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북 뺨치는 보험사기" 무릎 아파 5천회 통원치료..오전은 헬스장서 스피닝

전종헌 2022. 7. 26.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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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 보험사기
1924년 4월 2일 매일신보 실려
'가평계곡 살인사건' 등 수법 대담해져
전업주부, 의료인, 군인도 보험사기 가담
[사진 제공 = 금융감독원]
[사진 제공 = 금융감독원]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보험 가입률은 10가구당 9가구꼴입니다. 대부분 보험 하나쯤은 가입하고 있는 셈이죠. 가입한 사람이 많다보니 사고도 계속 터지고 있습니다. 보험사가 보험금을 약관대로 지급하지 않는 보험사기, 반대로 가입자가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을 편취할 목적으로 하는 보험사기가 그것입니다.

하지만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제2조에 따르면 보험사기 행위란 보험사고의 발생, 원인 또는 내용에 관해 보험자(보험사)를 기망해 보험금을 청구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가입자 입장에서 보험사기를 의미하는 셈이죠.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나라에서 최초 발생한 보험사기는 1924년 4월 2일자 매일신보에 실렸습니다. 당시 매일신보는 '보험외교원(보험설계사)의 협잡'이라는 기사로 우리나라 최초의 보험사기 사건을 소개했습니다. 보험사기가 비단 20세기나 21세기에 국한된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제는 수법도 점점 대담해지고 무서워지고 있습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가평계곡 살인사건'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제는 보험사기에 회사원, 전업주부, 무직·일용직, 의료인, 교사, 군인 심지어 보험업 종사자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고 가담하고 있습니다.

선량한 보험가입자를 보호하고 보험사기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보험사기 사건을 소개해 봅니다.

통원치료 보험사기 10년간 3만5832회…기네스북 수준

전직 보험설계사(이하 설계사) 출신 A씨 등 10명은 외래 통원치료만으로도 회당 5만원 이상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보험사기에 이용했습니다.

통원이 용이한 병의원, 한의원 등을 골라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특별한 진단검사 없이 문진만으로 통원치료가 가능한 병명으로 과다·중복 통원하는 방법을 쓴 것이죠. 이들은 인당 수천회 이상 통원해 보험금을 편취했습니다.

이중 일부 병의원은 환자의 요청에 따라 필요한 진단명으로 진료내역서 등을 허위 발행하는 등 보험금 편취를 방조했습니다.

이들의 범행은 거슬러 2007년부터 시작됐습니다. 통원을 보장하는 보험 상품을 악용, 병의원, 한의원을 번갈아 가며 하루 3∼5회씩 통원해 10년간 무려 총 3만5832회 통원치료를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보험사가 지급한 보험금은 약 16억5000만원에 이릅니다.

이들의 범행 수법은 단순했습니다. 내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한의원 등을 돌면서 하루 3∼5회의 진료를 받았고, 자주 병의원을 내원하는 환자들을 보며 의사가 상급병원 진찰을 권유하기도 했으나 의사의 의견은 무시한 채 여러 병원을 다니며 방문 횟수만 늘리기에 급급했습니다.

침을 맞으러 왔다며 방문한 한의원에서는 침을 맞기 직전 침이 무섭다면서 진료를 거부했습니다. 물리치료 접수만 하고 급한 일이 있다며 받지 않기도 했습니다. 처방된 약은 부작용이 있다며 조제하지도 않았습니다.

실제 이들이 방문한 병의원 간의 시간 차이는 짧게는 5분에서 길어도 20분에 불과했죠.

무릎이 아프다며 5000회 이상 통원치료를 한 B씨는 오전에 헬스장에서 스피닝 등 격렬한 운동을 한 후 오후에는 병원 여러 곳을 순회한 후 귀가했습니다.

이들은 오전에 각자 통원치료 하고 점심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고 오후 진료가 시작되면 또 각자 흩어져 근처 병원을 돌며 통원치료를 했습니다. 이들에게 병의원은 치료를 받는 곳이 아닌 돈을 버는 직장이 된 셈이죠.

꼬리가 길면 밟히는 셈.

이들의 보험사기 행위는 지나치게 통원횟수가 과다한 것을 의심한 보험사의 추적 끝에 발각됐습니다.

게다가 통원치료 보험사기로 적발된 사람은 이들 10명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범행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준 의사, 한의사 등 6명도 수사대상에 올랐습니다.

이들은 모두 재판에 넘겨졌고 A씨 등 10명은 모두 징역형을 받았습니다.

의사, 한의사 등 6명은 모두 보험사기 방조 혐의로 입건 수사를 받았으나, 이중 죄질이 무거운 1명은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다른 5명은 혐의는 인정되나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습니다.

[사진 제공 = 금융감독원]
보험사기, 보험제도 존립 기반 위협

보험사기는 불확실한 위험에 대비해 마련된 보험 본래의 기능을 퇴색시키고 보험의 도박화·사행화로 보험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킵니다.

보험사기로 인한 보험금 지급 증가는 보험료를 부당하게 인상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선의의 보험계약자들이 보험가입을 회피하게 만들어 결국 보험산업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생명존중 가치관도 파괴합니다. 소액에서 시작된 보험사기가 범죄의 지능성, 조직성, 입증의 곤란성 등으로 인해 적발되지 못한 경우 더 큰 보험사기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보험금을 목적으로 한 살인, 방화 등 반인륜적 범죄로 건전한 윤리의식과 생명존중의 가치관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모방범죄나 동조행위도 촉발할 수 있습니다. 보험사기로 보험금을 수령하게 되면 주위 사람은 그것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동조하거나 일부 이익을 공유함으로써 방조는 경향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보험사기가 만연할 경우 보험사기 수법을 손쉽게 터득할 수 있어 선량한 보험계약자까지 이런 사회 분위기에 동조하거나 유사행위를 할 가능성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의료쇼핑 환자, 입·통원치료 이력 확인할 수 있게"

보험사기는 보험금을 청구해야 조사가 착수되기 때문에 증거확보가 어렵습니다. 보험사고 발생 후 장기간 경과 후 보험금을 청구하는 경우가 많아 보험사기혐의를 입증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특정한 질병으로 하루에 수차례 통원치료를 하는 경우 환자가 직접 병원에 고지하지 않으면 의료기관에서는 해당 사실을 확인하지 못합니다.

이런 점을 악용하고 보험사기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의료쇼핑 환자의 과거 입·통원치료 이력을 병의원이 확인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를 통해 무분별한 중복진료를 사전 방지해 건강보험 및 민영보험의 보험금 누수를 방지하고 공·민영보험의 재정 건전성 강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종헌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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