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땅속에 숨겨진 박물관

입력 2022. 7. 27. 05:10 수정 2022. 8. 2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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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 미륵사지석탑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절반 정도 손상된 상태로 콘크리트가 덧발라진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 붕괴 상태를 조사하고, 5년 만에 콘크리트를 발라 급하게 보수했다.

미륵사지 발굴조사와 석탑 복원공사에 더해 국립익산박물관 건립이 추진됐고 2020년 개관했다.

미륵사지에서 발굴한 유물만 아니라 익산 왕궁리 유적과 쌍릉에서 발굴한 유물까지 소장·전시하는 익산지역 대표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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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이 튀지 않게 완만한 경사로를 내려가면서 진입하도록 설계된 국립익산박물관 입구.

전북 익산 미륵사지석탑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절반 정도 손상된 상태로 콘크리트가 덧발라진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 붕괴 상태를 조사하고, 5년 만에 콘크리트를 발라 급하게 보수했다. 이를 두고 추가 붕괴를 멈추게 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콘크리트 화학성분이 탑을 훼손시켰고 기존 석재 위치가 바뀌었다며 부정적으로 여기는 전문가도 많다.

백제 문화가 얼마나 융성했는지를 보여주는 미륵사지는 1980년부터 약 15년간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유물 2만여점이 출토되고 넓은 절터에 자리 잡고 있던 건축물의 초석이 드러났다. 삼국유사에 창건 설화가 등장할 정도로 미륵사는 백제시대 가장 큰 사찰이었다.

1998년 석탑의 해체·수리가 결정되면서부터 20년간 긴 복원공사가 시작된다. 석탑에 커다란 가설 건축물이 씌워지고 콘크리트를 제거하는 것에만 수년이 걸렸다. 2019년 뉴스에서 일제의 치욕을 벗었다며 복원공사 완료를 널리 알렸다. 원래 모습처럼 9층이 아닌 오래전 무너진 상태였던 6층으로 복원했다. 기단부에서 사리장엄구가 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고 곧 보물로 지정됐다. 거대한 석탑에 봉안됐기 때문에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다.

미륵사지 발굴조사와 석탑 복원공사에 더해 국립익산박물관 건립이 추진됐고 2020년 개관했다. 미륵사지에서 발굴한 유물만 아니라 익산 왕궁리 유적과 쌍릉에서 발굴한 유물까지 소장·전시하는 익산지역 대표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했다. 박물관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존재감이 튀지 않게 배치됐다는 점이다. 미륵사지의 원래 배경과 분위기를 존중하겠다는 건축가의 의중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박물관의 형태를 알아차리기 어렵고, 건물이 어디에 있는지 방문객이 모를 정도로 나지막한 언덕처럼 보인다. 입구는 완만한 경사로를 내려가면서 진입하도록 설계됐다. 보이지 않는 박물관을 주요 개념으로 설정한 국립익산박물관은 ㈜유선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의 신수진 건축사가 설계했다. 건물은 미륵사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필요한 높이만큼만 지면 위에 올라가 있다. 주변을 돌아보면 많은 것을 사유하게 된다. 뛰어난 연기로 사랑받지만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려고 한걸음 뒤로 물러선 조연 배우를 닮았다.

하나의 건축물을 완성하려면 건축사의 노력과 함께 그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이를 구현해내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박물관으로서 위용을 드러낸 커다란 건축물보다 자신의 존재를 좀체 드러내지 않는 형태가 마음에 든다. 건축 개념과 그 가치를 알아보고 건물을 올린 사람들의 혜안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이 박물관의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주변에 의미 있는 건축물이 더 많이 들어서리라 기대해본다.


박정연 건축사 (그리드에이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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