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 안 찍고 세수 줄이고 공약 다 지키겠다는 정부..믿을 수 없다"
'3고시대' 재정역할 중요한 시기
"당장 세수 줄어..감세 설득력 떨어져"
2008년 MB때도 법인세율 인하
"기업은 투자·고용 늘리지 않았다"
법인세 인하가 글로벌 스탠다드?
"코로나 시국, 전세계 증세가 트렌드
“법인세를 인하하면 기업의 투자 여력이 높아져서 투자·고용이 증가해 경제활력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법인세 인하 방침을 발표한 기획재정부가 매일 쏟아내는 자료에 반복적으로 들어가는 메시지다. 정부는 법인세 인하 혜택이 대기업뿐 아니라 주주와 소비자, 심지어 노동자에게 돌아간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과연 법인세 인하는 국민 모두를 위한 길일까?
26일 <한겨레>와 만난 재정학자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감세의 기대효과는 얻지 못한 채 세수만 줄어드는 “정부의 자해행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 교수는 “어디에서 어느 시점과 상황에 법인세를 낮췄는지, 어떤 데이터와 모형으로 연구했는지에 따라 결론이 다양한데, 정부는 원하는 결괏값이 나온 연구만 내밀며 ‘단일한 진리’라고 말하고 있다”면서 정부 주장을 반박했다. “50년 이상 장기적 관점에서 법인세율이 낮은 나라가 높은 나라보다 경제성장률이 높다는 점에는 경제학자 대부분이 동의한다. 하지만 ‘왜 지금 법인세를 내려야 하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지금 감세하면 투자는 언제 늘어날지 모르는데 내년 세수는 당장 줄어든다. 그것도 많이.” 재정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고물가·고환율·고금리 시기에 감세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국제 평균보다 법인세를 많이 걷고 있다는 정부 주장에도 우 교수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우리나라 법인세율이 국제적으로 높은 편에 속하기는 하지만, 법인의 소득 비중이 높은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 교수는 “한 나라의 조세구조는 소득이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나라는 법인 형태의 경제주체가 돈을 많이 버는 데다 배당도 적기 때문에 법인세수가 많은 것”이라며 “한 나라가 세수를 어떻게 조달할지는 역사적 맥락과 소득구조, 문화 속에서 결정되는데, 전체 세제 가운데 한 장면만 뜯어서 이게 국제 평균과 다르니 고치자고 말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법인세 인하 혜택은 주주와 소비자, 노동자에게 귀착되기에 ‘부자 감세’가 아니라는 정부의 주장에도 우 교수는 반박했다. “정부 주장이 맞다 해도 대기업 주식을 가진 사람, 대기업에 근무하는 사람이 득을 본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있고 자산이 있는 경제주체가 주요 수혜계층이다. 이게 부자 감세가 아니라고 하는 건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이번 법인세 인하 혜택의 약 63%는 대기업에 돌아간다.
가장 큰 문제는 ‘세수’다. 정부는 이번 세제 개편으로 5년간 누적 60조원의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지만 세수 감소에 대한 대안이 없다. 보통 주요국에서는 ‘세율 인하’를 추진할 경우 세액공제 축소와 같은 세수 유지 방안을 함께 제시하거나 ‘세율 인하가 세수 증대를 부른다’는 논리를 펴곤 하는데, 윤석열 정부는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를 확대했고 세수 회복 시나리오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우 교수는 “일부 경제학자들은 ‘래퍼 곡선’이라는 개념으로 일정 수준을 넘는 구간에선 세율을 내려도 세수가 유지되거나 늘어난다고 말한다. 이게 미국 레이건 정부 감세정책의 이론적 근거였다. 우리 정부는 이런 논리조차 없이 그냥 세수를 줄이겠다고 말한다”며 “정부는 이 세수 감소가 언제 회복될 것인지, 앞으로 생겨날 지출의 자연증가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답해야 한다. 고령화로 자연증가하는 지출은 대부분 법에서 정하는 의무적인 복지 지출인데, 세수가 없으면 빚이라도 내야한다. 국채도 안 찍는다, 세수는 줄이겠다, (209조원 규모 재정지출) 공약은 다 지키겠다는 정부의 말은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미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대규모의 감세를 추진한 경험이 있다. 우 교수는 “2008년 법인세 인하로 법인세수만 5년간 25조원 줄었는데, 기업은 투자·고용을 늘리지 않았다. 그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2014년 박근혜 정부는 임금인상·배당·투자를 촉진하는 ‘3대 패키지’ 세법 개정안도 냈다”며 이명박 정부의 감세를 ‘실패’로 규정했다. 당시 정책 실패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발 재정위기가 연달아 터지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현금성 자산을 쟁여두는 기업 행태가 퍼진 탓인데, 불확실성이 극에 달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실패의 경험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게 우 교수 진단이다.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하며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우 교수는 “지난 반세기의 세계적 추세를 본다면 법인세 인하가 맞지만, 최근에는 코로나19 이후 타격을 입은 재정을 벌충하기 위한 증세가 트렌드”라며 “미국 바이든 정부도 법인세 28%를 공약했고 그게 안 된다면 벼락 횡재한 정유사에라도 과세하겠다고 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법인세 인상 논의가 한창”이라고 설명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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