복합쇼핑몰 공약은 진정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던 정치인이 시장 취임과 동시에 복합쇼핑몰 유치를 시정 핵심 과제로 급부상시킨 것이다.
대통령이 특정 지역에 복합쇼핑몰을 약속하고, 시장은 ‘국가주도형 복합쇼핑몰’이라는 생경한 단어를 설파한다. 이 기묘한 정치적 풍경이 나오게 된 원인은 무엇이며, 그 여파는 어떻게 흘러갈까. 광주 복합쇼핑몰 논란은 단순히 정치인 몇몇의 임기응변식 대응에 그치지 않는다. 비수도권 청년인구 감소라는 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조급함이 묻어나 있고, ‘도시의 미래’를 그리지 못한 채 발전한 지방 대도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생경한 시민조직의 등장
2021년 봄, 광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배훈천씨(53)는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한 시민단체를 결성했다. ‘대기업 복합쇼핑몰 유치 광주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라는 이름을 붙인 이 보수 성향 단체는 곧바로 네이버 밴드를 개설하고, 지역에서 ‘복합쇼핑몰’이라는 이슈를 던졌다. 2021년 6월1일, 이 단체는 “복합쇼핑몰은 단순한 상업 시설이 아니라 종합 문화공간이다. 광주가 낙후한 생활환경을 갖게 된 데에는 반기업 정서를 가진 시민단체와 지역 정치권이 있다”라는 내용이 담긴 선언문을 발표했다.
배훈천씨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당시 단체 결성 과정에 대해 “지역 여론을 모니터링하다 ‘복합쇼핑몰 이슈’가 파급력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단체에 주로 모인 이들은 30대 청년들이다. 서울을 비롯해 다른 지역, 다른 도시를 돌아다녀본 이들 세대 사이에서 광주가 낙후됐다는 인식이 강했다”라고 설명했다.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모인 이들 중에는 국민의힘 당협위원장도 포함되어 있었고, 회원 중 일부가 대선 기간에 국민의힘 유세팀에 합류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선 캠프가 지역 공약으로 ‘복합쇼핑몰’을 전면에 밀게 된 경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광주·호남 지역의 시민사회를 ‘반기업주의, 반개발주의’라고 비판한다는 점이다. 배씨는 특히 지역의 대규모 개발사업이 지체되는 모습에서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설명한다. 어등산 관광단지 조성사업(2005년~), 광주지하철 2호선(2000년~) 등 굵직한 현안이 차일피일 미뤄진 데에는 개발보다 보존을 우선시하고 기업의 이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광주 시민사회단체들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배씨 역시 복합쇼핑몰 유치 논란이 대통령 공약을 통해 정치적 의제로 부각되는 게 자연스러운 풍경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대통령 공약으로 제시되어야 그나마 실현이 가능한 환경”이라는 게 배씨가 바라본 지역 공론장의 현주소다.
30대가 중심이 된 생경한 보수 성향 지역 조직, 국민의힘은 이러한 ‘지역에서 출발한 목소리’를 민주당 지지세가 압도적으로 강한 호남 표심을 흔드는 데 활용했다. 광주 방문 직후인 2월18일, 윤석열 당시 후보는 대구 달성군 유세에서 “민주당 정치인들이 자영업자 핑계를 대면서 (광주에) 대형 쇼핑몰이 들어오면 골목상권이 망한다고 반대했다”라며 재차 광주 복합쇼핑몰 유치 공약을 강조했다. 이날 윤 후보는 “대형 쇼핑몰에 있는 좋은 물건들, 명품들에 국민들이 관심을 갖게 되면 투쟁 의지가 약화된다고 보는 것 같다. 광주에 대형 쇼핑몰이 없어서 대전까지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며 다소 비약이 심한 발언도 남겼다. 이 같은 발언을 굳이 타 지역(대구)에서 외친다는 것도 호남 지역민에게 불쾌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의 ‘수비’는 힘겨웠다. ‘복합쇼핑몰 유치’는 지역 공약이었지만 전국적 화제성이 강했다. ‘복합쇼핑몰 유치’가 공약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관심거리였다. ‘지역 발전이 더디다’는 감각을 정치가 자극한 사건이었다. 민주당에 제기되는 지역 표심의 비판적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다.
“이게 뭘까 싶었다. 신세계 CEO의 공약도 아니고, 한 나라의 대통령이 종합쇼핑몰 건립하는 걸 공약으로 낸다니. 그런데 한편으로는 영리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욕망을 건드렸다.”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은 복합쇼핑몰 공약을 처음 들었을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지역에서 코스트코나 이케아 같은 대형 쇼핑 시설에 대한 요구가 없진 않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불만이 정치적인 목소리로 부각되지는 않았다. 김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공약이) 정치의 영역을 굉장히 협소하게 만들었다”라며 “대선 프레임을 잘 짰다고 생각한다. 대전이나 부산 같은 다른 지역 종합쇼핑몰을 상기시키면서, ‘우리만 낙후되어 있다’는 패배감을 사람들에게 심어준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이런 전략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이번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광주 12.72%, 전남 11.44%, 전북 14.42% 득표율을 확보했다. 역대 보수정당 대선후보 가운데 호남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0.73%포인트 격차로 대통령에 당선된 만큼, 호남에서 얻은 표의 가치가 결코 작지 않았다.
지방선거의 결과도 충격적이었다. 광주는 투표율 37.7%로 전국에서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지역 정치인들도 다급해졌다. 지방선거 직후인 6월3일 광주KBS와 인터뷰하면서 강기정 당시 광주시장 당선자는 “유통 사업자들의 의견을 당연히 전제로 하여 우리 시에서 국가의 협조를 받아 (복합쇼핑몰 유치를) 빠른 속도로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 오래된 도시를 둘러싼 두 관점의 충돌
쇼핑몰이 지역 정치의 화두가 되는 모습에 대해 일각에서는 ‘유권자는 소비자가 아니다’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복합쇼핑몰 논란은 단순히 ‘편리한 쇼핑 여건’을 바라는 열망만 작동했다고 보기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도시의 미래상’에 대한 논쟁이 광주에서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7월6일, 복합쇼핑몰 논란은 새 국면을 맞이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이 휴먼스홀딩스와 함께 광주시 북구 임동에 위치한 구 전남방직·일신방직 공장 부지에 대규모 복합쇼핑몰 ‘더현대 광주(가칭)’를 짓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유통 대기업 입장에서 광주 복합쇼핑몰은 국가(대통령)와 지자체(시장)가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아이템이다. 기업이 마다할 리 없는 사업이다. 이날 발표는 광주시와 사전 협의를 거친 내용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백화점그룹이 건설 부지로 콕 집은 공간의 특수성 때문에 지역 여론이 시끌벅적해졌다.
구 전남방직·일신방직 부지는 지역에서 가장 논란이 큰 공간이다. 지역 시민단체들은 이곳을 근대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공간이라고 주장하지만, 배훈천씨와 ‘시민회의’처럼 도심 개발을 강하게 주장하는 이들은 ‘도시의 흉물’로 규정한다. 실제로 배씨와 ‘시민회의’가 지난해 발표한 선언문에도 “(복합쇼핑몰) 유치 활동을 전남·일신방직 부지 재개발과 연계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지어진 구 전남방직·일신방직 공장 부지는 광주 구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폐공장 시설이다. 30만㎡에 달하는 이곳은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경기장, 광주종합버스터미널(유스퀘어)과 인접해 있다. 호남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인 양동시장과는 1㎞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는 광주 구도심의 상징과 같은 공간이자, 한국 근현대 산업사의 핵심 공간이기도 하다.
도시는 과거의 흔적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 광주는 이른바 ‘서쪽으로 확장한’ 도시다. 광주 구도심의 동·남·북쪽은 무등산 자락으로 둘러싸여 있다. 광주천이 영산강과 만나는 서쪽 지역만 ‘빈 땅’이었다. 1990년대 상무지구 개발, 2000년대 수완지구 개발 등 광주시는 지속적으로 서쪽에 신도시를 만들며 개발을 이어갔다. 신규 아파트 단지가 서쪽 어등산 일대까지 확장되고, 도시의 행정 기능도 서쪽으로 옮아가면서(시청 이전) 광주 구도심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이들 구도심은 곧 재생이냐 재개발이냐 기로에 놓이게 된다. 전국적으로 도시재생 성공 사례로 꼽히는 남구 양림동, 이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하게 되는 동구 동명동처럼 젊은 세대가 자주 찾는 공간도 생겨났지만, 대다수 구도심은 재개발 여부를 놓고 갈등을 겪는다. 이런 상황에서 복합쇼핑몰이라는 화두가 지역 정치의 전면에 떠올랐고, 핵심 부지로 전남방직·일신방직 부지가 언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를 새 아파트로, 보다 높은 건물로 재편해야 한다는 이들은 건설자본의 요구와 함께 도시 재개발에 무게를 싣는다. 역설적이게도 광주는 전국에서 아파트 보급률이 가장 높은 도시다. 계획도시인 세종시를 제외하면, 전국에서 주택 중 아파트 비율이 80%를 넘는 도시는 광주광역시가 유일하다(2020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빈 땅에 아파트를 지으며 확장한 도시답게, 상당수 시민들은 구도심 역시 새 아파트와 새 건물로 채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로 아파트 건설 중심의 도시 확장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보는 관점도 만만찮다. 인구가 정체된 상황에서 집만 지어서 무엇 하냐는 논리다. 광주광역시 주민등록인구는 2002년 139만여 명, 2021년 144만여 명으로 20년 가까이 정체되어 있다. 최근에는 2014년 정점(147만여 명)을 기록한 뒤 소폭 하락하는 추세다. 구도심을 아파트로 재편하는 게 건설업계에는 희망적일지 몰라도, 도시의 특색을 오히려 없앨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박수민 이사장은 “2030 세대 사이에서 노후화된 도시에 대한 답답함은 존재하지만, 구도심 한가운데에 대형 건물(복합쇼핑몰)이 하나 들어선다고 해서 바로 ‘재미있는 도시’가 되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 청년인구 유출에 다급해진 지자체
7월12일, 정종임 광주광역시 대변인은 “국정과제이자 지역 현안인 복합쇼핑몰과 관련한 TF를 구성해 운영한다”라고 밝혔다. 강기정 시장이 그동안 주장한 ‘국가주도형 복합쇼핑몰’은 ‘국가지원형 복합쇼핑몰’로 명칭을 바꾸어, 국가 지원과 민간자본 투자, 지역 행정 지원을 신속하게 결합하겠다고 주장했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밝힌 셈이다.
그런데 정치권이 복합쇼핑몰을 언급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청년’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청년층을 타깃으로 삼으며 복합쇼핑몰 어젠다를 띄웠고, 지역에서 정치권력을 쥔 민주당은 마찬가지로 청년 유권자의 이탈에 놀라며 허겁지겁 복합쇼핑몰을 시정 과제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광주시 경제부시장에 선임된 김광진 전 의원은 7월5일 〈광주드림〉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청년들이 왜 광주에는 마켓컬리 새벽배송이 안 되느냐, 스타벅스 리저브가 없느냐고 묻는다. 이제는 지자체가 직접 유치하러 다녀야 한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민선 시장이 기업의 서비스를 유치해야 한다’는 관점은 정치권에서 대접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정치가 ‘소비자 유권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려 하고 있다. 이는 비단 광주에서만 일어나는 변화는 아닐 것이다. 정치는 대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며 시민에게 ‘소비하는 주체’라는 정체성을 각인시켰다.
지자체가 소비의 폭을 넓혀주는 것은 정말 청년인구 유지에 도움이 될까? 광주시의 변화에 대해 김다정 위원장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접근이라고 지적한다. “지자체가 ‘인구정책’에 조급해하는 경향이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방도시 간 가장 큰 격차가 무엇이겠나? 바로 인프라와 일자리다. 서울에 갈 때마다 버스가 5분 간격으로 도착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지역에서는 자기 차가 없으면 힘들다. 이런 대중교통 현실을 놔두고 소비할 수 있는 큰 공간을 하나 만든다고 해서 청년의 삶이 나아질까?”
복합쇼핑몰을 원하는 도시 구성원들의 ‘열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정치가 스스로 정치의 영역을 협소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광주시 복합쇼핑몰은 정치권의 약속대로 빠르게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대통령 공약이고, 심지어 국정과제다. 사업 추진을 대외적으로 알린 현대백화점그룹 외에 유통 대기업인 신세계·롯데 등도 사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복합쇼핑몰로 촉발된 광주라는 도시의 갈등은 다양한 도시 공간에서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도시를 세련되고 자본 집약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소비 중심 관점과, 외적 팽창이나 재개발·재건축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관점이 도시 안에서 지속적으로 논쟁하고 있다. 한국 정치가 2022년 광주에서 마주한 이 생경한 풍경은, 청년인구 감소에 직면한 다른 도시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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