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10년간 중증복합골절 상태..강제동원 2단계 해법 필요"

박민희 2022. 7. 2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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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박민희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 | 신각수 전 주일대사
신각수 전 주일대사가 21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면서 한일관계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일 관계를 비롯한 외교 분야 전문가인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한일 관계의 핵심이 된 강제동원 피해 해법과 관련해 ‘현금화 동결 방안은 신속하게, 강제동원 전반의 해법은 차분하게’ 2단계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현금화가 진행되면 양국 관계는 악순환의 연쇄작용에 빠져 사과와 보상을 받을 길도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정부가 피해자들을 더 적극적으로 설득해서 임박한 현금화를 동결하는 방안을 우선 마련하고“ 외교 협상의 공간을 열어 일본 기업의 사과와 기금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의 사무실에서 한 2시간여의 인터뷰에서, 신 전 대사는 한일 관계가 ‘잃어버린 10년’의 중증복합골절 위기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한국과 일본의 국력 차이가 급속도로 줄면서 대칭적 관계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의 충돌에 휩쓸린 상태인데, 중국의 부상, 북한 핵 능력 강화, 미국 신고립주의가 심화하는 불확실한 국제정세에서 한·일 양국의 전략적 협력이 중요한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개헌이나 방위비 인상이 신속하게 진행되기 어려운 요인들이 있다고 진단했다.

대중국 외교와 관련해선, 경제수석이 ‘이제는 중국 대신 유럽 시장으로 간다’고 발언하는 식으로 중국을 자극할 것이 아니라 정교한 외교가 필요하다고 했다. ‘칩4 동맹’ 같은 형식은 적절치 않다는 점을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각수 대사는 주일대사(2011~2013)와 외교부 1·2차관을 역임했고, 한일 관계·아시아 외교, 국제법, 북한 인권 등과 관련한 활발한 저술과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 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의 문제를 최대한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는 조급증을 보이는 듯하다.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피해 배상에서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의 사과와 배상이 없는 대위변제 방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 분명하다.

“매우 복잡한 문제인 만큼 조급하면 안된다는 점에 동감이다. 그런데, 배상 판결을 받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압류한 일본 기업 자산을 현금화(강제매각)하는 절차는 대법원에서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고, 이르면 8월에 매각 명령이 나온다는 전망도 있다. 현금화가 실제로 진행되면 일본이 대응조치를 취하고 한국도 그에 대응하면서 연쇄반응이 일어나 한일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피해자들도 사과와 배상을 받을 길이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일본 기업 자산을 현금화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대책을 마련하고, 강제동원 문제는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해결하는 2단계 방안으로 가야 한다. 우선 정부와 민관합동위원회가 피해자와 지원 단체들을 더 적극적으로 설득해서, 일본의 사과와 기금 참여를 포함한 외교적 해결을 이끌어낼 시간을 벌기 위해서 우선 임박한 현금화를 동결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전반적 해법은 피해자들을 비롯한 이해 당사자들과의 협의, 한·일 당국의 외교 협의, 국회 입법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일본 기업들이 피해자 쪽과의 대화를 거부해온 것은 일본 정부가 그것을 막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현금화가 동결되고, 양국 정부간 대화가 진행되면, 일본 기업들도 피해자들과 대화에 나서면서 문제가 풀릴 수 있다. 현금화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일본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사망으로 일본 정국이 혼돈에 빠지면서 기시다 내각이 지금 먼저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일본 쪽이 사과와 기금 참여를 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나.

“강제동원 문제의 근원은 물론 일본의 식민지배로 인한 것이지만, 한국 대법원의 판결로 재부상한 측면이 있다. 14년 동안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을 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차이였다. 우리는 당연히 식민지배는 불법 부당한 것으로 보았고, 일본은 식민지배가 합법적이고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결국은 그것을 양측이 외교적으로 타협한 결과가 한일기본조약 2조와 한일청구권 협정이다. 기본 조약 2조는 “식민지배는 이미 무효”라는 모순된 표현인데, 우리는 ‘무효’를, 일본은 ‘이미’를 강조하며, 각자 다르게 해석하는 소위 ‘이견 합의’를 통해 봉합했다. 법적인 문제를 외교적으로 치환해 타협했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은 외교적 타협으로 봉합한 판도라 상자를 다시 열었다. 일본은 65년 협정으로 모두 해결되었다고 주장하고, 한국 정부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한국과 일본의 입장을 절충하는 외교 합의로 풀 수 밖에 없는데, 그 절충점이 어디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한국 정부는 피해자, 피해자 지원단체, 그리고 청구권 협정의 수혜를 받은 한국 기업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일본과 협상할 안을 만들어, 그것을 가지고 일본과 교섭해서 합의를 만들고, 그 내용을 특별입법해야만 한다. 한국 정부가 70년대와 2007년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보상 조치를 했지만, 지금 대법원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은 그 돈을 받지 않고 일본과 한국에서 거의 30년 가까이 힘겹게 법정 투쟁을 해온 분들이다. 정부도 보상에 참여해야 한다. 일본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금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제3자 변제를 하는 틀을 만들 때 일본 기업들이 결국 참여하고 사과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쓰비시나 신일본제철은 세계적 기업이다. 과거사에 묶여 계속 비난받는 상태는 그들에게도 부담이다. 일본 기업들이 중국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배상을 했는데 한국 피해자들에게 왜 못하겠는가.”

―일본 기업들이 중국 피해자들에게는 사과비를 세우고,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에 대해 제대로 알리겠다는 군함도(하시마) 유네스코 등재 당시의 국제사회와의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미쓰비시머티리얼이 최근 군함도에 중국인 강제동원에 사과하는 우호비를 세웠다. 일본은 중국인은 전쟁 기간 중 동원되었고, 한국인은 식민지 상태에서 ‘일본 국민’으로 동원되었다는 차이를 주장한다. 또 중국과는 식민지가 아닌 전쟁관계였기 때문에 전쟁 배상 문제가 있다며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고 내세운다. 그것은 법적인 논리이고, 실제로는 중국도 일본으로부터 공적개발원조(ODA)와 기술지원을 받은 것이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결국 한국은 청구권 자금, 중국은 공적개발원조를 받았다는 형식 차이만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한국과 중국 피해자들이 의사에 반해서 강제로 동원돼 고된 노동을 했다는 점은 똑같다. 따라서, 군함도 유네스코 등재 관련해 일본이 한 약속을 이행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가 끈질기게 추궁해야 할 문제이다. 일본은 한국이 골대를 옮긴다고 비난하는데, 자신들은 골대를 뽑아버리고 있다. 강제동원 해법을 마련하는 데서도 이런 점들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가 21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5년 한일 정부간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파기되지 않고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문재인 정부가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핵심인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했지만 합의를 파기하지는 않고 무력화시킨 상태이다. 화해치유재단에는 일본 정부 예산 10억엔이 들어갔는데, 이것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중요한 요소다. 일본 정부 예산 10억엔 가운데 일부는 위안부 피해자 46명 중 35명과 유족이 수령했다. 나머지 63억원과 우리 정부가 매칭펀드로 조성한 100억을 더한 약 160억원이 남아 있다. 합의가 파기된 것은 아니므로, 의미를 살려 보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반성하여 교훈으로 삼는 것이다. 20세기의 불행했던 경험을 21세기에 되풀이하지 않도록, 남은 기금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사실을 발굴해 이론화하는 작업을 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양국 국민에게 올바른 교육을 하는 협력 사업을 하는 것이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2015년 합의 당시를 돌아보면, 한일 양국 정부 모두 합의 이행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일본은 ‘더 이상 사과는 필요 없다’고 주장하고, 소녀상 철거 요구 등으로 반대 여론을 일으킨 책임이 있다. 한국 정부도 ‘불가역적 합의’ 등에 의문을 가진 여론에 제대로 설명하고 설득하지 않았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외교 현안으로서의 문제를 종결하는 것이고, 역사와 국제 인권의 문제로서 교훈을 삼고 다시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어야 했다.”

피해자 설득 현금화 우선 동결로 협상공간 열어 사과 등 풀어야
아베 사망 당장은 한일관계에 부담, 기시다 권력 안정 땐 긍정적
정당 사이 입장차, 경제 악화 고려하면 일본 개헌 동력 미지수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반도체 원료, 소재 수출 제한 조치)와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일본이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통상 규제를 했고, 우리는 그에 대한 대응으로 지소미아를 중지시켰다가 정지로 바꾼 상태이다. 정치 문제가 경제와 안보를 침해한 케이스인데, 한일관계가 악화되어도 경제와 안보 영역은 침해하지 않는 불문율이 깨졌다. 양쪽 모두 손해를 보는 ‘상호손실(lose-lose) 게임’이다. 현재 한국과 일본을 둘러싼 전략적 환경을 고려하면, 절대 하면 안되는 일을 한 것이다. 일본은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경제 보복 조치도 못 푼다고 하는데, 경제 조치를 푸는 데서 진전이 이뤄지면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동력이 된다는 점을 깨닫고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강제동원 문제 해법의 1단계로 현금화 조치를 동결하는 해법을 한국이 마련하면 통상 규제와 지소미아 문제도 바로 풀어야 한다.”

―한일관계를 복합중증골절 상태로 진단했는데, 원인과 해법은 무엇인가.

“한일관계에서 ‘잃어버린 10년’ 악순환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한일 국력 차이가 급속도로 줄면서 과거의 비대칭적 관계에서 대칭적 관계로 변모한 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것이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겪으면서 발전 동력을 잃고 정치·사회적 불안이 커지면서 과거 잘못을 반성하기 보다는 ‘강한 국가’를 바라게 되면서 역사수정주의로 흐르고 우경화했다. 일본의 우파 민족주의와 한국의 좌파 민족주의의 충돌이 벌어졌다. 중국의 부상과 북한 문제의 해법에 대한 양국의 입장 차이도 영향을 미쳤다. 이 어려운 상황을 서로 잘 극복하면 ‘성장통’으로 끝나겠지만 더 장기화하면 ‘근위축증’으로 고착화될 위험이 있다. 그런데, 양국은 국제질서가 매우 불확실한 현재 상호 중요성과 협력 잠재력을 간과하고 있다. 중국은 ‘작은 나라는 큰 나라에 복종해야 한다’는 위계적·수직적 질서를 추구하면서 부상하고 있고, 북한은 사실상 핵무장 국가에 가까워지고, 미국의 신고립주의가 대두하는 매우 불안정한 전략 환경에서, 한국과 일본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파트너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세계사적으로 관점에서, 한일관계와 65년 체제를 장기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으로 형성된 ‘65년 체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많은 수정 보완이 이뤄져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최대 쟁점인 식민지배에 대해 우리는 불법적이고 부당한 것이라고 했다. 일본은 당시에는 ‘합법적이고 정당한 것’이라 주장했는데 현재는 ‘합법적이지만 부당한 것’으로 변화했다. 1990년대부터 무라야마 담화, 고노 담화, 김대중-오부치 선언, 간 나오토 담화 등을 통해 일본이 과거에 잘못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다만 법적으로 식민지배가 불법이었느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메우기 힘든 간극이 있다.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고 유럽 제국주의 열강들도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오히려 세계사적으로는 한일이 식민지배 청산에서 많이 앞서 나갔다. 식민주의에 대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사죄와 반성은, 시간 문제이지 결국은 오리라고 본다. 우리뿐 아니라 아프리카, 카리브해 지역의 여러 나라들이 식민지배 국가의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을 방문 중인 박진 외교부 장관이 19일 오후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예방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외교부 제공

―아베 전 총리 사망 이후 일본 정치는 어디로 향하고, 한일관계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아베 전 총리는 메이지 유신 이후 최장기간 집권한 총리였을 뿐 아니라, 2010년대 일본의 정치·외교·안보·경제를 지배하면서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했던 지도자이다. 그의 죽음이 일본 정계에 미치는 파장은 대단히 클 수밖에 없다. 현재 자민당 내에서 의원 93명의 최대 파벌인 아베파를 비롯해 모테기파, 아소파, 니카이파, 기시다파가 주요 5대 파벌인데, 기시다 총리가 이끄는 기시다파가 의원 41명으로 가장 작은 파벌이다. 정국의 최대 변수는 아베파가 어떻게 정돈되느냐인데, 현재는 7인 집단지도체제를 꾸린 상황이고 누가 아베파를 실질적으로 이끌게 될지가 분명하지 않다. 아베 총리의 통제가 사라지면서 이들이 더욱 강경노선으로 흐를 위험도 존재한다. 기시다 총리가 선거가 없는 3년간 얼마나 독자적으로 자기 색깔을 내고 일본 정계에 실력자로 부상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기시다 총리의 정치력, 파벌간 합종연횡, 아베파의 안정화 여부가 일본 정국의 향방을 결정할 텐데,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한일관계 측면에서 단기적으로는 아베 전 총리가 막후에서 역할을 할 때보다 오히려 더 움직이기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온건파인 기시다 총리가 점차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고, 한일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일본이 평화헌법 9조를 바꾸는 개헌을 하는 데 대단히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이번 참의원 선거 이전부터도 개헌에 우호적인 4개 당 의석은 개헌 발의 가능 의석이 넘었다. 최대 변수는 개헌에 반대하는 다수 여론이었다.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일본도 평화헌법의 제약을 탈피하는 ‘보통국가화’가 되는 것을 지지하는 여론이 늘고 있다. 중국이 대만과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에 대해 강압적 정책을 펴는 데 대해 일본 여론이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민당이 4개항을 바꾸는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선거 승리 직후 기시다 총리가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개헌 논의가 큰 동력을 얻기는 어렵다. 일본과 세계 경제가 악화하고 있는데, 개헌에 정치적 자원을 쓸 만큼 여유가 있을 것인가. 4개 당이 개헌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각 당마다 추구하는 개헌의 내용이 다 달라서 보조를 맞추기도 쉽지 않다. 우선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헌법에 ‘자위대 명기’를 지지하지 않는다. 공명당의 기반은 불교, 도시 소외계층, 평화주의자들로, 자민당 선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무시하기 어렵다. 기시다 총리는 여러 여건을 살피면서 구체적으로 개헌에 나설지를 결정할 것이고, 개헌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지는 미지수이다.”

―개헌 여부와 별개로, 이미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적기지 공격’을 추진하고, 방위비 대폭 인상도 하겠다고 나선 것은 우려스럽다.

“일본의 국가부채가 GDP의 약 260%이고, 예산의 약 40%를 원금 지불과 이자 상환에 쓰고 있다. 지금 일본의 공식 방위비는 1%에 조금 못미치지만, 나토 기준에 따라 해상보안청을 포함해 계산하면 약 1.2%다. 이것을 GDP의 2%로 증가시키겠다고 밝혔지만, 과다한 정부 부채 등 때문에 실제로 빠르게 방위비를 늘릴 여력이 별로 없다. 고령화로 복지 예산 부담도 크다. 즉, 방위비를 2%로 늘린다고 목표 설정은 하지만,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 일본은 이미 2015년에 해석개헌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고, 자위대는 명칭만 자위대이지 이미 ‘싸울 수 있는 군대’이다. 전수방위는 이미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전전의 일본에 비추어 보면 일본의 재무장은 매우 우려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전후 일본의 상황에 비춰보면 경계는 하되 조금 다르게 볼 부분도 있다. 일본이 평화헌법을 70여년간 유지해 왔고, 반전·반핵에 대한 일본 사회의 지지도 완전히 퇴색됐다고 볼 수는 없다. 또 하나 일본의 아킬레스건은 인구 문제이다. 합계출산율이 1.2 정도로 낮아졌고 징병제도 아니어서 병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와 함께 우리가 생각할 점은 중국의 군사력이다. 중국이 세계 2위의 군사비를 쓰고 있는데, 중국의 물가와 비공식 군사 지출 등을 따져보면 동아시아에 관한 한 미국의 국방비 지출과 비슷하다는 분석이 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군사력은 압도적이고, 미국이 이 지역에 계속 남아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2030년대 중반이 되면 중국의 경제력은 아시아 나머지를 합한 것을 넘어설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세력 균형을 유지하고, 미국이 이 지역에서 물러날 경우 힘의 공백이 생기면서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막는 데 공통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일본의 군사력 증강이 중국의 군사력에 대한 균형을 유지하는 목표 아래 투명하게 이루어지고, 민간 통제가 확실히 유지되고, 한일 간의 협력이 충분히 된다는 전제 아래서다.”

‘동상이몽 한미일 협력’ 한국은 비핵화·한반도 평화 위해 활용해야
대외정책서 중국 과대평가 사실, 자극보다 정교한 외교로 전환을
‘대만 평화’ 다자 노력 동참하되 ‘칩4동맹 부적절’ 미국 설득 필요

―한미일 협력에 대해 세나라의 강조점은 다른 동상이몽 상황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한미일 협력의 목표와 범위, 원칙을 어떻게 정해야 할까.

“한미일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각국의 우선 순위가 다르다. 한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고, 중국의 부상에 따른 전략적 균형의 파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의 힘을 빌리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고,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는 데도 활용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우리의 목표를 추구하되, 미국, 일본과도 일정한 선에서 협조하면서 그것을 통해 확보한 지렛대를 우리 목표에 활용해야 한다. 미국, 일본이 하자는 대로만 끌려가면 안 되겠지만, 현실적인 주고받기도 있어야 한다. 서로 우선 순위가 다른 한미일이 최대 공약수를 찾아내고, 동북아에서 우리의 독자적 전략 공간을 마련해 북한 핵 위협에 대응하고, 비핵화를 추진하면서, 북한이 변화의 길을 갈 수 있게 하는 데에 한미일 협력 기제를 활용해야 한다.”

―결국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박근혜·문재인 정부 9년 동안 우리 대외 정책에서 중국을 과대평가한 측면이 있다. 물론 중국은 한국 수출의 25~30%를 차지하는 중요한 시장이자, 북한 문제에 대한 역할에서도 여전히 중요하다. 그런데, 좀더 자세히 보면 한중 산업·기술 격차가 줄고, 일부 분야는 중국이 훨씬 앞서게 되면서 한중 경제 관계도 변화했다. 북한 문제에서 중국이 우리에게 협조하지도 않았다. 한국의 대중국 정책은 문재인 정부가 2021년 5월 바이든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면서 이미 방향을 전환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지난 5월 정상회담은 그 방향을 재확인하면서 조금 더 나아간 것이다. 한국의 대중국 정책 방향이 달라진 것은 이미 중국도 안다. 너무 중국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 전체적인 방향을 정하고, 구체적인 행동은 차근차근 해나가도 된다. 경제수석이 ‘이제는 중국 대신 유럽 시장으로 간다’고 한 것은 필요 없는 말이다. 최근 경제와 안보가 융합되면서 경제가 정치적으로 뒤틀리는 현상이 벌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큰 틀에서 비즈니스는 이익을 보고 하는 것이다. 갑자기 유럽 시장에서 우리한테 공간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한중 관계도 잘 관리해야 한다. 한중은 영원히 이사갈 수 없는 이웃이다. 차분하게 방향 전환을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좀 더 정교해졌으면 좋겠다.”

―한국은 대만 문제에 대해 어떤 원칙을 가지고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해야 할까.

“대만 해협에서 무력 충돌 사태가 벌어지면 한반도에도 남침이 동시에 벌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큰 문제이다. 중국이 양동작전으로 북한을 부추길 가능성도 있고 북한이 한반도에 공백이 생긴 것을 기회로 판단해 움직일 우려도 있다. 2027년 무렵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수 있다는 전망이 현실이 된다면, 동북아 핵전쟁으로 확산될 위험이 매우 크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중국으로 하여금 ‘대만을 무력 공격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고 판단하게 해야 한다. 대만해협의 평화를 유지하려는 미국이나 일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등의 다자적인 노력에는 한국도 동참해야 한다. 한국도 이 문제에 대해 좀더 일찍 관심을 가졌어야 하는데, 2021년 문재인-바이든 정상회담에서 처음으로 대만 문제를 언급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럽다. 대만 해협의 동향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올바른 상황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관련국들과 대화와 소통을 계속해야 한다. 다만 우리가 한중 양자 차원에서 직접 나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IPEF에 창립 멤버로 가입한 데 이어 한·미·일·대만의 ‘칩4 동맹’ 참여 여부가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칩4 동맹은 미국은 원하겠지만 우리는 아니라고 본다. 한국이 반도체의 60%를 중국에 팔고 중국에서 공장도 운영한다. 물론 첨단 반도체 기술과 장비 부품은 미국이 가지고 있고, 한미간 반도체 협력은 필요하다.. 그런데 대만과 일본을 함께 ‘칩 4’로 묶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대만은 한국과 반도체 경쟁 관계이고, 대만이 들어오면 중국을 과도하게 자극하게 된다. 한국이 미국에 이런 얘기를 해야 한다. 한미동맹 차원에서 협력하는 것은 중국이 뭐라 하기 어렵다. 하지만 대만까지 함께 반도체 동맹으로 묶는 것은 우리한테 이익은 별로 없고 손해만 크다. 이런 문제에서는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협력할 테니 미국이 이런 식으로 하면 안된다고 설득해야 한다. 우리가 경제 안보를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대비가 안되어 있다. 중국의 요소수 수출 중단으로도 나라가 들썩였는데, 우리가 중국에 크게 의존하는 품목이 희토류와 자원 등 1850여개에 달하는 현실을 생각해야 한다. 우선 그런 점에 착실히 대비하면서, 신중하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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