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밑은 독립, 행안부 밑은 종속?.. '명분' 없는 경찰과 '선' 넘은 정부 [뉴스+]

김건호 2022. 7. 26.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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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 강력 경고에도 "전국 경찰회의 열자" 반발 확대
감독기구 사라졌는데..경찰국 신설은 '독립성 훼손' 주장
선 넘은 이상민 장관 '쿠데타' 발언, 경찰 반발에 기름 부어

“중대한 국가 기강 문란이 될 수 있다.”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과 관련해 독립성을 훼손한다며 들고 일어선 일선 경찰에 윤석열 대통령이 엄중 경고를 내렸다. 하지만 일선 경찰들은 예정됐던 경감·경위급 현장팀장회의를 14만 전체 경찰회의로 확대하면서 사태를 확전하고 있다. 청와대 산하 민정수석실의 지휘를 받던 경찰이 행안부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것과 관련해 ‘명분이 없다’는 의견과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12·12사태 발언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경찰국 사태를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대통령까지 나서 질책, 굽히지 않는 경찰

윤 대통령은 26일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에 대한 경찰 내부 집단적 반발 움직임에 대해 “중대한 국가 기강 문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에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강경 기조가 앞서 얘기했던 필요한 조치에 부합하느냐”는 질문에 “국방과 치안이라고 하는 건 국가의 기본 사무고, 최종적인 지휘감독자는 대통령”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윤 대통령은 “오늘 경찰국 설치안이 국무회의 심의를 거칠 텐데, 이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지만 국가의 기본적인 질서나 기강이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윤 대통령이 경찰을 향해 국기 문란이라며 경고장을 날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경찰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 당시에서도 “국기 문란”이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경찰이 행안부로 자체적으로 추천한 인사를 그냥 고지를 해버린 데 대해 “어떻게 보면 국기 문란일 수도 있다. 인사권자는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2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태극기와 경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인사권자인 자신이 재가하지 않은 인사안을 경찰이 공개한 데 대해 질책을 한 것이다. 이같은 대통령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은 정부와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지난 23일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에 이어 30일 개최 예정이었던 경감·경위급 전국팀장회의는 전체 경찰회의로 확대됐다.

처음 현장 팀장회의를 제안한 서울 광진경찰서 김성종 경감은 26일 경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당초 팀장회의를 경찰 인재개발원에서 개최하려 했으나 현장 동료들의 뜨거운 요청들로 전국 14만 전체 경찰회의로 변경하게 됐다”고 공지했다.

이어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를 향해 “30일 오후 2시 14만 전국 경찰은 지난주 개최한 총경 회의와 동일한 주제로 회의를 연다”며 “총경들에게 하셨던 불법적인 해산명령을 저희 14만 전체 경찰에도 똑같이 하실 건지 똑똑히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회의는 유튜브 생방송으로도 공개하겠다고 예고했다.

앞서 경찰청은 전국총경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울산중부서장에 대해 대기발령 했고 현장 참석자 56명에 대해 감찰에 착수한 상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경찰국 신설 관련 전국서장회의에 대한 행안부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명분 없는 경찰과 선 넘은 정부…피해는 국민에게

현재 경찰과 정부가 행안부 경찰국 설치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경찰은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이 경찰 독립 훼손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정부는 정부대로 선을 넘은 강경 대응으로 일선 경찰들의 반감을 부르고 있다.

우선 행안부 산하 경찰국이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경찰의 지적은 명분이 크지 않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검찰은 법무부 검찰국을 통해 견제를 받고 있고, 국세청 또한 기획재정부 세제실을 통해 감독하고 있다. 지금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지시를 받은 조직이었던 경찰이 독립성 훼손을 주장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있다. 민정수석의 지시를 받으면서도 경찰은 단 한 번도 독립 훼손을 주장한 바 없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민정수석실을 없애자 경찰을 통제할 기구가 없어졌다. 반면에 검찰의 수사지휘권 박탈로 경찰은 헌정사상 어느 때보다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됐다. 결국 정부는 경찰을 통제할 경찰국 신설 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다수 선진국도 이같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경우 내무부가 경찰 인사와 예산, 치안정책을 관장하며 경찰권을 견제하고 있다. 사정기관이 가지는 막대한 권한 만큼 그 사용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시스
물론 정부의 실책도 이번 사태 확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전국 총경 회의에 대해 “거의 하나회의 12·12 쿠데타에 준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진행된 총경 회의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최규하 대통령 대행의 승인 없이 일으킨 신군부의 불법 쿠데타에 빗댄 것이다. 결국 이는 전국 경찰들의 반감을 가져왔다.

결국 이번 사태는 명분이 약한 경찰의 이기주의와 선을 넘은 정부의 강경 대응이 만들어낸 논란으로 볼 수 있다. 국민의힘 소속의 한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은 “사실 경찰로서는 명분이 없고, 이 장관의 발언은 부적절했다고 본다”며 “대치국면을 풀기 위해서는 대화가 우선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행안부 경찰국 신설안에 대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계획대로 밀어붙이고 있어 향후 경찰국 신설 후에도 갈등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날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을 위한 ‘행정안전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일부개정령안’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개정령은 내달 2일부터 공포·시행된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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