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 열면 인형극 무대.. 에든버러 초청받았어요"
“코로나 사태로 일터를 잃은 창작자들이 모여 연극을 지속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다 나온 인형극이에요. 그걸 에든버러 축제가 초청하다니, 놀랐고 기뻤어요. 인생 참 아슬아슬하죠?”
조예은(30)이 쓰고 연출한 트렁크씨어터프로젝트의 연극 ‘메리, 크리스, 마쓰’가 영국 에든버러 축제 프린지 부문에 초청됐다. 오는 8월 3~28일 현지 공연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다. 25일 서울 마포에서 만난 조씨는 “기존 배우 한 명이 빠지는 바람에 이번엔 제가 출연까지 한다. 연기는 10년 만인데 그동안 연출가로서 원하는 장면을 뽑아내려고 배우들을 얼마나 몰아붙였는지 깨닫게 됐다”며 웃었다.
‘메리, 크리스, 마쓰’는 각자의 궤도를 돌던 우주비행사 메리와 크리스가 어떤 사고로 화성(마쓰)으로 가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이야기다. 우주복을 입어 대화도 제대로 못하지만 다른 생명체에게 위로받고 헤어진다. “2020년 봄 서울문화재단에서 ‘예술인이 재난을 대하는 가지가지 비법’이라는 온라인 콘텐츠 지원 사업을 했어요. 당시 일자리를 잃은 저와 연기·조명·미술·영상·음향 분야 창작자들이 힘을 합쳐 ‘메리, 크리스, 마쓰’를 만들었는데, ‘고립감이 큰 시기에 위로를 받았다’는 평을 받았어요.”
트렁크씨어터프로젝트는 트렁크(가방)에 담길 수 있는 콤팩트한 무대를 지향하며 언제 어디서든 꺼내 볼 수 있는 기동성 있는 연극에 도전한다. ‘메리, 크리스, 마쓰’도 줄거리는 SF영화 같지만 무대장치는 장갑 인형과 우주선 등이 들어 있는 007 가방과 OHP(오버헤드프로젝터)가 전부다. 이날 007 가방을 들고나온 조씨는 “우리에게는 이 트렁크가 무대”라며 “15분 안에 설치하고 15분 안에 철거도 가능하다”고 했다. 우주선은 콜라병과 컴퓨터 부품, 버려진 호스 등 폐품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2021년 초연은 소극장 객석이 6회 매진될 만큼 인기를 모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의 배우 김신록은 “코로나 속 고립감을 어려운 말들로 풀어낸 공연이 많아 지쳤는데 ‘메리, 크리스, 마쓰’는 쉽고 재미있는 콘셉트라 좋았다”는 관극기를 남겼다. “단순해 보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 말씀이 저희에게 큰 격려가 됐어요. 이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된 것은 창고를 정리하다 발견한 어릴 적 인형들 덕분이에요. 인형 하나로 별별 이야기를 다 짓던 그때처럼 소꿉놀이 같은 공연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영국 에든버러 축제는 프랑스 아비뇽 축제와 함께 세계 최고의 공연예술제다. 75주년인 올해는 트렁크씨어터프로젝트를 포함해 한국 공연팀 9개가 초청됐다. “1인 3역에 서류 작업까지 하느라 사실 좀 버거워요. 그래도 이 트렁크를 보면서 ‘힘내서 8월의 크리스마스를 즐기자!’ 각오를 다집니다. 미니어처 공연이라 장소 제약은 없어요. 극장 하나를 사막으로 만드는 건 되게 어려운 일이지만 이 트렁크를 모래로 채우는 건 어렵지 않거든요. 다음 소재는 식물이나 파도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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