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 전 법제처장 "경찰국 신설은 법치주의 일방통행이자, 역사의 퇴행"

이혜리 기자 2022. 7. 2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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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연 전 법제처장. 강윤중 기자

“지금 경찰국 신설을 둘러싸고 벌어진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법치주의의 일방통행’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법치주의는 권력을 쥔 쪽에서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정책을 집행하고 준법을 해야만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이죠. 국민에게, 약자에게만 준법을 강요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법치주의가 아닙니다. 우리 헌정사를 보면 법치주의의 일방통행을 강요한 정권은 말로가 안 좋았어요. 법조인으로서 서글픕니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68)은 2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 논란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 전 처장은 1988년 개소한 헌법재판소의 제1호 연구관이다. 변호사로서 제대군인 가산점, 행정수도이전법 등 위헌 결정을 이끌어낸 헌법 전문가이고,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는 법제처장을 지냈다. 2020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여권 쪽과 가깝다. 그런 그가 정부의 경찰국 신설을 ‘법치의 후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행정안전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일부개정령안’을 의결했다. 행안부에 경찰국을 신설하고 경찰국에 필요한 경찰 인력 13명을 증원하는 내용이다. 경찰 내부 반발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추진하는 정책과 조직개편안에 대해 집단 반발하는 것은 중대한 국가의 기강문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처장은 “정부조직법에는 시행령 개정으로 행안부에 경찰국을 신설하고 행안부 장관에게 경찰 통제 권한을 줄 수 있다는 어떠한 규정도 없고, 정부조직법이 그것을 위임한 바도 없다”고 했다. 이번 시행령 개정은 적법절차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행령은 법률에서 위임한 사항에 대해 행정부가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행정부가 마음대로 법률의 의미를 바꿔서는 안 되는데, 정부가 이 원칙을 어겼다는 의미다. 이 전 처장은 “정부의 조직개편안이 헌법과 법률에 어긋나는 것이고, 여기에는 양론이 있을 수 없다”며 “법과대학 초년생한테 물어봐도 명백한 사안”이라고 했다.

이 전 처장은 “설령 대통령이 그렇게(시행령 개정) 하자고 해도 장관이나 법제처장이 안 된다고 직언을 해서 의견수렴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예스맨’만 모아놓은 것 같다”며 “법의 원칙을 허물면서 (경찰국 신설을) 하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지켜온 소신이나 헌법적 가치관으로 볼 때 용납이 안 된다”고 했다.

이 전 처장은 시행령 개정이 내용적으로도 문제라고 했다. 정부조직법상 행안부 장관의 업무 범위에 경찰이 포함되지 않은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는 게 이 처장 설명이다. 군사정권 시절 경찰이 내무부(현 행안부) 소속의 치안본부로 있을 때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등 경찰이 정권을 지키기 위해 법을 어기고 인권을 침해한 사례들이 있다. 이 전 처장은 “정권이 경찰을 수족처럼 부리지 말자는 취지에서 1991년 경찰청이 별도로 만들어지고, 행안부 장관의 업무범위에서 치안을 뺀 것”이라며 “설령 적법절차를 거쳤다고 하더라도 민주화와 헌정사의 퇴행”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법무부 장관이 검찰을 지휘·감독한다는 점을 들며 경찰국 신설을 옹호한다. 이 전 처장은 정부조직법에 법무부 장관이 관장하는 사무로는 검찰이 포함돼있는 반면 행안부 장관이 관장하는 사무에는 치안이나 경찰이 포함돼있지 않다는 점을 짚었다. 이 전 처장은 “(정부조직법에) 경찰의 조직·직무에 대해서는 법률로 따로 정한다고 돼있기 때문에 행안부 장관이 관여할 수 없다”며 “법무부와 (경찰국 문제는) 다르다”고 했다. 검찰청법은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하게 해 지나친 관여를 막는 장치를 두고 있다. 여권은 비대화한 경찰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별도의 대책을 논의할 일이지 갑작스런 시행령 개정으로 해결할 일은 아니라고 이 전 처장은 말했다.

이 전 처장은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지만 지금이라도 공포를 늦추고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이 처장은 “정권교체를 바랐고, (윤 정부가) 잘 나가기를 바랐지만 이건 아니다”라며 “이런 방식은 역사의 퇴행이고, 헌정사에 암울하고 상당히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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