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귀족노조'가 임금 끌어올려..영세기업과 격차 키웠다

김희래,송민근 2022. 7. 26. 17: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성노조에 휘둘리는 대기업
2년새 실질임금 80만원 오를때
중소기업은 9만원 상승 그쳐
기업 대부분 연공서열 호봉제
시간 갈수록 임금 격차 더 커져
원청·하청 같은 시기에 교섭
하는 일에 따라 연봉 정할 필요
직무급제 도입 대안으로 부상

◆ 노동시장 이중구조 ◆

지난 25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작업자들이 용접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 사태는 하청 근로자들의 열악한 처우와 원청의 교섭 의무가 주요 쟁점이었다. 하청지회 노조의 불법 점거 농성을 통해 임금 인상과 고용승계 등 타협점을 가까스로 찾았지만 이는 한국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수십 년간 대기업·공공부문 중심으로 노조가 조직되면서 '귀족 노조'를 둔 기업의 정규직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비정규직 간 근로조건 격차가 커진 점, 연공서열형 호봉제가 견고하게 지속되고 있는 점이 주요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윤석열 정부는 원·하청 간 임금·처우의 이중구조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로 작용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국내 노조 조직률은 14.2%다. 민간 기업 조직률은 11.3%인 반면 공공과 공무원은 각각 69.3%와 88.5%에 달한다. 사업장 규모별로 보면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의 조직률은 49.2%지만 30인 미만 사업장은 0.2%에 불과하다. 대기업과 공공부문 근로자들은 강성 노조를 중심으로 임금을 공격적으로 끌어올린 반면 정작 보호가 필요한 영세 기업들은 노조 자체가 없거나 힘이 미약한 상황이다. 국내 노조 조합원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0.7%(2021년 기준)에 불과했다.

300인 미만 사업장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시간당 평균 임금 1만4899원을 받는 반면 300인 이상 사업장의 정규직 근로자들은 3만2699원을 받아 임금 격차도 확연했다.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얘기다. 또 최근 고용부의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더라도 2020년 1분기 대비 올해 대기업(300인 이상)의 실질임금은 80만원이나 오른 반면 중소기업(300인 미만)의 실질임금은 9만원가량 오르는 데 그쳤다.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근로조건 격차가 큰 상황에서 국내 대다수 기업이 연공서열형 호봉제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300인 이상 기업의 59.1%, 1000인 이상 기업의 69%가 호봉제를 도입하고 있다. 동시에 영세 기업의 60%는 임금체계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지난해 한국경제연구원은 대기업이면서 정규직인 노조 조합원의 근속연수가 13.7년으로 중소기업·비정규직·비조합원(2.3년)의 약 6배라고 분석한 바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 같은 이중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택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공정성 문제가 불거졌고 문 정부 5년간 비정규직 수만 크게 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말기인 지난해 기간제 근로자 수(임금근로자 기준)는 453만7000명으로 전년보다 60만4000명 늘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과 비교하면 160만7000명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호봉제로 왜곡된 국내 노동시장의 임금 결정 구조를 정상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국내 임금 결정 구조는 어느 회사에 얼마나 오래 근속했는지가 핵심"이라며 "어떤 일을 하는가를 기준으로 하는 직무급 제도로 가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했다. 그는 또 "정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을 활용해 대화를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한편,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 같은 인센티브 제공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지 않고선 현재의 임금 이중구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장정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사협력본부장은 "산업 자체의 경쟁력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동시에 제고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산업이 발전·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는 저절로 따라오는 문제"라며 "고용 경직성이 높은 상태에선 현재의 임금 이중구조 문제를 풀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사태에서 드러난 원·하청 간 문제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그동안 조선업체들은 불황이 오면 하청 업체들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고용을 유연화했다. 임금도 원청보다 낮게 줬다. 그러나 조선업이 2014년 장기 불황에 빠지면서 조선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자 하청업체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결과 현재 조선업 하청업체 숙련공은 2015년 대비 절반 이하로 줄었다. 인력난은 다시 하청 경영을 악화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고용부 핵심 관계자는 "원청과 하청이 같은 시기에 교섭에 들어가고 원청의 임금 인상분 중 일부를 하청과 나누는 방식, 정규직 성과급을 비정규직이나 하청 근로자 복지 기금으로 쓰는 방안 등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는 대우조선해양 파업 사태를 계기로 하청 근로자가 너무 낮은 임금에 내몰리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뿐 아니라 한덕수 국무총리와 대통령실 고위 인사들의 최근 발언을 보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다만 지나친 정부 개입을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특정 산업 원·하청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기 시작하면 다른 산업에서도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질 수 있다"며 "노동시장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복지나 사회안전망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편 원청과 하청의 격차는 임금 외에 휴가 같은 근로 여건에서도 극심하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건설노동조합 광주전남전기지부는 지난 25일 오후부터 한국전력 광주전남지역본부 건물을 점거하고 있다. 파업을 하는 것은 하계휴가 축소 움직임 때문이다.

[김희래 기자 / 송민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