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워싱턴에 영원히 남을 한미 젊은이들의 숭고한 희생

조선일보 2022. 7. 27.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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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영웅 고 윌리엄 웨버 대령의 부인 애널리 여사가 지난 22일(현지 시각) 미 워싱턴DC 내셔널 몰 내에 조성된 '추모의 벽'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애널리 여사는 '죽기 전에 추모의 벽 준공이 마무리 된 것을 보고 싶다'는 웨버 대령의 유언에 따라 그의 안장식에 앞서 이 곳을 찾았다. /이민석 특파원

미국 워싱턴DC 한국전 참전 기념 공원에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3만6634명, 카투사 7174명 등 4만3808명의 이름을 새긴 ‘미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 벽’이 만들어졌다. 공원 내 ‘기억의 못’ 둘레에 높이 1m, 길이 130m 화강암 벽을 두르고 여기에 군별, 계급, 알파벳 순으로 전사자 이름을 새겼다. 카투사는 미군에 배속돼 싸운 한국군이다. 이들이 추모의 벽에 포함된 것은 미국 내 참전 기념물 중 미국 국적이 아닌 전사자 이름이 새겨지는 첫 사례라고 한다. 그동안 이 공원에는 참전 용사 모습을 형상화한 ‘19인 용사상’이 있었을 뿐 전사자 이름은 기록돼 있지 않았다.

추모의 벽 건립은 19인 용사상 모델 중 한 명인 윌리엄 웨버 미 예비역 육군 대령이 주도했다. 6·25전쟁 때 오른팔과 다리를 잃은 그는 “미국 사회에 6·25를 알려야 한다”며 이 일에 전념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건립 부지가 워싱턴 내셔널몰 국립공원 한복판이어서 미 국립공원관리청이 신규 시설물 설치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의회를 끈질기게 설득해 2016년 10월 미 상원에서 ‘추모의 벽 건립법’을 통과시켰다. 벽에 새길 카투사 전사자 명단을 확보해 달라고 한국 정부를 다그친 사람도 웨버 대령이었다. 이후 예산 확보가 문제였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보훈처가 50억원을 내기로 했지만 문재인 정부로 바뀌자 위기가 찾아왔다. 문 정부가 ‘적폐’로 꼽은 전 보훈처장이 추진했다는 이유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사업 취소를 주장했고 보훈처는 사업에 대한 자체 감사까지 벌였다.

이런 정치 공세로 한미 동맹이 흔들려서야 되겠느냐는 비판이 커지자 2019년에 워싱턴 추모의 벽 건립 재추진이 결정됐다. 사업비 270억원은 보훈처 예산 외에도 한국전참전용사추모재단, 재향군인회, SK그룹, 풍산그룹 등 민간 단체와 기업이 성금을 보태 마련했다. 작년 5월 착공했고, 1년 2개월 만인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일이자 우리 정부에서 제정한 ‘유엔군 참전의 날’에 맞춰 준공식을 갖게 됐다.

추모의 벽은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여기 이름이 새겨진 미군 전사자 중 절반 이상이 이등병과 일등병이다. 미국 젊은이들이 낯선 나라에 와서 피를 뿌리고 목숨을 바쳐 오늘날 위대한 대한민국의 초석을 놓았다. 그들과 같이 싸운 한국 젊은이는 미국 수도 한복판에 이름을 남겼다. 그 숭고한 젊음들 덕분에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계 최빈국은 이제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 군사 강국으로 성장했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나라가 아닌 서로 돕는 관계가 됐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를 기억하지 않는 나라는 존립할 수 없다. 정권에 따라 동맹과 호국 영령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일도 다시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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