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지코지의 유령 하우스.. 관광지 한복판 폐허 건물에 몸살 앓는 제주
'천연기념물' 지정 관광지도 밀려온 해양쓰레기로 골치
"인허가 나면 철거 쉽지 않아.. 사전 인허가 관리 철처히 해야"
“제주도에서 손꼽히는 관광지인 섭지코지에 웬 ‘귀신의 집’이 있나 했어요. 흉물스럽다는 생각을 넘어 기괴하다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지난 16일 찾은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의 섭지코지는 유명 드라마 ‘올인’의 촬영지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과거 순백색 교회 모양의 건물은 온 데 간 데 없고 세월의 풍파를 맞고 페인트가 벗겨진 과자 모양의 건물이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매표소로 보이는 건물 안과 밖에는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있었고, 요금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돼 있었다. 건물 입구에는 ‘출입 통제’라고 적힌 노란색 띠가 거미줄처럼 처져 있었다.
섭지코지는 과거 ‘올인 하우스’와 기암괴석들의 아름다운 조화를 자랑하며 ‘전국구 관광지’라는 명성을 떨쳤다. 2014년 11월 리모델링을 하면서 동화에나 나올 법한 과자집 외형을 갖추고 이름도 ‘코지 하우스’로 바뀌었다. 그러나 점차 관광 수익이 줄어들자 소유주들이 해당 건물 운영을 중단하고 방치해, 지금은 귀신의 집처럼 흉물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 가족들과 함께 휴가차 섭지코지를 찾은 관광객 정모(34)씨는 “예전에 아름다웠던 섭지코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다시 찾았는데, 폐허가 된 건물을 보고 경악했다”며 “아름다운 섭지코지의 풍경을 해치는 건물을 지자체가 방치하고 있는 게 놀랍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에서도 문제는 알고 있지만, 건물의 소유주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철거는 못하고 있다. 섭지코지 부지를 관리하는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리의 한 관계자는 “정확한 시점은 모르지만, 방치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며 “마을 측이 해당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소유주 3명을 상대로 건물을 철거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지만, 소유주들은 소유권을 포기하지도 않고 마을 측의 연락을 피해 잠적했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이 수억원대의 철거 비용을 감당할 수도 없고,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도 않아 마음대로 철거를 하지 못한다”며 “강제 집행도 되지 않아 마을 측은 계속 민원 제기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유주들이 리모델링을 하거나 철거 비용을 일부 부담을 하길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제주도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하지만 섭지코지의 ‘코지 하우스’처럼 곳곳에 방치된 시설이 흉물처럼 남아 있어 관광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코로나 기간 관광객이 줄자 문을 닫은 관광시설이나 무리하게 건설을 추진하다가 공사가 멈춘 펜션 등이다.
제주시 한경면의 수월봉은 대규모 화산쇄설층(화산 폭발에 의해 발출될 크고 작은 암편)이 조성돼 천연기념물 제513호로 지정됐지만, 지금은 쓰레기만 잔뜩 쌓여 있다. 수월봉 해안절벽 하단부 동굴 입구는 해양쓰레기로 가득했고, 출입 통제를 위해 설치한 나무막대와 밧줄 등도 파손돼 있었다. 수월봉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라고 말해도 아무도 안 믿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제주 금능해수욕장 인근 캠핑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캠핑이 금지된 곳에 텐트들이 방치돼 있었고, 근처에는 소각한 흔적도 발견됐다. 초가집 등 300개가 넘는 가옥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민속문화재 188호로 지정된 제주성읍민속마을에도 방치된 빈집들이 널려있었고, ‘진입 금지’ 푯말도 다수 발견됐다. 성읍민속마을을 방문한 박모(53)씨는 “교육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관광지가 방치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며 “최근 정비를 했다고는 하지만, ‘마을’이라는 이름에 맞게 조경이나 시설 관리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귀포시 상예동의 ‘에어레스트시티 곶자왈 빌리지’는 공사가 중단되면서 버려진 도시 같은 외양을 보여준다. 에어레스트시티는 서귀포시 예래동 74만4205㎡(약 22만5122평) 부지에 건립될 예정이었던 관광단지지만 법원에서 사업에 제동을 건 뒤 방치되고 있다. 지난 2016년 10월 완공 예정이었던 서귀포시 색달동의 제주 카나스 호텔이나 제주시 애월읍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아일랜드 호텔 앤 리조트도 현재 폐가의 모습으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제주도 측은 수많은 관광지를 관리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수월봉의 경우 최근 장마로 관리가 쉽지 않았다. 장마가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관리에 들어갈 것”이라며 “다른 관광지들도 정기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지만, 모든 관광지를 세심히 살펴보기에는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폐건물이나 방치된 관광시설에 대해서는 “해당 건물들이 개인 소유물이다 보니 도에서 쉽게 관리를 할 수가 없다”며 “도에서는 철거 비용을 지원해주겠다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비용이 부담된다는 이유로 철거를 원치 않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계희 경희대 관광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인허가 관리에 대한 문제가 많다. 한 번 건물을 짓고 나면 소유주에게 권한이 있기 때문에 시청이나 구청에서 방치된 건물을 철거하기가 어렵다”며 “개인사업자가 마음대로 관광지에 건축물을 짓지 못하도록 사업계획서를 철저히 검토하고, 관리 주체를 명시하거나 계약 위반시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 사전에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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