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형윤 선생 '학현학술상' 확대에 "생각 못했는데 고맙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너무 고맙다는 생각뿐이에요.”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서울사회경제연구소 명예이사장)는 자신의 업적을 기려서 만든 ‘학현학술상’의 확대 개편과 <한겨레>(대표이사 김현대)의 공동주관에 대해 깊은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학현(學峴)은 ‘배움의 언덕’이라는 뜻으로 선생의 호이다. 실제로 선생은 진보 경제학계의 큰언덕인 ‘학현학파’의 창시자이고, 우리 사회와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온 ‘행동하는 지성’으로서 오랫동안 존경받아왔다. 그런만큼 학술상 확대를 당연한 일로 여길 수 있는데도 끝까지 겸손함을 보이는 선생의 모습에서는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지난 22일 서울 사직동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변 선생을 만나 학현학술상의 개편에 대한 소감을 들었다. 1927년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난 학현 선생은 올해로 95살의 고령이다. 요즘도 주2회 서울 잠원동 자택에서 서울 사직로 연구소까지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다. 다만 보청기를 낀 채 짧은 대화만 가능해 강철규 학현학술상위원회 위원장이 배석해 도움을 줬다.
2011년 선생 호 딴 ‘학현학술상’ 제정
진보 경제학계 ‘거목’ 업적 기려 개편
내년부터 상금 3천만원으로 6배 늘려
대상도 경제학·한국경제 저술로 넓혀
‘한겨레’·서경연·경제발전학회 ‘공동’
학현학술상위원회는 26일 변 선생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고 한국 경제학의 발전을 위해 지난 2011년 제정한 ‘학현학술상’을 확대 개편해서 내년 5월 시상부터 상금을 500만원에서 3천만원으로 대폭 늘린다고 발표했다. 심사 대상도 한국경제발전학회의 자매지인 <경제발전연구>에 게재된 논문에서 최근 3년간 국내외 학회지나 단행본에 실린 경제학과 한국경제 관련 학술 저작물로 넓힌다. 주관기관은 기존의 서울사회경제연구소(이사장 강철규)와 한국경제발전학회(회장 강신욱)에 <한겨레>를 더해 세 곳이 함께하기로 했다.
강철규 위원장은 “학현학술상이 그동안 경제발전 이론·실증·정책 연구 분야에서 우수한 논문이 배출되는 데 크게 이바지했지만 학현 선생의 학문적·실천적 업적과 정신을 한국사회와 경제학계 전반에 보다 광범위하게 확산시키기 위해 상의 권위와 위상을 높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번 개편에는 선생의 제자인 의류전문수출기업인 한세실업 김동녕 회장의 후원이 큰 도움이 됐다.
근대 경제학 기초 확립…한국경제론 연구
약자·분배·공정 중시 ‘학현학파’ 창시
경제·사회 민주화 헌신 ‘행동하는 지성’
‘한겨레’ 창간 주도…새벽마다 배달 기다려
학현 선생은 한국 근대 경제학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서울대 상대의 전신인 경성경제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28살인 1955년 모교의 교수가 되었다. 근대 경제학 도입 초기에 통계학, 경제수학, 계량경제학 등을 가르치고 교과서를 펴냈다. 또 한국경제론, 경제발전론 분야에서 선구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학현 선생은 영국의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이 남긴 “경제학도는 냉철한 머리와 따듯한 가슴을 가져야 한다”는 경구를 항상 가슴에 새기고, 인간존중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경제학을 주창했다. 경제발전의 이면에 가려진 중소기업과 노동자의 희생을 조명하며 소득분배를 강조하고, 대기업의 경제력 독점을 비판했다. 선생은 1992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37년간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수차례 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 공직 제의를 받았으나 끝내 사양했다. 그 이유에 대해 선생은 “처음 강단에 설 때부터 교수로 정년 퇴임하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학현 선생은 ‘지행합일’의 삶을 실천해왔다. 4·19혁명 때는 4·25 교수 데모에 참여해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1980년에는 서울대교수협의회 회장으로 대학과 정치 민주화에 앞장서다 강단에서 쫓겨나 해직교수모임 대표를 맡기도 했다. 1989년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학현 선생은 해직 시절인 1982년 학현연구실을 열어 후학들과 경제민주화를 위한 연구를 했다. 그때 운영위원장을 맡았던 강 위원장은 “연구실 안에 한국자본주의·경제발전론·경제사·정치경제학 등 4개 분야가 있었고, 훗날 이를 기반으로 경제발전학회와 사회경제학회가 만들어졌다”면서 “사실상 선생이 한국 경제학계의 모태 구실을 한 셈”이라고 말했다.
학현연구실은 1993년 서울사회경제연구소로 확대 개편됐다. 회원 수가 200명에 가까운 ‘서경연’은 경제학 분야에서 순수 민간학술연구소로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연구소는 분배와 공정을 중시하는 선생의 경제철학을 따르는 학자들을 일컫는 ‘학현학파’의 구심점이다. 강 위원장은 “학현학파는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는 인간존중의 경제, 공정하고 민주적이며 활력있는 경제, 미래를 향한 혁신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제의 실현 방안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학현 선생은 “(학현학파라는 말은) 과한 얘기다. 나 스스로 그런 말을 한 적은 없고, 사람들이 이름을 붙였을 뿐”이라고 역시나 겸손해했다.
학현학파 출신들은 여러 정부에 참여해 중요한 활동을 했다. 문재인 정부를 보면,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연이어 맡은 이근 서울대 석좌교수와 이제민 연세대 명예교수,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홍장표 부경대 교수와 경제보좌관을 지낸 박복영 경희대 교수, 강신욱 전 통계청장, 금감원 부원장을 지낸 원승연 명지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노무현 정부 때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과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도 학현학파 출신이다. 주상영 한은 금통위원과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연구소 회원이다.
학현 선생은 윤석열 정부가 친기업을 내걸고 재벌·부자 감세와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내 생각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선생의 경제철학인 인간존중의 정신은 보이지 않고 사회적 약자들의 자유를 늘이기 위한 방안도 없다”면서 “한국 사회가 산재율, 자살률이 높고 잠재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비전과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현 선생은 국민주 신문인 <한겨레>의 창간에도 주도적으로 나섰다. 1987년 창간 발기인을 맡았고, 이후 창간위원과 비상임 이사, 한겨레통일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선생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국민주 신문인 한겨레의 창간은 기적”이라면서 “처음 창간기금을 냈더니 백낙청 서울대 교수가 다른 사람들이 많이 내도록 하려면 더 내야 한다고 해서 돈을 꾸어서 100만원을 냈다”며 웃었다. 선생은 지금도 매일 새벽 3시께 자택으로 배달되는 신문을 빠짐없이 읽는다고 했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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